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변화하는 사회와 무용지식' [대한민국이 성공하려면]

장백산-1 2011. 5. 6.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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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성공 하려면
2011년 05월 05일 (목) 00:44:58 김병준 참여정부 정책실장 webmaster@socialdesign.kr

[아래 글은 지난 2월 초 <(사)우리는 선우>에서 김병준 전 참여정부 정책실장(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장)이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2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그리고 5월 11일부터 6회에 걸쳐 매주 수요일 저녁 7시30분에 여의도 라디오21 공개홀(삼보빌딩8층)에서 진행되는 김병준 실장의 강연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 드립니다.]

 

 

   

<대한민국이 성공하려면>이라는 매우 큰 법회 제목을 부여받았습니다. 사실 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세상 변하는 이야기를 드리고, 그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으면 좋겠는가의 이야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편향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인연이 주어져서 지난 참여정부에서 내리 5년을 정책의 중심축에 있었고, 로드맵을 만들고 집행하고 평가했습니다. 정부 곳곳에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했고 여러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 중에도 참여정부에서 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좀 편향되거나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시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옳다고 드리는 이야기니까, 판단은 여러분들께서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우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다들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전공이 정책학이라, 세상 바뀌는 것을 따라가면서 살아왔는데, 최근의 변화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 길을 잃을 정도입니다.

<국가역할의 축소>

사회가 개방화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개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개방을 하지 않고 성공한 국가는 없습니다. 세계역사를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개방을 하고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성공한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무역의존도가 높은, 말하자면 수입과 수출이 GDP의 80%를 차지하는 곳에서 개방을 하지 않고 버티기는 힘이 듭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현실이 그러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도 아닙니다.

저는 70년대에 미국유학을 갔었는데요, 속칭 ‘유학고시’라는 것을 치르고 갔었습니다. 1년에 모든 전공분야 다 합쳐서 400여 명씩 뽑아서 그 사람들에게만 문교부장관이 추천서를 써주었고, 이것으로 외무부 여권과에서 여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은 ‘비정규유학생’이라고 해서 회사에 취직한 것처럼 꾸며서 나가거나, 아예 이민형태로 유학을 갔습니다. 요즘은 입학허가서 받고 짐 싸서 가면 되는데, 당시에는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었습니다. 나가기도 힘들었지만 들어 올 때도 복잡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들어올 때 제가 가지고 있던 책의 상당 부분을 버려야 했습니다. 한국에 들어오면 시비가 붙을 수 있는 책들을 다 버린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사상검열이라는 벽돌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쌓여 있었지요. 또 여권이라는 벽돌, 비자라는 벽돌이 쌓여 있고, 관세라는 벽돌이 쌓여 있습니다. 국가 간의 이동을 부자유스럽게 하는 그런 벽돌이 높게 쌓여 있었는데, 이제 그 벽들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다들 비자 안 받고 다른 나라에 가곤 합니다. 지금 마르크스 책 가지고 들어온다고 공항에서 잡는 거 없지요. 잡아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인터넷 통해서 금방 들어와 버립니다. 인터넷 들어가서 외국의 인터넷 강의까지 들어버리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국가 간의 벽이 없어지다 보니, 사람도 이동하고, 자본도 이동하고, 사상도 이동합니다. 이렇게 이동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점점 축소됩니다. 여권발급하고 비자내주고 수입규제하고, 이런 것들이 전부 국가의 역할들인데 국가가 그런 일들을 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과거에는 국가가 이러한 수단들을 통해 국내 산업을 보호해 해주었습니다. 제3공화국의 박정희대통령은 높은 수입규제의 벽을 쌓아 주었습니다. 아예 수입을 금지하거나 관세를 높이 책정해 국내 산업을 보호해주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죠. 차관을 도입해서 선별적으로 지원해주었습니다. 지금 이런 일 할 수 있습니까? 아차 순간에 모두 ‘게이트’가 됩니다. 지금의 잣대로 제3공화국의 산업정책을 보면 수십 명을 최소한 20~30년씩 감옥에 보내야 할 것입니다. 고위관료나 정치인치고 감옥 안갈 사람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국가위의 기업>

