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한덕수 전총리 '성장 보다는 안정이 중요'

장백산-1 2008. 4. 1. 13:43
 
   
한국일보 한덕수총리님 기사입니다.
 
글쓴이 하늘마루
등록일 2008.03.31 18.01
 

성장 보다는 안정이 중요"
"盧정부나 李정부나 경제정책은 중도우파…"
"안정은 한 번 잃어버리면 되찾기 어려워"


30대 선진국 5년간 성장률 평균 2.6%
4.4%가 경제 망쳤다는 건 국민 호도
'경제악화=李대통령 당선' 사실과 달라


9만명 증가한 공무원 중 절반이 교사
공교육 정상화 위해선 더 늘려야
금융外 기업 민영화 미진은 아쉬워


한덕수(59) 전 국무총리의 38년 공직생활을 관통하는 한마디는 '똑똑한 경제전문 관료'다. '경제를 망쳤다'는 비난이 빗발치던 지난해, 그는 국무총리로서 정권에 쏟아진 각종 비난을 온몸으로 대변했었다. 보다 자유스러워진 그에게 당시 정치권의 주장에 억울함은 없을까. 경제전문가로서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할말은 없을까. '세계 현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번 주말 미국으로 떠나는 한전총리는 평소의 그답게 차분하면서도 분명하게 이 같은 궁금증에 답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출범 한달 여를 지낸 새 정부에 대해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곳곳에 높다. 정치상황도 물론이지만 경제분야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분위기가 분명하다.

극도로 악화된 대외 환경 탓도 크지만 새 경제팀의 엇박자 상황인식과 대응이 주요 원인이다. 특히 정책방향의 가장 기본인 성장과 안정을 놓고 노골화된 경제 최고 책임자들간 서로 다른 목소리는 시장을 혼란 상황으로까지 내몰고 있다.

‘경제를 망쳤다’는 비난과 함께 퇴임 한달 여를 지내고 있는 노무현 정부 고위 관료들의 생각은 어떨까.

경제 전문가로서 지난 정부의 마지막 행정수반을 지낸 한덕수(59) 전 국무총리에게는 특히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았다. 한국일보의 평생독자인 한 전총리가 28일 본보 경제부와 가벼운 식사자리를 가졌다.

한 전 총리는 “이제 출범 한달 밖에 지나지 않아 조용히 지켜볼 때”라면서 극도로 말을 아꼈으나, 경제에 대한 소신만큼은 분명하게 밝혔다. 이번 주말 미국 방문 준비에 한창인 한 전 총리에게서 현 경제상황은 물론,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었다.

-조금 마르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운동을 했더니 1㎏ 정도 줄었어요. 느지막하게 집을 나와 점심 먹고 오후 2시쯤 남산으로 올라가 한두 시간 걸은 뒤, 수영이나 헬스를 합니다. 얼굴 살만 빠졌는지 만나는 사람들이 간혹 ‘야위어 보인다’고들 하는데 가뿐합니다.”
-미국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다음달 워싱턴에서 각국 재무장관 출신들이 모여 만든 ‘와이즈맨 클럽’의 결산 세미나가 있습니다. 싱가포르 고촉동 전 총리 등 각 대륙 대표 20여명이 경제적 측면에서 인류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지요. 지금까지 성장 이론은 주로 실물쪽에만 초점을 맞춰 왔는데 이걸 좀 더 현대적으로 재정립해 교육, 환경 등까지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개발 모델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다음달 10일쯤 있을 재정ㆍ통화정책 세미나에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관련한 토론을 주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준비중입니다. 6주정도 미국에 머물면서 여행도 할 계획입니다. 아내(최아영ㆍ60ㆍ화가)와 좀 돌아다니며 바람도 쐴 작정입니다. 하버드(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에도 가 보고요.”
스스로 생각하는 정치색과 무관하게 그는 어쨌든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한 마지막 1년을 국정의 2인자로 전면에 나서 변호했던 총리였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그가 감수해야 했던 비난에 혹 억울하다는 생각은 없을까.

