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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대상에 따라 보를 다르게 받는다

장백산-1 2024. 5. 27. 16:45

행위의 대상에 따라 보를 다르게 받는다

 

지은 업에 따라 보를 받을 때 그 보를 다르게 받는 두 번째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똑같은 업을 짓더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는데요, 다르게 나타나는 두 번째 경우는 행위의 대상에 따라서 업의 결과(보)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밥 한 끼를 공양합니다. 그런데 어떤 대상에게 밥 한 끼를 사 주었느냐에 따라 받는 보가 달라집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과 일반인에게 올리는 공양은 당연히 그 과보가 다르게 익어가겠지요. 같은 공양이지만, 그 대상에 따라 다르게 과보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하늘의 천신이나 제석천 등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경전에는 ‘악한 사람 1,000명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평범한 사람 한 명에게 보시하는 것이 낫고, 평범한 사람 1,000명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착한 사람 한 명에게 보시하는 것이 낫고, 착한 사람 1,000명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수행자 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 낫고, 수행자 1,000명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깨달은 자 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같은 복을 지을지라도 ‘누구’에게 그 복을 짓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도적 두목에게 밥과 돈을 보시하였습니다. 도적 두목은 받은 밥과 돈을 도적질하는데 쓰고 나쁜 짓하는데 쓸 것입니다. 반대로 그 돈으로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게 되면 널리 지혜와 자비의 말씀을 전하는데 쓰여지게 될 것입니다.

 

절에 있는 보시함을 복전함이라 부르는 이유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 복의 밭이 되기에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 같은 절이라 해도 수행과 전법을 잘 하는 도량, 스님에게 복을 짓는 것이 더 큰 복전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신도님들께서 절에 보시하실 때도 이처럼 잘 사유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절에서는 대중공양을 하는데요, 청정하게 수행하는 대중들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것이 그만큼 큰 공덕이 되기 때문에 예로부터 사찰에서는 대중공양의 공덕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차원입니다.

 

이처럼 좋은 업을 지을 대상을 만나려면 먼저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하겠지요. 내 주위에 좋은 스승, 좋은 도반이 있다면 행위의 대상도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절에서는 ‘좋은 도반과 함께하라, 좋은 스승을 모셔라’ 하고 말합니다. 수많은 불교경전 중에서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 『숫타니파타』에도 ‘될 수 있으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벗을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벗을 만나더라도 만날 때마다 아파트 값, 투자이야기, 아이들 성적이야기만 하는 친구 보다도, 함께 마음공부를 하며 수행이야기를 나눌 도반, 성적에 과도한 욕심을 가지기 보다 즐겁게 아이들과 놀아주고 따뜻한 심성을 길러주는 친구, 자녀에게 일류대학과 대기업을 요구하기 보다 진정한 꿈에 귀 기울여주는 친구, 그런 벗과의 만남이 잦아진다면 우리의 삶 또한 더욱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쓸데없이 열등감을 키우는 모임이 아닌 진리의 모임, 수행하는 모임, 기도하는 모임에 참여하면 저절로 자신의 마음공부도 익어 가겠지요. 말 그대로 도반이 대신 공부를 시켜주는 것이지요. 나아가 아내와 남편이 이런 좋은 도반이 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일이 되겠지요. 이처럼 같은 업이라도 다르게 익어가는 사실을 알아, 지혜롭게 잘 대상을 선택해 복을 짓고, 좋은 도반들로 주변을 가득 채워나간다면 삶 또한 더욱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