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자서전
그대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성인군자가 아니면 식물인간일 것이다.
그대가 지독한 열등감을 느끼면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그대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대변해 준다.
요일별로 각기 다른 여자를 번갈아가면서
먹어치우는 남자를 만났을 때
저 쉐이는 뭐냐,
그대는 공연히 투덜거리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사업을 펼치기만 하면 한사코 떼돈이 달라붙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인물이 없는 쉐이가 돈복은 있어 가지고,
그대는 사촌이 논을 샀을 때처럼 배가 아프다.
백과사전이 무색할 정도로 박학다식한 사람을 만났을 때도,
어떤 분야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나타내 보이는 팔방미인을 만났을 때도,
그대는 지독한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특히 부녀자를 희롱하는 깡패들을 한주먹에 때려눕히는 남자를 만났을 때는
평소에는 인색하던 존경심까지 고개를 쳐든다.
물론 고개를 쳐드는 존경심의 이면에는 영락없이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다.
열등감은 언제나 비애감을 동반한다.
비애감의 농도가 짙어지면 자신에 대한 모멸감으로 발전한다.
그것은 때로 삶의 의욕까지 상실케 만든다.
하지만 그대여.
열등감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끊어야 한다면
그야말로 지구는 누가 지키나,
가급적이면 그대는 끝끝내 목숨을 부지하고 열등감이 우월감으로 변할 때까지
독수리 오형제와 함께 지구를 철통같이 지키도록 하라.
그대여 자연을 보라.
자연은 얼마나 초연한가.
바다를 느리게 유영하는 해파리는
하늘을 빠르게 비상하는 종달새에게 절대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풀잎에 고치를 짓고 살아가는 번데기는
지하에 땅굴을 파고 살아가는 두더지에게 절대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열등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현시욕의 소산이다.
알고 보면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초연하지 못한 생명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으로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의 질량과 열등감의 부피는 정비례한다.
자존심이 강할수록 열등감도 강한 법이다.
말에서 떨어진 사람이 내리려던 참이었어,
라고 말하는 것은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자존심 때문이다.
수치심은 나이가 들면 부피가 줄어들지만,
자존심은 나이가 들어도 부피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자존심은 타인에 의해서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처를 받을 때 열등감의 부피도 증대된다.
열등감은 현시욕이라는 아버지와
무력감이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정신적 미숙아다.
그러나 그대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절대로 열등감이라는 정신적 미숙아를 천시하지 말라.
열등감이야말로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다.
치타처럼 빠르게 벌판을 달리지 못한다는 열등감이 자동차를 만들었고,
제비처럼 빠르게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열등감이 비행기를 만들었다.
사자의 강인한 이빨, 전갈의 살벌한 독침,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
그런 것들은 동물들이 목숨을 보전할 목적으로 개발한 도구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것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다양한 무기들을 만들었으며,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것들을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도구로 쓰고 있다.
인간을 자연에 비견하면 언제나 수치심과 열등감만 깊어지므로 그대여,
우리는 이쯤에서 시선을 인간 쪽으로 돌리자.
보라.
모든 성공한 사람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열등감이라는 후원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열등감이 희박한 인간은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한 인간이다.
그대가 지독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가 타인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더불어 자만심을 멀리하는 미덕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니,
그대는 성공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진실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존재들은
한결같이 끝없는 열등감에 시달렸던 존재들이며,
아울러 자신의 열등감을 분발의 원천으로 삼았던 존재들이다.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는
악처로 소문난 크산티페를 아내로 거느리고 있었으며,
노예를 해방시킨 아브라함 링컨은 지독한 추남으로 알려져 있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불과 열네 살에 학업을 중단했으며,
영화의 아버지 찰리 채플린은 삼류 유랑극단의 배우와 가수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바꾼 인물들은 모두 열등감 덩어리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어머니가 기생이었으며,
한국 현대시의 초석 이상은
겨울 밤 홀로 각혈을 하면서 시를 쓰던 결핵환자였다.
전 유럽을 무력으로 지배했던 나폴레옹은
난쟁이가 무색할 정도의 단신이었으며,
현대 우주물리학의 초석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이라는 악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
이쯤에서 그만 접는 것이 좋겠다.
열등감을 발판으로 성공에 이른 사람들을
빠짐없이 열거하자면 시간도 모자라고 기력도 모자란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렸을 거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이제 결론을 말해 버리자.
만약 그대가 지금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나는 차라리 박수를 치고 싶다.
그대는 축복 받은 자이며 선택 받은 자이기 때문에
도대체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이유가 없다.
오로지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 노력하라.
그러나 먼저 그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서
성공을 기대하는 소인배를 그대 가슴 안에서 추방하라.
타인의 행복까지를 보장하지 않는 성공은 결코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그리고 명심하라.
아무리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간이라도
한 가지 장점은 간직하고 있나니 그 장점을 최대한 키우는 방법을 모색하라.
만 가지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 싸움을 벌이면 백전백패할 가능성이 높고,
한 가지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 싸움을 벌이면 백전백승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바꾸는 순간 놀랍게도
그대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던 만 가지 열등감이 모조리 사라져버릴 것이다.
만약 성공을 하면 그대는 세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로 지목될 것이며,
나아가 역사에 길이 빛나는 인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수많은 추종자들이 그대를 따르겠지만
수많은 반대파들이 그대를 배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파들의 동태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말라.
그들은 예전의 그대처럼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때로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위장해서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그대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맞상대를 하지 말고 초연한 모습으로 응대하라.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연을 눈여겨보라.
바다를 느리게 유영하는 해파리는
하늘을 빠르게 비상하는 종달새의 울음에 절대로 신경을 쓰지 않고,
풀잎에 고치를 짓고 살아가는 번데기는
지하에 땅굴을 파고 살아가는 두더지의 부산함에 절대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촌이 논을 샀기 때문에 배가 아픈 사람들이 있다면
그대가 어떤 방법으로 논을 샀는가를 상세히 가르쳐주도록 하라.
그러나 만약 그대가 대성을 해서 자서전을 쓸 일이 있다면
기필코 그대 손으로 직접쓰기를 권유한다.
어설프게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남에게 자서전을 의탁하는 악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걸 어찌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으랴.
그건 분명히 타서전이다.
그대여.
가급적이면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대의 자서전이 세상에 나오기를 소망하나니,
온 세상이 잠들어 있더라도 이 밤 부디 그대만은 맑은 가슴으로 깨어 있으라.
- 이외수(청춘불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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