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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말고 죽인자들의 생명을 보내라 죽음으로 내 몰고 언제 너희들이 노무현에게 꽃을 선사했는데...
ⓒ 변호사의아내 대한문에서 노공이산을 보다. 대한문에 갔다왔습니다. 분향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노무현을 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이죠. 그냥 궁금해서 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조문하고 있나, 무슨 말을 하는지,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도저히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후 4시쯤 도착하니 전철 개찰구 앞에서부터 그 어디가 끝인지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르게 길게 줄을 섰더군요. 그것을 보자마자 울컥했습니다. 아, 바로 이것이었구나! 젊은 사람들 투성이었습니다. 물론 가족단위로도 많이 왔구요, 장년층도 많았습니다. 눈에 뵈는 게 여자들이었습니다. 남자들도 못지 않았습니다. 귓가에 들리는 얘기로는 조문까지 최소 4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어차피 조문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분향소 바로 앞까지 가봤습니다. 10명여씩 줄을 서서 국화를 바치고 노공이산께 인사하더군요. 나중에는 분향소를 1개 더 늘렸습니다. 말하자면 한번에 20명이 하는 셈인데, 그래도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누구하나 그 긴 줄을 서는데 짜증(?) 하나 내지 않고 기다리더란 것이죠. 여기서 다시 울컥, 아, 대한민국이 그렇게 만만치가 않구나. 이때 옆에서 어떤 젊은 사람의 말이 들립니다. "우리나라는 가만 보면, 단결을 잘해".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은 단결보다는 연대 또는 참여인데 뭐 아무튼.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숱한 가족들을 보고 또 울컥. 그래서 다음 주에 날 잡아서 식구들이랑 같이 오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이런 걸 보고 민주주의의 산 교육이라고 하나요. 자원봉사자들은 언제 봐도 또 필자를 울컥하게 만듭니다. 언제 어디서 그렇게 네트워크를 만들게 되었는지 몰라도 참 보기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자봉도 역시 남녀노소 불문이더군요. 자봉들의 활약은 제가 어딜 가든 항상 눈여겨보는 포인트죠. (갑자기 촛불 때의 예비군들이 생각나네요) 사람이 워낙 많이 몰린지라 현장에서 자봉을 급구하기도 하더만요. 그러나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역시 분향을 하기 전, 하고 난 후의 조문객의 모습이죠. 그리고 노공이산님의 사진입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 그 사진을 보고 울어버린 사람들이 숱하게 쏟아져 나옵니다. 우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도 같이 울어버립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객들, 입을 앙다문 그 모습들, 여기서 제가 느낀 것 한가지! 참 노공이산은 행복한 분이시구나 하는 것이었죠. 물론 여기 모인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 그를 벌써 그리워하는 글들이 넘쳐납니다. "행복했습니다. 노무현 때문입니다" 등등... 그리고 들었을 때 가장 울컥했던 말. 어느 누가 크게 외칩니다. "퇴임해서 시골에서 농사나 짓겠다는 분을 어찌 이렇게 할 수 있는냐!"...순간 분노와 슬픔이 치받쳐 오릅니다. 자봉커피 두잔 얻어 마시고 예의 촛불을 키고 또 한참이나 지켜봤습니다. 또 하나 느낀점요? 이게 노짱이 우리에게 준 천우일회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죠. 엄청난 역량의 징후를 봤더란 말입니다. 이것을 어찌할까가 문제인데...그때 정범구 씨가 보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겁니다. "시민들의 것인 시청을 확보해 달라. 닭장차를 빼내게 민주당 차원에서 나서라". 만약 그런 것에 민주당의 역량발휘가 성공한다면 나머지 것에도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아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유심히 들어봤습니다. 하는 말들 중 "노짱이 떡찰들에 이명박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국민장이라는데 진짜 이래도 되는거냐". "노무현(이 우리에게 준 교훈)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게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뭔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 아! 감동을 주는 이 사람들을 바로 노공이산이, 그의 시대정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할 겝니다. (잠시 작은 의문 하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노무현을 알게 되었을까, 그게 궁금해진 겁니다. 우문현답, 물론 답은?.....노무현을 통해서겠죠) 대한문 앞은 닭장차에 꽉 막혔으나 결코 답답하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서 숱한 노무현들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렇게 지켜보고 들어보고 하는 것만으로도 진짜로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참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참여라....결론적으로, 거기서 제가 본 것은 희망입니다. 이명박들이 들어선 이후 아주 절망의 수준에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 아직 희망이란 게 있구나. 그것을 바로 노짱이 또 살려내고 있구나, 느꼈습니다. 대한문 앞에서, 사람들은 죽음에 그렇게 슬퍼하다가도 이렇게 살아 연대한다는 것에 대해 금방 기쁨을 표합니다. 말에, 표정에 그게 묻어납니다. 하여 글을 쓰다가 문득, 노짱이 유서에 썼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한조각 아니겠는가"
자결을 택한 이유 벼락맞아 촛점잃은 멍한 눈으로 보낸 이틀이다. 차몰고 가서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국민장은 경복궁에서 치룰 예정인가 보다. 이젠 정말 믿을 수 밖에. 그의 죽음은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제단위에 스스로를 공양물로 바친 순교다. 노통다운 결단이기에 이젠 받아들이기로 했다. 노통이 자결을 결행하기까지 가졌을 번뇌의 폭과 깊이는 달랐을 것이다. 단순히 명예가 더럽혀져 충동적으로 벌인 장삼이사들의 생의 마감 행태와 당연히 달랐을 것이다. 유족이 겪어야 할 고통이 물론 있겠지만 당신의 죽음으로 파생될 임팩트까지도 감안한 자결이 분명하기에 감히 그의 죽음은 한반도 한민족 제단 위에 희생을 자초했기에 순교일 것이라고 단정한다. 보라. 그의 죽음의 여파로 펼쳐지고 닥칠 한반도의 장래. 이명박 정권의 몰락같은 단견적인 것이 아닌 모든 분야에 불어닥칠 노무현의 이상과 꿈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가늠해본다. 우리는 잠시 그를 보낼 뿐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했다. 우리와 함께 숨쉬고 생각을 공유하겠다는 말과 다름아니다. 그러나 분하고 분하다. 노통은 원치 않겠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살인교사범 이명박 일당과,두나라당 놈들과, 정권의 똥구멍만 핥는 검경의 졸개들과, 한반도의 암적존재인 조중동과, 쌍놈 자본주의에 쪄들은 탱자탱자 족속과 새끼들과, 친일 숭미 꼴보수 집단나부랭이들과 50대이상 다수의 무뇌 노털들과 지역색에 놀아나고 있는 문딩이 족속들 - 어떻게 고꾸라져 뒈져 가고 제대로 서는 한국이 될지 지켜볼거다.
ⓒ 50대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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