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이름과 모양을 빼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껴보기

장백산-1 2023. 12. 15. 16:18

이름과 모양을 빼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껴보기


내가 만나는 대상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모양을 그리지 않고 그 대상을 만날 수는 없을까요? 하늘을 볼 때 하늘이라는 이름을 빼고, 구름을 볼 때 구름이라는 이름을 빼고, 맑은 날이라거나 흐린날이라는  이름을 빼고, 그냥 그저 지금 여기서 보이는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을까요?

만나는 대상에 이름과 모양이 붙으면 벌써 그 대상의 진짜 모습이 아닌, 내가 배운 이름으로 해석하고, 과거에 배운 이름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매미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매미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매미소리가 저절로 들려옵니다.
이 소리를 듣자마자 '매미소리'가 들린다고 하지 말고, 그저 그 들려오는 소리를 그저 들을 뿐! 이렇게 시도해 보는 것이지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에 대해 이름을 빼고 보고 듣고 느껴보는 것입니다.

이름을 빼면, 모양도 함께 빠져나가기 쉬워집니다. 특정한 이름과 특정한 모양을 내 의식으로 합쳐놓고 그것을 '무엇'이라고 의식은 기억하거든요. 그런데 이름을 빼고, 모양도 빼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를 볼 뿐, 들리는 그대로를 들을 뿐입니다. 아니 보이는 그대로 보여질 뿐이고, 들리는 그대로 들려올 뿐이지, 거기에 듣는 나, 보는 나도 없습니다. 그저 순수한 봄, 순수한 들음 그 자체만 그렇게 있을 뿐입니다.

이름과 모양을 불교에서'명색(名色)'이라고 합니다. 의식의 인식 대상이 명색(名色)입니다. 의식은 이처럼 대상에 이름 붙여서 '명(名)'으로 기억하고, 그 이름 붙여진 대상을 특정한 모양(色)과 연결지어 분별을 합니다.

그러나 십이연기, 십팔계에서 설명했듯이, 의식도 실체가 없어 허망하고, 명색도 실체가 없어 허망합니다. 의식도 명색도 그저 인연따라 생겨난 것일 뿐, 실체적인 무언가는 아닙니다. 이름을 붙이면 거기에 실체성을 부여하게 되고, 우리는 거기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름 붙이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허용해 줄 때, 그것이 바로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상을 보는 것이며, 명상입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