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대운하와 일본의 꼬라지
(서프라이즈 / Crete / 2009-02-06)
아침마다 출근길에 듣는 미국의 경제뉴스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실업률이 겁나게 올라가고 있고 각종 경제지표도 폭풍전야를 느끼게 해 주죠. 오바마 대통령은 통 큰 경기부양책으로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물론 정치인들 사이에도 과연 정부 지출 확대가 우선이냐 아니면 감세가 우선이냐는 논란으로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어제 뉴욕타임스에 이 문제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운하와 관련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일본 경기 부양책에서 얻을 교훈 (Japan's Big-Works Stimulus Is Lesson) ☜
기사를 쓴 이는 마틴 패클러(Martin Fackler)라고 뉴욕타임스 동경 특파원. 기사는 아래의 인상적인 사진으로 시작을 합니다.
'하마다(Hamada)'라는 일본 서부의 한 작은 마을(인구 6만 1천 명)에 건설된 웅장한 연륙교가,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이 방치된 모습으로 남아 있는 현실을 통해 1990년대에 일본 각 지방에 퍼부어진 엄청난 건설 투자가 어떤 식으로 낭비되었고 얼마나 후세에 막대한 짐이 될 재정적자만 남겨 놓게 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시작하고 있죠.
이런 모습은 '하마다'만의 특별한 모습은 아닙니다. 거의 일본 열도 전역에 시골 산 구석 마을까지 포장도로와 각종 교량 건설이 1990년대 내내 있었죠. 그 이유는 1980년 막판에 부동산 거품이 터지며 발생한 경기 불황이었고 말입니다.
결과는?
경제는 여전히 바닥이면서도 5조 5천억 달러 수준의 경제규모를 가진 일본이 이 경제규모의 1.8배에 달하는 재정적자 더미 위에 나 앉게 된 것이죠. 어떠한 방법으로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물론 미국 경제나 한국 경제 모두 일본과 100% 동일하지는 않지만 일본의 이런 삽질에서 뭔가 교훈을 얻어야겠다는 취지로 이번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나온 걸 겁니다.
현재 미국 재무부 장관인 가이트너는 일본 부동산 거품의 붕괴와 이어진 경제 불황 기간 동안 일본 주재 미국 대사관의 재무 담당 공관원(financial attaché)이었죠. 그 기간동안 일본이 무슨 짓을 벌였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현장에서 목도하며 경험한 몇 안되는 경제통일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가아트너가 납세와 관련해서 문제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오바마 내각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이트너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일본처럼 장기간에 걸쳐 돈을 찔끔찔끔 쓸 것이 아니라 단기간(quick)에 막대한 자금(massive dose)을 투입하고 경기 회복이 확실히 뿌리를 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투입해야 된다!'
Treasury Secretary Timothy F. Geithner, who was a young financial attaché in Japan during the collapse and subsequent doldrums. one lesson Mr. Geithner has said he took away from that experience is that spending must come in quick, massive doses, and be continued until recovery takes firm root.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죠. '그럼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느냐?'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일본 지방정부 연구소의 1998년 보고서가 그 답을 줍니다. 1조 엔을 투자했을 때, 얻어지는 경제 성장 성과를 비교 분석한 것인데, 일단 도표를 보시죠.
이걸 그래프로 다시 그려보면,
소위 삽질 분야 투자(사회 간접 자본)가 다른 분야에 비해 가장 성과가 낮죠?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일본이 개발도상국가가 아니고 이미 개발이 어느 정도 완성된 선진국이기 때문이죠. 개발도상국가의 경우 사회 간접 자본, 즉 도로나 철도, 항만 건설 등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의 폭이 큰 반면에 이미 어느 정도 경제가 성숙된 사회에선 저런 식으로 사회 간접 자본에 돈을 뿌려 봐야 건설이 진행되는 그 기간에만 반짝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Roads and bridges are attractive, but they create jobs only during construction," said Shunji Nakamura, chief of the city's industrial policy section. "You need projects with good jobs that will last through a bad economy."
