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통령 김두관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인생] 남해 '독일마을'우춘자/빌리 부부

장백산-1 2011. 1. 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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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6) 남해 독일마을 우춘자·빌리 부부

ㆍ“살수록 정이 드는 아내의 조국에서 9988234 하고 싶다”
ㆍ<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만 아프다가 사흘째 편하게 죽자 >

지리산에 살면서도 언제나 그리운 곳이 있다. ‘보물섬’ 남해군이다. 우리 집 뒷산 형제봉에 오르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한눈에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고, 돌아서서 동남쪽을 보면 언제나 남해금산과 쪽빛 푸른 바다가 아슴푸레하게 보인다. 쨍하고 맑은 날이면 창선-삼천포연륙교까지 보인다. 바로 그 근처 창선면 대벽리 단항마을에는 천연기념물 299호인 왕후박나무가 500년째 그 자리에 서 있다. 허허로운 날이면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고개 숙이고 찾아가 늘 푸른 그늘의 품에 안겼다가 오는 곳이다. 그리하여 그리움은 언제나 푸르스름하다. 남해 쪽빛 바다와 드넓은 마늘밭과 가천 다랭이논과 후박나무·동백나무가 그러하듯이.

조성형 감독의 <그리움의 종착역>. 2009년 베를린영화제 초청작인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남해 독일마을이 그 배경이다. 조 감독은 20여년 동안 독일에서 생활한 유학생으로 2006년 첫 작품 <풀 메탈 빌리지>로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이 바로 <그리움의 종착역>이다. 1970년대 한국의 수많은 간호사·광부들이 ‘조국근대화의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이 다큐멘터리는 간호사들 중에서 독일인과 결혼해 20~30년 살다 한국에 돌아와 남해 독일마을에서 노후를 보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지난해 ‘G20정상회의 영화대축제’ 개막작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화제는 말 그대로 ‘졸속’이었다. ‘무리한 G20 홍보’로 비판받아 마땅한 이 형식적인 영화제의 11월3일 관객은 단 3명뿐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제자리’가 있고 어울리는 ‘그릇’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좋은 영화는 언제 어디에서나 좋은 영화이고 그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은 계속된다.

이원규 시인 촬영

지금은 드라마 촬영지 등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남해군 삼동면 독일마을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우춘자 할머니(74)와 그의 독일 남편 ‘빌리 할아버지(빌헬름 엥엘프리드·81)’를 만났다. 경북 왜관 출신의 우춘자씨는 71년 간호사로 독일로 건너가 33년 동안을 살다가 남편 빌리 할아버지와 2003년에 남해 독일마을로 제일 먼저 들어왔다. 독일마을 1세대다. “서른세 살에 건너가 독일에서 33년을 살다가 돌아왔으니 여기 이 마을에서 33년은 살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욕심이겠지예?” 하며 환하게 웃었다. 빌리 할아버지는 독일에서 항공계통에서 일을 하다 정년퇴임했다. “자식들 둘은 이미 환갑 전후의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는 아내의 그리운 조국에서 말년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며 ‘한국이 제2의 조국,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아직 우리말에 익숙지 않은 빌리 할아버지는 “한국이 정말 아름답다. 특히 남해는 천국 같다. 오기를 잘했다. 내 이름이 엥엘 프리드인데 ‘평화의 천사’라는 뜻이다. 나는 내 인생의 종착역인 이곳에서 ‘평화의 천사’로 살다 아내 곁에서 죽을 것”이라며 우리말 ‘김치’ ‘소주’ ‘맥주’ ‘막걸리’를 발음하며 행복해 했다.

우춘자 할머니는 최근 운전면허증을 땄다. 지난해 연말에 시작해 한번 떨어지고 두 번 만에 취득했으니 놀라운 집중력이다. “독일에 살 때부터 면허 딸 생각조차 못했지예. 내가 어릴 때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서인지, 보수적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별일도 없이 운전하고 다니는 여자들을 보면 별로 보기에 안 좋더라고. 독일사람들은 워낙 검소합니더. 이 마을에서도 독일사람들은 모두 소형차를 타는데 한국 사람들은 모두 큰 승용차를 몹니더. 그런데 지난해부터 남편의 몸이 좀 안 좋아진 데다, 캄캄한 밤에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둘이서 아주 고생을 했지예. 그때 마음을 먹었습니더. 나도 운전면허를 따야겠구나 하고예. 이제 봄이 오면 나 혼자서도 남해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뛰는 거 있지예.”

독일마을은 2001년부터 독일거주 교포들의 정착생활 지원과 조국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시작됐다. 남해군 전 군수인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역할이 컸다. 천연기념물 제150호인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내려다보이는 3만여평의 부지에 기반을 조성해 40여동을 지을 수 있는 택지를 독일교포들에게 분양했다. 전통 독일식 주택으로 현재 29동 정도가 완공돼 12가구가 상주하고 있다.


