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몸ㆍ마음을 쉬니 본 마음 드러나 (월호스님의 선어록의 향기)

장백산-1 2011. 3. 25. 02:02

 

몸ㆍ마음을 쉬니 본마음 드러나

 

근원으로 돌아가 돌이켜보니 온갖 공을 들였구나.

차라리 당장에 귀머거리나 벙어리 같을 것을.

암자에 앉아 암자 밖 사물을 시비하지 않으니

물은 절로 아득하고 꽃은 절로 붉구나.
 

                                                                    
- <십우도 9. 返本還源>-


몸이 쉬고 마음이 쉬니 본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본마음이라고 해서 따로 특별한 형상과 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눈앞의 세계가 그대로 본마음의 세계이다. 몸과 마음을 떠나서 따로 본마음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찾아 나서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이른바 무쇠와 강철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무쇠나 강철이나 쇠이기는 마찬가지지만, 무쇠를 연마하여야 강철이 된다.
연마의 과정을 거친 강철은 어떠한 용도로든 쓸 수가 있다.
하지만 연마의 과정을 거치지 아니한 무쇠는 쉽게 부서진다.
 
특별한 형상ㆍ소리 없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


앞서의 단계가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면, 이 단계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이 된다.

공하다는 것은 텅 비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빈 것이 아니라,
텅 비었기 때문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른 바 일정한 형상이 없으므로 어떠한 형상으로도 나툴 수 있으며,
일정한 소리가 없으므로 어떠한 소리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러 수행은 연습이요, 생활이 실전이 된다.

사격장에서 아무리 훌륭한 솜씨를 뽐낸다 하더라도,
실제의 전투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진 삼독(三毒)의 쉼이 생활에서도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을 매우 싫어하던 바랏와자는 성난 표정으로 부처님께 물었다.

“인간은 무엇을 부수어야 초연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까?
인간은 무엇을 버려야만 슬픔이 없겠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그로 하여금 화내는 마음을 파괴하도록 하라.

그러면 그는 초연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으리라. 그로 하여금 화내는 마음을 부수도록 하라.
그러면 그에게 더 이상의 슬픔은 없으리라.”

바랏와자는 부처님의 이 같은 가르침과 의연하신 모습에 감동받아 비구가 되었다.

그의 동생인 악꼬사는 이 소식을 듣고 잔뜩 화가 나서 부처님께 와서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이 다 끝나기를 기다려 침착한 어조로 이렇게 물으셨다.
“브라흐민이여, 예를 들어 그대에게 찾아온 손님들이 그대가 제공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손도 대지 않은 채
되돌아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야 내 것이 되겠지요.”
“바로 그러하니라. 그와 같이 여래는 그대의 난폭하고 사나운 욕설을 한마디도 받아들이지 않았나니,
그것은 이제 그대에게 되돌아갔느니라.”

이에 악꼬사 역시 부처님께 감화되어 잘못을 고백하고 제자가 되었다.

나쁘게 대하여 오는 사람을 나쁘게 상대하지 않는 것. 이야말로 근원으로 돌아간 자리가 되는 것이다.

월호스님 /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출처 : 석가모니불

글쓴이 : 동다송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