결국, 이 기사의 결론에도 나오지만 경제가 나빠질 때도 지속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결국 돈을 어디다 쓸지를 정부가 결정을 할지 아니면 세금 감면을 통해 국민들이 직접 결정을 하게 할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현재 가이트너의 지휘 하에 일본이 충분히 필요한 분량의 자금을 적시에 지속적으로 투입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보고 즉각적이며 막대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요량이죠.
하지만, 많은 일본 경제학자들은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일본인들 눈에는 지난 20년간 경제 활성화 한다며 쏟아 부은 돈이 결국 지방정부를 포함한 전체 일본이 중앙정부가 지원해 주는 돈에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형태에 안주하게 만들었고 자민당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 돈을 지방에 풀어 표를 사 모았다고 보는 것이죠.
Among ordinary Japanese, the spending is widely disparaged for having turned the nation into a public-works-based welfare state and making regional economies dependent on Tokyo for jobs. Much of the blame has fallen on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which has long used government spending to grease rural vote-buying machines that help keep the party in power.
아마 모르긴 몰라도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 생각하는 대운하는 자민당이 지난 20년간 써먹었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작년 말에 예산안 때 보여준 포항으로 대대적인 중앙정부 자금의 투입을 보시면 앞으로 대운하 계획이 어떤 형태의 정치적 경제적 함의를 갖는지 대충 감이 잡히실 겁니다.
여기에 추가해서 동경대의 이호리 박사의 연구 결과가 기사에 첨부됩니다. 즉 한 국가에 가용 투자 재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정부 부분에서 지나치게 투자 재원을 끌어다 쓰면 결국 민간 부분의 투자가 위축을 받는다는 것이죠. 또 여기에 추가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전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나 건설 쪽 일자리에 몰리게 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Dr. Ihori of the University of Tokyo did a survey of public works in the 1990s, concluding that the spending created almost no additional economic growth. Instead of spreading beneficial ripple effects across the economy, he found that the spending actually led to declines in business investment by driving out private investors. He also said job creation was too narrowly focused in the construction industry in rural areas to give much benefit to the overall economy.
그리고 아시겠지만 일본도 현재 이명박 정부가 보이는 밀실 행정 못지않게 정책 결정이 비밀스러운데, 이에 대한 비판도 추가합니다. 즉 투자처를 어디로 결정할지를 경제적 관점보다는 정치적 관점에 맞추어 관료, 정치인 그리고 건설업계가 결탁해서 밀실에서 결정했다는 겁니다.
Critics also said decisions on how to spend the money were made behind closed doors by bureaucrats, politicians and the construction industry, and often reflected political considerations more than economic.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작년 말에 이명박 대통령의 형님 지역구인 포항지역에 어떤 식으로 중앙정부 지원이 돌아갔는지 기억해 보시면 이 기사가 언급하는 내용이 뭘 뜻하는지 금방 이해가 되실 겁니다. 거의 3천 억 원이라는 거액이 포항이라는 지역에 정치적, 인간적(?) 고려를 통해 집중 투입된 거죠.
'대운하·형님 예산' 기습복원… 與 지도부도 몰라 ☜
앞으로 한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현재처럼 국회가 한나라당에 의해 과반수 이상 점유되어 있고 중앙 정부도 소통에 너무나 서투른 데다가 대운하가 예정된 지방 정부나 의회도 거의 한나라당 독식 구조인 이명박 정부에서는 일본에서 일어났던 저런 밀실 정책 결정이 거의 판박이로 재현될 것이라는 거죠.
여기에 이런 질문을 하실 분들이 계실 겁니다.
"최소한 대운하가 시작되는 영남 지역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 지원이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좋은 거 아니냐?"
거기에 대한 해답은 이번 기사에 상세히 설명이 되어 있죠.
이번 기사의 주인공(?)인 하마다시가 속해 있는 시마네현은 일본 전 수상인 다케시타 노보루뿐만 아니라 아오키 미키오 참의원 의장,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을 배출한 빵빵한 동네죠. 따라서 지난 20년간 일본 전역에 투하된 개발 자금이 다른 어떤 지역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막대하게 투입이 되었습니다.