지금은 국가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오히려 기업이 우위에 서서, “세금 깎아라,” “규제 풀어라” 요구를 합니다. 요즘 말하는 <신자유주의>입니다. 기업이 얼마나 센지 법인세 세율 변화를 한 번 볼까요. (법인세 분석 차트 보면서 설명) 법인세는 기업이 돈을 번 것에 대해 부과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약 25% 내지 26% 부과합니다. 즉 삼성이 1조원을 번다고 하면 약 2천 5백억원의 법인세를 낸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 법인세가 우리나라 전체 세수의 약 25% 정도를 차지합니다. 유럽의 법인세 세율은 그동안 대체로 40%대 정도였습니다. 독일과 같은 나라는 52%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10년 후 차트를 가르키며)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전부 다 내렸습니다. 52%이던 독일이 30.2%로 내렸고, 40%가 넘던 일본이 20% 이하로 내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지금 재정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어려운 시간을 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국가부채가 자그마치 일본 국민총생산의 200%가 넘습니다. 우리나라는 얼마냐? 계산이 서로 다를 수 있어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어떤 식으로 계산을 해도 40%가 안 됩니다. 공기업까지 다 포함하면 6~70%가 되겠지요. 국민총생산, 즉 대한민국 국민이 일 년 내내 먹고 입고 아무 것도 안하고 그대로 모으는 총생산의 40% 또는 6~70%를 빚으로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일본은 이게 200%가 넘어버렸습니다. 이 국가부채가 일본의 지난 잃어버린 20년을 설명하고 있고, 지금 잃어버린 30년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국가부채가 너무 많으니까 이자율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이자율을 조금만 올려도, 즉 1%만 올려도 국가가 더 많은 돈을 이자로 지불하게 되고 그만큼 부채문제는 더 심각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채를 갚으려면 당연히 세금을 더 거둬야 하겠지요. 그런데 지금 일본은 세금을 더 거두겠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법인세를 내리겠다고 합니다. 왜? 다른 나라들이 다 내리고 있거든요. 기업을 유치하려고 말입니다. 법인세가 높으면 다국적기업이 일본에 들어왔다가도 빠져나가버리니까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들이 법인세 세율을 계속 내리고 있고, 조만간 15%까지 내리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습니다. 40%대를 유지하고 있던 유럽 국가들이 법인세를 내린 이유는, 아일랜드가 어느 날 갑자기 12.5% 플랫으로 낮추어버리니 이들 국가들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국가 간에 소위 “조세경쟁(tax competition)”이 일어난 겁니다. 조세경쟁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규제 세일즈”도 동시에 일어납니다. 환경규제 노동규제 등도 풀어주겠다고 “세일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현상입니다. 조세경쟁을 해서 법인세가 낮아져 버리면, 국가가 빚을 지게 되고, 국가가 많은 빚을 지게 되면 이자율도 제대로 못 올리게 됩니다. 돈 가진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돈을 이자율이 높은 다른 나라로 가지고 나가버립니다. 당연히 그러겠죠. 여러분들은 그 돈을 묶어두겠습니까? 펀드들이 앞서 가지고 나가는 일을 합니다. 국가부채가 높은 일본의 돈들이 그렇게 해서 외국으로 빠져나갔는데, 그게 바로 “엔 캐리”입니다. 엔 캐리가 강남까지 대거 들어왔지요. 고급병원들 짓고 부동산 사고 그랬습니다. 돈이 자국에 투자되는 게 아니라 빠져나가니까 당연히 일본경제는 그만큼 어두워질 수밖에 없지요.

