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아 내 말을 들어라 |
“주인공아, 내 말을 들어라. 몇 사람이나 공문(空門) 속에서 도를 얻었는데, 너는 어찌 고해에서 길이 윤회하는가. ” 여기에서 주인공이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기에 제목 자체가 스스로를 경책하는 글, 즉 <자경문(自警文)>이 아니던가. <임제록>에서는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있는 곳마다 진리의 세계’라고 말한다. 당나라의 서암스님은 매일 스스로 주인공을 부르고 스스로 대답하였다고 한다. “주인공아”라고 부르고는 스스로 “예”하고 대답하였다. “성성하게 깨어있어 남에게 속지마라.” “예, 예”하고 스스로 묻고 답하곤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참선 공부자체가 주인공 노릇하는 법을 공부하는 것이다.
항상 깨어 남에게 속지 말라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부처님조차도 주인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부처님과 인간의 관계는 주종관계가 아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또는 아버지와 아들ㆍ딸의 관계로 서술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주님과 종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찾을 수 없다. 여래의 열 가지 이름 가운데 천인사(天人師)라는 말이 있다. 천신과 인간의 스승이라는 말이다. 여래는 인간의 스승일 뿐 아니라 신들의 스승이기도 하다. 실제로 경전을 보면 수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또한 신들이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고 귀의하는 내용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불교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도반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신조차 주인으로 섬길 필요가 없는데, 하물며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주인으로 섬겨서야 되겠는가. 다시 이 스님이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러자 맛있는 음식을 한상 가득 내놓았다. 그러자 스님은 그 음식들을 옷에다 쏟기 시작했다. 이상히 여긴 주위사람들이 묻자,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 이 옷을 보고 음식을 주었으니, 옷이 음식을 먹어야하지 않겠소.” 온통 공부에 관심이 가 있기 때문이다. 음식의 맛이 제대로 느껴지거나, 옷차림에 신경 쓰기 시작한다면 이미 그만큼 마음공부에서는 초점이 멀어져 있는 것이다.
월호스님 /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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