“사실 새 정부는 역대 가장 괜찮은 경제를 넘겨 받았습니다. 재직시 한나라당은 ‘참여정부가 경제를 망쳤다’고 공격했습니다. ‘세계 경제가 호황인데 그만큼도 성장을 못했다’는 것이었지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합친 세계 70여 국가의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4.9%였는데 우리는 4.4% 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분류한 30대 선진국의 성장률은 평균 2.6%입니다. 개도국은 7.5%구요. 4.4% 성장에 대한 비난은 국민을 호도하는 겁니다. (그는 총리 퇴임사에서 수치까지 박아 이 점을 분명히 지적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숙박ㆍ음식ㆍ재래시장 등 영세자영업 문제인데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제성장 만으로 이분들에게도 볕을 쪼이려면 8% 성장은 해야 할 겁니다.”
-공무원만 잔뜩 늘려 놓았다는 비판도 많았는데요.
“지난 5년동안 9만명 정도 늘었습니다. 문민정부보다는 적지만 국민의 정부보다는 많았지요. 하지만 어디서 늘었는지 구체적으로 따져 봐야 합니다. 늘어난 전체 공무원의 51%가 교사입니다. 덕분에 1996년 학급당 42명이던 학생수가 지금은 35명으로 줄었습니다. 공교육 정상??위해서는 사실 20명 수준은 돼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경찰로 19%를 차지하구요, 복지분야 7~8% 정도입니다. ‘국민은 아랑곳 않고 공무원 배만 불렸다’는 비판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다만, 탈세를 줄여야 국가재정이 바로 선다는 생각으로 국세청 직원은 제가 앞장서서 많이 늘렸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못다한 아쉬운 정책도 있으실 텐데요.
“공기업 민영화가 금융 분야 외에는 거의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워낙 반발이 심하더군요. 현 정부는 민영화를 모토로 삼고 있으니 잘 하겠지요.”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성장이냐 안정이냐를 놓고 갈등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이념을 차별하는 것에 동의 할 수 없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자꾸만 진보니 보수니 갈라놓고 보길 좋아해서 그렇지, 사실 세계는 갈수록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어요.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도 경제정책으로 보면 약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 중도우파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만, 거시정책의 방향을 성장쪽으로 잡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성장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안정은 한번 잃으면 되찾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지금 미국이 비상시기이니까 금리도 공격적으로 내리고 돈도 풀고 하지만, 중앙은행이 너무 그렇게 가면 안 된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플레 기대심리죠. 모두가 물가가 오를 거라 믿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당장 기준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어요. 결국 통화정책을 신중하게 가져가야 장기적인 성장에도 도움이 됩니다. 요즘은 한국은행이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강만수 장관도 잘 아시지요. 비판의 목소리도 높은데요.
“고시 동기(행시 8회) 이상으로 잘 알지요. 훌륭한 분입니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가끔 입이 못 따라갈 정도에요. ‘너무 옛날 방식을 고집한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거에요. 오래 현직을 떠나있었으니 초반 적응기간은 필요하겠죠.”
-새 정부의 경제팀 구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협력 과정에서의 조화가 문제겠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한가지 뚜렷한 장점은 있었습니다. 작은 정책 하나를 결정할 때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련부서를 다 불러 모으는 거에요. 처음에는 참 이상하다 싶었는데, 함께 모여 정책을 결정하니 정부 내에서 혼란을 극도로 줄일 수 있었지요. 최근에 청와대가 직접 경제정책을 발표하는 걸 실로 오랜만에 봤습니다. 국민연금을 이용해 29만명의 신용회복을 돕겠다는 거였는데 제 기억으로는 국민의정부 시절 이기호 경제수석 이후 처음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일선 부처와 청와대 사이에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니 청와대가 먼저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 일이 생기면 일선 부처는 붕 뜨게 되지요. 아마도 이 대통령은 전부가 모일 때보다 누군가 책임자와 독대를 해야 더 솔직한 얘기가 나온다고 믿는 듯 한데, 그럴 경우 누가 먼저 문고리를 잡느냐 하는 싸움이 시작되고 정책에 혼란이 오기 쉽습니다.”
-새 정부가 흔히 개발시대 스타일의 옛날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바라본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자체가 최대 상품입니다. 대통령이 틀어쥐고 가기만 한다면 스태프들에게 생기는 문제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 대통령이 요즘 공무원들에게 보이는 행동은 다분히 의도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짜 공무원 조직에 문제가 그렇게 많다고 보고 있다면 문제이지만 좀더 지켜봐야겠지요.”
그는 지나치게 특정 방향으로 쏠려있는 듯한 국내 언론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 외국 신문들이 우리나라 선거를 어떻게 분석하는지 유심히 살펴봤는데 그 중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번 선거는 통계적 경제성과와 유권자들의 경제 인식이 완전히 불일치하는 선거였다’고 썼더군요. 적어도 경제가 나빠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해석은 팩트가 아니라는 거죠. 우리나라 신문들도 이런 팩트는 좀 지적해 줬으면 합니다.”
그는 “평생독자로서 중도를 표방하는 한국일보가 ‘중심’을 잡아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여수세계박람회의 고문으로 여러 가지 대외적인 지원에 힘쓸 생각입니다. 대학총장 등 몇몇 제의가 있지만 아직 판단이 서지 않네요. 자유시간을 많이 갖고 못 읽은 책도 좀 읽으려 합니다. 총리 1년 덕에 연금 수령액이 상당히 늘었더라구요. 아내에게 ‘걱정 말라’고 큰 소리도 쳐 놨습니다.(웃음)”
◇ 한덕수 총리는
1949년생. 경기고, 서울대, 미 하버드대 경제학 석ㆍ박사, 통상산업부차관, 재정경제부장관 겸 부총리, 국무총리
정리=김용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