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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보인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장백산-1 2023. 7. 2. 16:51

'본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보인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눈을 통해서 어떤 대상을 봅니다. 대상을 '보는 것'일까요? 대상이 '보이는 것'일까요?
대상을 '보는 것'은 '내가 눈을 통해서 본다'는 것이고, 눈을 통해 대상이 '보인다는 것'은 대상이 그저 보일 뿐 
대상이 보인다는 행위 거기에 내가 개입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습관적으로 사람들은 '대상을 내가 본다'고 말하고, 대상을 잘 보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눈에 어떤 대상이 탁 들어오면, 그 대상이 그냥 저절로 보이지 않던가요?
대상을 보려고 많이 애써야지만 대상을 볼 수 있나요? 대상이 그냥 보이지 않나요.

어떤 소리를 듣는 것도 대상이 그냥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를 내가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그냥 그저 들리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소리가 그저 들리지요. 만약에 소리를 '내가 듣는다'고 한다면, 내 마음대로 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내 마음대로 소리를 들을 수 없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소리가 나면, 그 소리를 듣기 싫어도 그 소리가 그냥 저절로 들립니다.
소리를 내가 듣는 것이면 내 마음대로 들을 수도 있고, 듣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하겠지만, 
소리가 그냥 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듣고 않듣는 것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따지고 나니까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요? 지금까지는 내가 대상을 보고, 내가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대상이 그저 보이고 소리가 그저 들렸을 뿐입니다.
대상이 그저 보이고 소리가 그저 들리는 거기에 '나'를 개입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보고 듣기 위해 애쓰지 않더라도, 그저 무위자연으로 모든 대상을 보고 모든 소리를 듣습니다.
보이고 들리는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만 저절로 그런 것이 아니라, 맛보고, 냄새맡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것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냄새가 나면 저절로 냄새를 맡게 됩니다. 어떤 대상을 보면 저절로 생각이 떠오릅니다.
감촉을 느끼면 저절로 촉감이 자각됩니다. 이처럼 애를 쓰지 않아도 삶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일어납니다.

내가 주체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삶은 자연스럽게 무위로써 살려지고 있습니다.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저절로 살려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듯 아무런 문제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인연 따라 물 흐르듯 살아간다면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괴로울 것,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그저 매 순간 보일 뿐, 들릴 뿐, 냄새가 맡아질 뿐, 맛이 느껴질 뿐, 감촉이 느껴질 뿐, 생각이 일어날 뿐 
거기에는 아무런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이 붙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며, 
불이중도(不二中道)이고, 일 없는 무사인(無事人)의 삶입니다.

이렇듯 시비분별만 붙이지 않으면, 이미 문제 없는 실상의 삶이 살아지고 있습니다. 진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토록 완벽하게 주어진 삶을 상대로, '나'라는 허상을 개입시켜, 내가 본 것이 옳으니, 내가 듣기로는 기분이 
나빴다느니, 나는 감정이 상했다느니 하는 등의 아상, 에고, 분별심을 내세우면서, 이 완전한 삶이 내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 삶, 내 기준으로 좋거나 나쁜 삶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과 분별심만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삶은 지금 이대로 완전합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