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삶도 죽음도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것, 누가 모를까요.
그걸 살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그걸 살아내기가 쉽지 않은 짐이지요.
훠얼~ 던져진 저 죽음이 우리를 이제부터 무겁게 따라다닐 것이니
마지막 남긴 말을 실천하기가 통 쉽지 않을 거란 말이지요.
미안해하지 마라뇨, 원망하지 마라뇨, 운명이라뇨.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두 번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 첫 만남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허3의 한 명인 허삼수를 상대로 치룬 말도 안되는 선거전이었지요.
당시 포스터라는 것이(지금도 그렇지만) 그저 기호를 아래 크게 쓰고,
포스터 전면에 크게 얼굴을 내보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또 뭐 별다른 방법도 없는 거구요.
그 때 처음으로(아마 지금도요...)민중 속에 조그맣게 후보 얼굴을 구석에 넣은 포스터를 구상했었습니다.
노후보진영에서 일하던 잘 아는 형이 포스터 디자인을 물어오길래 '생각(아이디어)'을 주었던 겁니다.
남천동 삼익아파트에 있는 자택에서 몇 번 만나 디자인에 대해 의논하고 결정하여 모험을 했지요.
그래요. '바보포스터'였습니다. 당연히 얼굴을 크게 했어야지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인권변호사 알리려면
그랬어야지요.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민중을 더 크게 넣고 그 아래 구석에 조그맣게 얼굴을 넣은
바보 포스터는 그를 당당히 국회에 입성 시켰지요.
(아는 사람은 압니다. 허3를 상대해서 이길 것은 당시에 아무 것도 없었던 시절임을.)
두 번째 만남은,
결혼식이었습니다. 제 첫 음반의 모든 사진을 찍어주었던 P형의 결혼식에서 그는 주례자로 나는 축가를
부르는 인연이 있었습니다. 아, 그게 뭐냐구요. 아니요. 그 날은 특이하게도 축가를 선곡한 사람이 신랑도 아니고
신부도 아니고, 주례자였습니다. <상록수>를 불러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나도 좋아하고 신랑도 좋아하니 <상록수>를 불러달라'는 것이, 그 때 인기상승 중이었던 노무현(국회의원) 주례자의
발랄한(?) 부탁이었으니...기타 하나 들고 제법 비장한 마음으로 3절까지 또박또박 불렀던 기억입니다.
지금 뉴스에는 그가 기타를 치며 부르는 '상록수'가 나오고 있네요.
속울음이 없을 수 없습니다. 험란하고 처절한 시대의 강을 건너며 함께 불렀던 노래를 이젠 하늘과 땅에서
따로따로 불러야 하니까요. 그러나 따로겠습니까. 삶도 죽음도 하나임을 알듯이 하늘도 땅의 노래도 하나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땅을 내려다보며 그가 부를 '상록수'를 함께 조심스럽게 따라 불러봅니다.
그러나, 하지만,
분노도 없는 이 시대에, 분연히 일어나는 정의감도 역사에 대한 생각도 없는
무관심의 이 시대에 이 노래를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요.
그저 춤추고 술먹는 대학의 축제현장에서 나는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이 무감하고 쓰라린 시대에 나는 어느 무대에서 그 상록수를 또 부른단 말입니까.
아, 끝까지 바보같은 길을 걸어가는 저 사람 보소.
바보같은 정의감을 이끌고 인생의 모든 무거움을 안고 떠나는 저 사람 보소.
잘 가소! 바보 노무현요~~잘 가소~~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바보 노무현 지나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