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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유랑극단이 되어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프로젝트 밴드의 일원으로서 정연주 전 KBS 사장(기타),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보컬), 정은숙 전 오페라단 단장(건반), 여균동 영화감독(섹소폰)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추모콘서트를 다닌 것입니다. 8일 성공회대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9일 광주, 15일 동토의 땅 대구, 16일 대전공연을 마쳤습니다.
“회가 거듭해도 전혀 발전하는 기미가 없는 밴드는 처음 본다”는 연출가 탁현민 교수의 불평처럼 우리는 여전히 아마추어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도 송구스럽게 넘치는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틀릴 때마다 더 힘차게 보내주시는 격려의 박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리허설은 짬밥순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근,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 우리는 일착으로 리허설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시각에도 미리 행사장에 와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참가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연습 중 틀려서 탁 교수님께 군소리를 들을 때에도 그 분들은 우리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십니다.
첫날 성공회대 공연은 지난 해 노무현 재단 설립 기념 콘서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만 명이 넘는 인파 속에서도 질서 있게 움직이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이 분들의 보이지 않는 땀과 노고 덕분에 우리가 늘 의미 있는 행사를 치를 수 있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둘째 날은 광주로 가는 KTX기차에 일찌감치 올랐습니다. 광주역에 내리자 제자가 차 두대를 대기시켜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론보도에서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저녁식사 대접을 하기 위해 마중 나온 것입니다. 점심식사를 거른 일행이 기차 안에서 요기를 하려 했지만 제가 만류했습니다.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전라도를 가는데 식사를 하고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제자가 안내한 음식점에서 우리는 굴비정식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자의 후의와 넉넉한 광주 인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옛 전남 도청에 모인 인파가 예상보다 적은데 당황했습니다. 5천 남짓해보였습니다. 서울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5ㆍ18 행사 때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습니다.” 그랬구나. 이명박 정부의 폭압정치 속에서도 광주는 늘 해방구였습니다. 항상 거리낌이 없다보니 이런 행사의 의미가 특별히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도 참가자들은 출연진에 열광하면서 함께 울고 웃으며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구 공연 또한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광주보다 두 배나 되어 보이는 인파에 신천둔지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근처 아파트에서 나온 주민들이 다리 위를 가득 메웠습니다. 대구시민들의 열정과 환호는 동토의 땅에도 봄이 온다는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다 시민광장 회원들에게 잡혀 사진도 찍고 피자도 얻어먹었습니다. 점심식사가 부실했었는데 덕분에 속이 든든해졌습니다. 이 같은 젊은이들이 우리의 미래 희망입니다.
대구 무대 마지막 장식은 윤도현밴드와 시민합창단이 했습니다. 윤도현님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예술가는 감옥에 가둬도 영혼이 쇠창살을 뚫고 밖으로 나옵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 만으로 무대 전체, 아니 둔지를 넘어 일대를 휘어잡는 윤도현님의 포스에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신이 내린 목소리를 이렇게 많은 영혼을 위로하는데 쓸 수 있는 윤도현님이 부럽고 고마웠습니다.
대전무대는 MBC옆 넓은 둔치에 마련되었는데 그 많은 좌석을 다 채우고도 언덕까지 가득 메웠습니다. 대구보다 엄청나게 더 많은 인파가 몰린 것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Power to the People 2010" 콘서트에는 사회자가 없습니다. 출연진들이 알아서 순서에 따라 무대에 오릅니다. 누가 출연진이고 누가 관객인지 구분이 없습니다. 시민들 하나하나가 주인이 되는 콘서트입니다. 음악과 음악 사이에 명계남, 문성근님의 연설과 두 분의 대화가 들어갑니다.
노 대통령을 향한 명계남님의 애절한 사모곡을 들으며 손수건을 꺼내들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일부러 출연진이 대기하는 천막에 남았습니다. 명짱님의 연설을 들으면 눈물이 절로 흘러 공연에 지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가 제 귀에 들어오기 전에 공중으로 날아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노짱님을 향한 그리움과 연민이 절규가 되어 흘러나오자 너무도 또렷이 제 귀에 와서 박혔습니다.
결국 참지 못해 눈물을 쏟고 있는데 안희정 최고가 꺽꺽 흐느끼며 천막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항상 속이 깊고 포용력이 큰 맏아들 같이 든든한 사람이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 와중에도 물을 따라 제게 권하며 위로하는 안최고를 보며 노무현 가문의 사람들은 왜 이리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 대통령을 닮아서 그렇겠지요.
대구공연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늘 직감이 빠른 남편이 이런 말을 합니다.
“들불이 번지는 느낌이 든다. 거대한 초목이 화염에 휩싸인 것이 아니라 들풀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야.”
대전 공연을 마치고 그 느낌이 정확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풀은 바람이 불면 누었다가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일어납니다. 이명박의 강권통치에 타들어가던 민심이 이번엔 스스로를 태우며 불길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들불이 번지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점화된 불길이 서울, 인천을 거쳐 대전, 대구, 광주를 넘어 이제 곧 경남과 부산, 제주에까지 확산되리라 확신합니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산화하자 민초들이 그의 삶을 닮아 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스스로를 태운 불길은 남북대결구도, 생태파괴, 거짓과 폭압정치를 삼켜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입니다.
출처 : http://cafe.naver.com/chomagic/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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