While Shimane has had the highest per capita spending on public works in Japan for the last 18 years, thanks to powerful local politicians like the deceased former Prime Minister Noboru Takeshita, its per capita annual income of $26,000 ranked it 40th among Japan's 47 prefectures, he said. He said the spending had left Shimane $11 billion in debt, twice the size of the prefectural government's annual budget.
그런데 뭐가 남았죠? 기사에 보면 일인당 개발자금 투입은 일본 전역에서 최고 수준이었지만 결국 현재 지역 주민의 소득수준은 일본 전체 47개 현 중에서 40등(-.-;;)이고, 더불어 이런 막대한 개발 덕분에 시마네현의 부채는 110억 달러 수준이랍니다. 이건 시마네현 연간 예산액의 2배 정도 된다죠.
이 기사가 시사해 주는 바는 이런 겁니다. 지금 영남 지역의 경기가 말이 아니죠. 특히나 대구시는 주호영 국회의원이 앞장서서 대운하가 안되면 부산-대구 구간만이라도 어떻게 해 보자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현장에서]대운하 환상에 빠진 대구 ☜
옆에서 보고 있자니 안타깝기는 한데…. 결론은 이렇습니다. 도로 건설하고 교량 놓고 하면 겉으로는 삐까번쩍하고 보기는 좋지만, 결국 투자 대비 효율로 보자면 대학 건설이나 관광 명소가 될만한 수족관, 그리고 교도소 같은 것이 더 큰 경제 효과를 본다는 거죠. 이런 투자들은 영구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으니까요.
Among Hamada's many public works projects, the biggest benefits had come from the prison, the university and the Aquas aquarium, with its popular whales, they said. These had created hundreds of permanent jobs and attracted students and families with children to live in a city where nearly a third of residents were over 65.
"Roads and bridges are attractive, but they create jobs only during construction," said Shunji Nakamura, chief of the city's industrial policy section. "You need projects with good jobs that will last through a bad economy."
간단히 말하자면, 대운하처럼 건설 투자에 목을 매면, 일단 뭐가 만들어지니 가시적인 업적이 쌓이는 것으로 보여도 결국 그런 투자는 건설 기간 동안 건설업계에만 반짝 일자리를 창출하고 만다는 거죠. 게다가 그런 투자들이 경제적 고려가 아닌 정치적 고려에 의해 밀실에서 이루어지면 결국 해당 지역 경제는 낙후를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것이고요.
결론
사실 맘만 먹으면 이명박 정부가 꿈꾸는 대운하를 비판할 내용은 전 세계에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안된 말이지만, 대구를 중심으로 영남 쪽 주민들께서는 대운하로 뭔가 콩고물이 떨어질 걸 기대하지 마십시오. 물론 이명박 정부 임기 중에야 삽질 인력이 동원이 되니 반짝 경기가 좋아지겠지만, 이런 식의 경제 활성 시도는 그 효과가 아주 단기간에 그칠 뿐이고 그 폐해는 여러분 자식 대까지 대대로 물림이 될 겁니다. 정말 그러길 원하시나요?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 몸 담고 있는 많은 경제학자들이나 양심적인 공무원 여러분들도, 정말 자식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제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합니다. 이번에 아마추어처럼 어설프게 경제 살린다고 엉뚱한 분야에 돈을 들이밀면, 그게 나중 세대에 정말 고통스러운 짐이 되어 돌아 올 거라는 거죠. 바로 이웃 나라에서 저렇게 많은 경제 학자들이 안타깝게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려고 하는데, 그걸 모른 체하며 똑같은 구렁텅이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비록 뉴욕 타임즈의 이번 기사는 현재 미국 오마바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에 조언을 주기 위해 작성된 것일 테지만, 아무리 몇 번을 읽어도 남의 얘기 같지 않아서 한번 시간을 내서 정리해 봤습니다.
ⓒ Cre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