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공화국 : 1923-2010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10-04)
지금은 아일랜드 인구가 450만 명에 불과하지만 1841년에는 820만 명이었다. 지금은 5500만 명이나 되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인구가 1841년에는 1600만 명이었다. 170년 동안 잉글랜드와 웨일스 인구가 3.5배 가까운 수준으로 늘어나는 동안 아일랜드 인구는 오히려 절반 가까운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170년 전 아일랜드 인구는 잉글랜드 웨일스 인구의 2분의 1이었지만 지금은 12분의 1이다.
아일랜드 인구를 격감시킨 주범은 18세기와 19세기에 잇따라 아일랜드를 덮친 대기근이었다. 1740-41년에 닥친 기근으로 인구 240만 중에서 약 40만 명이 죽었고 1845-1852년의 기근으로 800만이 넘던 인구 중에서 100만 명이 죽었고 100만 명은 살 길을 찾아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자연재해는 아일랜드만 겪은 것이 아닌데도 당시 아일랜드에서 유독 아사자가 많았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영국의 첫 번째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노른자 땅을
독차지한 잉글랜드의 부재지주들은 아일랜드 소작인을 쥐어짜면서 기근이 닥쳤을 때도 아일랜드에서 농작물과 육류를 본토로 실어 와서 돈을 버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1845-52년 대기근 당시 아일랜드의 육류 수출은 다른 때보다도 오히려 늘어났다. 아일랜드 소작인은 자기가 키우고 기른 가축과 농작물이 본토로 실려나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 손가락만 빨다가 굶어 죽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일랜드 농민은 혹독한 소작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지주들은 한 푼이라도 더 쥐어짜고 소작인들을 경쟁으로 몰아넣기 위해 갈수록 땅을 잘게 쪼개었고 농민들은 생산성이 높은 감자를 심어야만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감자병이 돌자 농사를 완전히 망칠 수밖에 없었다. 여유가 있어서 밀도 심고 귀리와 보리도 심을 수 있었다면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톨릭 신도와 식민지 주민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쓰고 수백 년 동안 삼등 국민으로 억압을 받다가 무장 투쟁을 통해 1923년 공화국으로 독립한 아일랜드는 1990년대 이후 켈트 타이거로 불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유럽 경제의 모범생이었다. 2000년 이후로는 1인당 GDP에서 영국을 앞지르는 감격도 맛보았다.
인구도 적지만 자원도 적은 아일랜드는 영어를 쓰는 양질의 노동력을 내세워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법인세를 내렸다. 똑같이 영어를 쓰긴 하지만 문화적 흡인력이 높은 런던 같은 국제도시를 갖지 못한 아일랜드로서는 나름대로 고민 끝에 택한 정책이었고 그런 전략은 먹혀들었다. 구글, 마이크로포스트 같은 굴지의 회사들이 아일랜드에 지사를 내고 연구소를 세웠다. 아일랜드의 실업률은 내려갔고 세수는 늘어났다. 아일랜드는 번영을 구가했다.
돈이 넘쳐나니까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집값이 오르니까 사람들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물쓰듯 돈을 썼다. 주차장마다 고급 자동차가 넘쳤다. 건설업자들은 부동산 붐을 타고 미친 듯이 집을 지어댔다. 인구 6천만 명인 영국에서 1년에 20만 채의 집을 짓는데 인구 450만 명인 아일랜드에서는 한때 1년에 10만 채의 집을 지었다. 건설 자금 조달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유로를 쓰면서부터 아일랜드는 거액의 돈을 유럽 굴지의 은행들로부터 저리로 빌려올 수 있었다. 그 돈은 공돈처럼 여겨졌다.
아일랜드 지도자들은 과열되는 부동산 경기를 진정시켰어야 했는데 유럽을 믿고서 건설 경기 과열을 방치했다. 그리고 법인세를 깎아준 데 이어 소득세까지 내렸다. 그리고 부동산 거래에서 발생하는 인지세로 모자란 세수를 메웠다. 소득세라는 안정된 수입을 내버리고 인지세라는 경기 변동에 훨씬 취약한 수입으로 국가 살림을 꾸려간 것이다. 유권자는 좋아라 했다.
아일랜드는 외국 은행에서 모두 2500억 유로를 빌렸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1400억 유로가 건설업체에 대출되었고 나머지는 부동산 투기 열풍에 미친 국민에게 대출되었다. 아일랜드는 금융 위기가 닥치자 재빨리 주요 은행의 국유화를 단행하고 공적 자금을 투입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국유화된 아일랜드 최대 은행 앵글로아이리시 은행 한 곳에만 지금까지 250억 유로가 투입되었지만 앞으로 최대 90억 유로를 더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이렇게 되면 재정 적자 규모는 GDP(국내총생산)의 32%에 육박한다. 그리스의 재정 적자가 12% 안팎이었으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아일랜드의 국가 부채는 2009년 1월 국유화 안이 나왔을 때는 45억 유
로면 앵글로아이리시 은행을 회생시킬 수 있다고 보았지만 그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일개 은행 하나를 살려주느라 아이를 포함하여 모든 아일랜드 국민이 일 인당 150만 원에 가까운 빚을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아일랜드는 그동안 인구를 늘리기 위해 자녀를 가진 가정에게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혜택을 줄 여유가 없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던 아일랜드 여학생이 금융 위기 이후 직장을 여덟 군데나 전전하다가 지금은 청소부로 일한다. 2011년 말까지 12만 명의 아일랜드 국민이 이민을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가 5천만 명인 한국에서 한 해 동안 무려 160만 명이 이민을 가는 셈이다. 그 중 상당수는 진취적인 젊은이가 많을 테니 아일랜드로서는 이중의 타격이다.
아일랜드는 지금 입주자가 없어 텅 빈 새 집, 짓다가 만 집 천지다. 켈트 타이거로 욱일승천하던 나라가 와르르 무너진 이유는 오직 하나, 부동산 거품과 건설 경기 과열을 정부가 제때 식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품은 반드시 터지고 과열된 전기선은 반드시 타버린다. 독일이 아일랜드나 영국과는 달리 착실히 경제 성장을 하는 것은 부동산 거품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아일랜드인은 가디언지에 실린 아일랜드 금융 위기 관련 기사에 단 댓글에서 한 줌의 건설 토호들과 금융 귀족들이 나라를 말아먹었다면서 <Republic of Ireland: 1923-2010>이라는 표현으로 아일랜드공화국의 침몰을 서글퍼했다. 그러나 아일랜드 국민의 70%는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부동산 광풍을 용인한 정부에게도 거기에 편승한 국민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깨달음의 다른 표현이다. 다시는 부동산 광풍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자성의 다른 표현이다.
부동산 거품을 일으킨 잘못은 정치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후손이야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에 평생을 짓눌려 살건 말건 자기만 흥청거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사실은 부동산 거품의 주역이다. 다행히 아일랜드 국민은 자성하고 있다. 망국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이다. 국민이 자성하는 공화국의 앞날은 어둡지 않다. 아일랜드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개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