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을 만나다.

장백산-1 2008. 4. 1. 13:53
 
   
노무현을 만나다.
 
글쓴이 김찬식
등록일 2008.03.31 11.29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토요일 봉하마을에 갔다. 금요일 부산에 내려가 일을 보고 다음날 봉하마을로 핸들을 돌렸는데 잘 만하면 노대통령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진영 톨게이트에서 나와 봉하마을로 향하려니 입구부터 노대통령 생가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그 표지판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니 사진으로만 보던 봉하마을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지금이야 몇 몇 신축 건물이 들어서 그나마 양호해 보이지만 만일 그 신축 건물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 갈 이유가 없는 시골의 한적한 동네일 뿐 이였다.


나는 먼저 노대통령 사저 쪽으로가 비서관에게 소양강님의 화보를 전달하며 벽에 걸만한 사이즈를 요청했고 소양강님께서 그리실 소나무 동양화가 완성되는데로 여러 사람이 다시 한번 방문 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비서관이 빨리 알려줄수록 시간이 단축 될 텐데, 금주 중에는 답을 주겠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봉하마을 구경이 시작된다. 먼저 노대통령의 생가, 어렸을 적 시골에 있는 함석 지붕집, 대략 10평정도 되는 조그만 구옥 이였는데 집 안에는 사람이 살고 있어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봉화산, 대략 동네 야산 정도로 보면 무방할 정도의 낮은 산 이였다. 시간 관계상 봉화산 등반은 못하고 등산로 초입을 조금 보는 수준에서 머물렀지만 뭔가 산이 아늑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비서실, 경호실 관저,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식당. 약 10여분 정도 보니 볼만한 것은 다 보게 되더라.


조금 시간이 지나니 장유 노인회 분들과 전라도 광주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사저 주위로 모여든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보이고 아이를 대동한 가족도 보이고 젊은 연인들도 보이고, 대충 사람들이 만남의 광장(?)에 모이자 드디어 노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저기도 들리는 환호성, 후레시 터지는 소리 폰카 찍히는 소리. 대통령이 빠레트위에 올라서 관광객들과 편안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노대통령 특유의 유머가 나오고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대통령이나 대통령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한결같이 편안하고 즐거운 얼굴들이다.


노대통령이 다시 관저로 들어가시고 사람들은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계속해서 관광버스와 차량들이 봉하마을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다른 것 볼 것도 없는 깡촌에 단지 노대통령 얼굴 한번 보러 오려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왜 그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아까 광주에서 오신 분들은 여기까지 오려면 3시간 이상이 걸렸을텐데,


노대통령 말씀처럼 멀리서 오신 분들 밥이라도 먹여 보내야 하는 건데 그것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볼 것도 별로 없고, 왜 노대통령이 봉하마을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미안해 하는지 대충 이해가 가려한다.

하지만 봉하마을에 볼 것이 있건 없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다는데 그걸 막을 이유는 없다. 봉하마을엔 애버랜드도 없고 롯데월드도 없고 있는거라곤 옛날 구옥과 새로 지은 건물 몇 채 뿐이지만 봉하마을엔 노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봉하마을의 풍광을 구여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봉하마을에 살고 있는 노대통령을 보러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들에게 봉하마을의 풍광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봉하마을에 가면 노대통령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대통령을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 나온다. 그것이 사람들을 봉하마을로 향하게 하는 힘인 것이다.


과연 봉하마을로 향하는 이 행렬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나는 괜히 궁금해진다.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봉하마을이 여느 한적한 시골과 같은 상황이 될 지라도 그것이 퇴임한 대통령의 인기 척도가 되진 않는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대통령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희동, 동교동, 상도동에서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또 다른 차단의 벽 속에서 살고 있는 전직 대통령들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대통령의 차이는 비교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일이다.


노대통령이 임기 내낸 부르짓던 권위주의 청산이 퇴임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모습에서 난 또 하나의 개혁을 본다. 개혁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과거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을 전직 대통령이 몸소 실천 한다는 것, 대통령이 하늘에서 내려와 민중 옆에 있다는 것,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바로 구시대적 악습을 타파하는 개혁인 것이다.


그곳에 가면 그가 있다. 서울에서 봉하마을, 그 만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진전하는 것이다. 난 봉하마을에서 또 다른 개혁을 보았고 민주주의의 진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