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창조의 여정

장백산-1 2010. 12. 10. 10:07

앎이란 분리에서 유일한 실체로 가는 여정 중에 겪는 모든 변화다.

당신이 오감에 의지할 때 물리적인 세계를 근본적인 실체로 알 것이다.자신을 원자와 분자들로 구성돈 견고한 객체로 여기기 때문이

다. 당신의 앎이 하는 유일한 역할을 ‘저기’에 있는 세상을 보는 것 밖에 없다.

창조는 앎을 도구로 하여 그 자신을 창조한다. 의식은 객체화된 세계속의 물질로 화하는데 인간 각자의 주관적인 세계에서 보자면 그

물질세계는 경험에 불과하다. 어떤 경험이라도 가장 최소단위까지 쪼개보면 당신이 아는 그 어떤 것이라도 양자장(quantum field)에

서의 보이지 않는 작은 파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물질이라도 가장 최소단위까지 쪼개보면, 역시 양자장에서 일으

키는 작은 파동에 불과하다. 양쪽은 전혀 차이가 없다. 지고한 마술의 숨결을 빌리면, 인간의 뇌로서 바깥에서 일어나는 창조의 과정

을 견디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저 주의를 기울이고 지니기만 하면 창조의 스위치를 딸깍하고 켤 수 있다. 당신은 그 스위치를 켤 수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한계를 지어놓고도 그것이 실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믿기 때문에 그 한계는 실제

상황이 되어버린다. 자신이 스스로를 제한하는데 자신의 힘을 쓰고 있음을 깨닫기만 한다면 완전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잠재

적인 죄수이자 간수며 감옥을 여는 영웅이지만, 원래 이 모든 것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다.

이런 딜레마는 유일한 실체를 받아들이려는 모든 이들을 미혹해 왔다. 지혜를 얻고 주위의 모든 것들은 뇌가 만든 산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더라도 창조할 수 있는 조절 스위치를 찾는 것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려움 일이다.그러나 방법은 있다.경험

의 이면을 살펴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사자가 알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경험자가 성장하기를 멈추고 그 곳에 서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바로 그 순간 온 세계가 변하는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 곳에 도달하는 것은 ‘지금 여기’로 가는 길이다.

 

어떤 경험이 너무나 강력해서 사람들의 삶의 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때, 우리는 그것을 약진(breakthrough)이나 현신(epiphany)

이라고 한다. 통찰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새롭다거나 흥분되는 식견이어서가 아니다. 길을 걷다가 낯선 사람을 지나칠 수 있다. 당

신은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그와 연결된다. 그와 당신의 경험이 하나로 녹아드는 현신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을

느낌으로 부르든, 생각으로 부르든 상관없다. 그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돌연한 의식의 확장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당신은 숨겨진

차원을 맛본 것이다. 에고의 벽속에 당신을 가두는 습관과 대비해, 이 새로운 차원에서 당신은 더 자유롭고 더 밝아진다.

 

출처:디팩초프라 <완전한 삶>

출처 : 미래마음연구소
글쓴이 : 마음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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