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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에 따라 받는 보는 행위의 주체에 따라 다르게 받는다

장백산-1 2024. 5. 26. 19:40

업에 따라 받는 보는 행위의 주체에 따라 다르게 받는다

 

업(業)을 지었더라도 그 업에 따르는 보(報)를 받을 때는 결정론적이고 기계론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행위 주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보를 받는데 있어서 이러한 ‘다르게 받는 보’는 네 가지의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행위의 주체에 따라서 다르게 익어갑니다. 다시 말해서 그 행위를 누가 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제 말했던 것처럼 주먹으로 툭 친 행위 자체가 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동료를 아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격려를 위해 쳤느냐, 증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미운 마음을 담아 쳤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누가 쳤느냐에 따라서 받는 보는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즉 동일한 행위일 지라도 ‘누가’ 한 행위냐에 따라 받는 보가 달라집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업이 다 다르고, 의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했느냐에 따라 결과(보)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여인을 사랑하는 두 남자가 그 여인에게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 표현은 감미롭고 행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지만, 미워하는 다른 남자의 적극적인 사랑 표현은 괴롭고 고통스럽기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일한 행위에도 한 남자는 키스를 받을 것이지만, 다른 한 남자는 뺨을 맞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의식의 차원에 따라서도 받는 보가 달라집니다. 깨달은 큰 스승과 그저 평범한 사람이 똑같은 진리를 전달했을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은 달라질 것입니다. 똑같은 말과 표현을 했을지라도 큰 스승이 한 말은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남기지만, 평소의 삶이 그다지 믿음직하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이 준 가르침은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행위를 한 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그 행위는 전혀 차원이 달라집니다. 똑같은 행위일지라도 그것이 성스러운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속된 행위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배가 고픈 A와 B에게 밥을 주었습니다. 밥을 주었지만, 전혀 다른 공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A는 내 자식이고, B는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똑같은 밥을 준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따르는 보는 달라집니다. 자식에게 밥을 주는 것은 아상의 연장이기 때문에 복이 적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밥을 준 공덕은 아상을 넘어선 자비의 마음이기 때문에 복락의 보를 크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깨어있는 의식으로 행위를 하는 사람이 깨달은 자고, 깨어있지 못한  의식상태로 행위 하는 사람이 중생입니다. 결론적으로 행위를 할 때 내가 어떤 의식으로 했느냐가 다른 결과(보)를 가져오게 합니다. 당신이 깨달았느냐 깨닫지 못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를 할 때 얼마나 깨어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똑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깨어있는 의식으로 그 행위를 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화를 낼 때라도 화에 못 이겨 화가 나서 화를 내면 아이와 악업으로 얽히겠지만, 아이를 위한 자비심으로 필요에 의해 화를 내준다면 선업을 지은 것이 되겠지요.

 

하다못해 모기 한 마리를 죽이더라도 짜증을 내며 죽일 때와 ‘다음 생에 인간몸 받아 수행하며 살거라’하고 축원해 주며 죽인다면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 익어갈 것입니다. 이처럼 행위 자체보다 행위를 할 때의 깨어있음이 중요합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