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지 않는 이명박
(서프라이즈 / 조기숙 / 2009-06-22)
어제(6월 21일) 단행된 이명박 대통령의 검찰총장, 국세청장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현 정부와 이 대통령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직접적인 원인이 국세청의 표적 세무조사,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에 있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고, 여당인 한나라당은 국정쇄신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인사는 이 모든 요구를 단칼에 일축해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파로 공석을 채움으로써 오히려 전임 대통령의 죽음을 친정체제 강화에 이용하는 담대함(?)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것이 관제언론과 어용언론이다. 이들의 보도는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관제언론인 연합뉴스는 이번 인사가 ‘개혁’과 ‘실용’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주장해 ‘받아쓰기 언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개혁’이란 5공화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공안통 검사를 검찰총장 등 요직에 임명하던 관행이야 전두환 대통령이 즐겨 쓰던 방법이며,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할 4대 권력기관의 수장을 대통령의 최측근 충성파로 임명하는 것 또한 독재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받아쓰기 언론’의 정수 연합뉴스를 살펴보자.
관제언론의 보도내용을 그대로 전달해 다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은 바로 정권의 방송들이다. KBS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놀라지 마시라. MBC의 뉴스도 KBS와 다르지 않다. 이미 MBC의 일부는 정권의 방송이 된 것인지, 미리부터 알아서 기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요즘은 SBS가 낫다.
SBS는 천 내정자의 성격과 업적을 공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생각해 볼 기회라도 제공했으니 말이다.
소위 조중동은 이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적어도 이들은 관제방송과는 달리 이 뉴스가 자랑스럽게 떠들어 댈 만한 뉴스꺼리는 아니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 신문을 살펴보면 맨 윗 단에 배치하지 않고 비교적 뉴스의 중요도를 낮추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조선일보는 ‘개혁’이라는 용어 대신 ‘쇄신’에 방점을 두고 있다. 원래 개혁을 싫어하기 때문인지,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한나라당이 이를 쇄신으로 받아들일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동아일보는 역시 어용언론에 대한 기대를 크게 저버리지 않는다. 양심도 없이 ‘개혁’에 방점을 찍었으니 말이다. 참 어용언론 값 하느라 애 많이 쓴다.
중앙일보는 어제까지만 해도 연합뉴스의 기사만 올려두었을 뿐, 자체 기사는 한 편도 올리지 않았다. 전형적인 기회주의 습성이 몸에 벤 것인지, 자사의 의견이 없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오늘 인터넷을 보았더니 ‘검찰, 수사관행 문제없나 돌아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만 보도하고 있다.
이 같은 관제, 어용언론과는 다르게 보도하는 언론이 있었으니, 한겨레와 경향이다. 이들이 이번 인사가 노무현대통령의 서거와 관련된 인식을 보여준다는 시각에서 시도한 정치적 분석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적어도 인사의 본질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한겨레신문 또한 상세하게 이번 인사의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조직 쇄신이나 지역 화합 등의 포장을 뜯어보면 이번 인사는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높이는 인사로 해석할 수 있다. 천 후보자의 경우 검찰 안에서도 대표적 공안통으로 꼽히는 인사다. 천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영양 천씨’ 종친회에서 각각 부회장, 명예회장을 맡은 측근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서울지검장에 임명된 뒤 용산 참사나 최근의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 등 공안 정국을 주도했다. 검찰 관계자는 “용산 참사와 피디수첩 처리에서 좋은 점수를 딴 것 같다”고 말했다. (중략) 이번 인사로 이른바 ‘빅4’로 불리는 권력기관장이 외형상 티케이(대구·경북) 2명, 충청 2명의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원세훈(경북 영주) 국정원장, 강희락(경북 성주) 경찰청장과 함께 4대 기관장이 모두 이 대통령의 강경·충성파 인사로 채워졌다. 이 대통령을 향한 ‘민주주의 후퇴’,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 비판도 거세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 황준범 기자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1631.html |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나라 언론이 대부분 국민의 알권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공안통 검사를 검찰총장 시켜놓고 ‘잘못된 수사관행’ 운운하는 이명박 대통령이야 말로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쥐 때문에 페스트가 창궐하고 있는 요즈음, 국민은 쥐 잡는 고양이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그 중 큼지막한 쥐 한 마리 데려다가 이제 이 큰 쥐가 고양이 대신 병균을 옮기는 나쁜 쥐 많이 잡겠다고 큰 소리 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래서 쥐 대신 인간처럼 살고 싶었던 용산철거민, PD수첩 언론인 때려잡으라는 것인가.
국세청은 참여정부 정부혁신 평가에서 우수한 공을 인정받았을 만큼 업무혁신에 성공했던 기관이다. 상부의 비리를 조직 전체의 비리로 몰아가는 현 정부의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윗물이 더럽다고 아랫물도 더럽다는 인식은 정확하지도 않고 그 동안 묵묵히 일해 왔던 조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다.
노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국세청의 잘못된 세무조사는 윗선에서 벌어진 일이지, 조직 전체의 비리가 아니다. 인사로비도 윗선의 비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사과해야 할 현 정부가 국세청 전체에 칼날을 휘둘러 그나마 양심이 살아 있어 한상률 청장을 비판한 김동일님 같은 조직원들을 쓸어내지 않을까 그것이 더 염려된다.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은 향후, 인사향방을 면밀히 취재해 이 정부가 개혁은 커녕 오히려 개악의 방향으로 치닫지 않도록 엄중하게 감시해야 할 것이다.
(cL) 조기숙(前 청와대 홍보수석 .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