모두들 독일에서 연금을 받으니 생계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민박집을 운영하기도 하고, 한 부부는 독일식 소시지와 빵을 직접 만들어 팔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맥주축제를 열기도 했다. 마차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오크통 개통식, 맥주 빨리 마시기, 팔씨름 경기, 통기타와 밴드 공연 등이 성황리에 진행됐다. 특히 독일 정통맥주와 국산 생맥주, 그리고 남해에서 생산한 흑마늘을 첨가한 흑맥주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우 할머니·빌리 할아버지 부부는 매주 금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어김없이 춤을 추러 간다. 댄스 교습소가 아니라 인근 삼동면 동천보건진료소로 가는 것이다. 7년째 다니고 있다. 김향숙 보건소장(46)과는 2003년 같은 시기에 이곳에 왔으니 아주 특별한 인연이다. 보건소 옆 건물 2층에는 이미 20여명의 할머니들이 모여 있었다. ‘청일점’인 빌리 할아버지는 이 할머니들에게 ‘스타’가 된 지 오래다. 이 할머니들과 전국댄스경연에도 참가했다. 춤을 출 때도 우춘자 할머니는 빌리 할아버지와 아예 멀찌감치 떨어져서 춘다. 아직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다른 파트너들과 즐겁게 춤을 추라고 배려하는 것이다.

김향숙 소장이 살갑고도 경쾌한 목소리로 “자아, 따라하세요. 9988234!” 선창을 하자 모두들 “9988234!” 하고 복창을 하는 것이었다.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궁금해 하자 김 소장이 깔깔 웃으며 그 암호를 해독해주었다. “99는 99세, 88은 팔팔하게, 2는 이틀, 3은 사흘째, 4는 죽을 사자이니 합치면 이렇지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만 아프다가 사흘째 편하게 죽자는 말이지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신나는 구호입니다.” 모두들 즐거워하며 박장대소를 했다. 가운을 벗어던지고 연노랑 댄스복으로 갈아입은 김 소장의 춤을 따라 추는 할머니들은 모두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이원규 시인 촬영

그런데 빌리 할아버지는 지난해보다 춤동작이 많이 둔해졌다고 한다. 여든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힘들고 어려운 동작들을 소화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래도 얼굴은 연방 ‘꽃밭 속의 소녀들에게 둘러싸인 수줍은 소년처럼’ 홍조를 띠고 있었다. 우춘자 할머니가 말했다. “제 남편 흉 하나 볼까예. 이 양반이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들면 시무룩해진다니까. 물론 춤 잘 추고 예쁜 할머니들을 좋아하지만 그보다도 한국말도 아직은 잘 못 알아듣는데 친절하게 춤동작을 가르쳐주지도 않고 혼자서만 추는 할머니들을 싫어해요. 금방 삐진다카이, 허허 참 내.”

이 부부가 사는 집의 이름은 ‘하이디 하우스’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 따왔다. 독일마을에서 하이디와 양치기 소년 페터처럼 살겠다는 소망이 담겨 있는 집이다. 그래서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도 ‘하이디’와 ‘페터’이다. 정통독일식 집인 하이디하우스에서 바라보는 물건리 방조어부림과 남해 바다의 풍경은 절경이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 지정업소인 이 집의 2층에는 두 개의 숙소가 있다. 이 방에서 내려다보는 일출과 월출은 장관이다. 독일마을은 정동향을 바라보고 있어 매일 아침 특별한 일출을 맞이할 수 있다. 해뜨기 전의 검푸른 바다에서부터 태양의 위치에 따라 빨주노초파남보로 하루 종일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음력 보름이면 월출이 대장관을 이룬다.

우춘자 할머니는 “이 마을이 관광지화되는 바람에 날마다 공사 중인 데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생활에 불편도 많지예. 그래도 살면 살수록 정이 드는 곳입니더.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국에서 이렇게 받아주었으니, 아무나 불쑥불쑥 찾아오더라도 어른 아이 마다하지 않고 물이라도 한 잔 주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톡 깨놓고 말하자면 김두관 도지사 같은 정치인이 어데 있능교? 남해군수와 장관 마치면서 빚진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을끼라. 우리야 이 마을에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만, 이런 사람이 대통령 안되면 우리나라도 희망이 없는 거 아잉교?”

끝끝내 조국과 고향을 떠나 이 독일마을을 ‘인생의 종착역’으로 삼은 노부부의 눈길에 지난 시절의 말 못할 애환과 행복이 동시에 묻어나는 듯했다. 이 아름다운 노부부를 위해 나 또한 마음속으로나마 기도 같은 복창을 했다. 9988234!

<이원규 | 시인>


입력 : 2011-01-25 21:15:52수정 : 2011-01-25 21: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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