그런 상황에서도 세금을 더 걷겠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오히려 더 낮추겠다고 합니다. 국민을 위해 규제를 더 강화해야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서로 풀겠다고 합니다. 국가위에 기업이 올라서서 그 기업이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겁니다. (국가부채 지도를 보며) 이것 보십시오.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국가부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올라가고 있고, 일본만 200%가 아니라, 터키, 그리스, 포르투갈, 영국 등도 국가부채가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정한 60% 상한권고선을 이미 넘어서버렸습니다.(EU 국가들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국가부채가 국민총생산의 60%를 넘지 말도록 하자고 협약했었음). 이러한 경향이 계속되면 세계의 경제는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몇 년 전에 터졌던 미국의 위기는 “금융위기”입니다(이것은 잠시 후에 다시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상태로 10년을 더 가게 되면 세계는 “금융위기”가 아니라 “재정위기”를 겪게 되어 있습니다. 국가들이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이대로 가면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고용 없는 성장>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해 볼까요. 시간이 많이 가서 짧게 짚고 가겠습니다. 성장은 분명히 이루어지는데 고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림 설명/ 기아자동차 슬로바키아 조립공정 과정에 대한 그림) 제가 공장에 들어가 봤고 준공식에 참여했었습니다. 용접공장 규모가 몇 만평인데 사람이 없었어요. 컨트롤타워에 4명 근무하면서 380대의 로봇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기계화, 전산화, 자동화 등의 영향입니다.

학교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학생숫자가 불어났는데 교직원 숫자가 늘어났습니까? 학교가 3배, 4배 성장했어도, 학교 직원의 숫자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성장을 하는 것은 분명한데 고용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 현상입니다.

초기산업사회에서는 성장이 일어나면서 일이 많아졌고 더 많은 고용을 불렀습니다. 지금은 고용이 멈췄습니다. 사회가 한 스텝씩 발전할 때마다 고용은 오히려 뚝뚝 떨어집니다. 리프킨(Rifkin)이라는 미래학자는 2050년이 되면 전체 경제인구의 5%가 전 산업을 다 돌릴 수 있을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95%는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조만간 대학교수들도 매우 곤란해질 겁니다. 사이버 강의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면요. 저는 행정학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학교마다 행정학 교수를 둘 이유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행정학자 10명이 강의하고 사이버로 들어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이런 현상 막을 수 있을까요? 막을 수 없습니다.

<양극화>

양극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회제도가 잘못되어

   
그러기도 하고, 그 외에도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원인이 하나 있습니다. 지식정보사회로의 진전입니다. 원시노동을 할 때는, 나의 생산력이 아무리 커봤자, 내가 상대방보다 10배 이상의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힘이 아무리 세다고 해봐야 다른 사람이 논 한마지기 농사를 할 때 열 마지기 이상의 농사를 하기는 힘들겠지요. 당연히 부자가 되어도 10배 이상의 부자는 될 수가 없었습니다.

화폐경제시대가 되면서 돈이 돈을 버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매개로 굉장히 많이 벌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하게 나기 시작하지요. 그래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몇 사람이 크게 버는데 비해 대다수는 그렇게 크게 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식정보사회가 되면서 이 문제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양질의 지식과 정보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엄청납니다.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세상을 지배하고 크게 먹습니다. 양질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느냐 여부에 따라 잘살고 못사는 사람들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집니다. 특히 육체노동,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기계나 산업기술이 모두 대체해버리니 끊임없이 퇴출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자연히 지식이나 정보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능력이 높은 사람들과의 간격이 계속 벌어집니다.

우리 사회도 어쩔 수 없이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도표를 보며). 지니계수가 악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만의 증상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여정부 들어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못사는 사람 도와준다고 하더니 양극화가 더 심화시켰다고 욕을 합니다. 하여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가 잘못해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면 춤을 추겠다고 말입니다. 왜? 그건 곧 없어질 정부니까요. 참여정부 없어지고 노무현대통령 그만두고 나면 양극화가 나아질 것 아닙니까?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양극화라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하나의 동력을 가지고 계속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 어떤 문제가 일어나게 될까요? 사회갈등이 커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길게 이야기드릴 이유가 없는 부분입니다. 그것과 함께 매우 중요한 문제는 소비시장의 변화입니다. 중산층 이하의 구매력이 저하되면서 시장을 위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소비가 있어야 시장이 계속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케인즈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사회에서도 이제 중산층 이하를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는 점점 더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양극화가 계속된다면 upper class, upper middle class를 상대로 하는 백화점 비즈니스는 잘 될 것이지만 재래시장은 점점 힘들어 질 것입니다. 백화점 명품 이런 것은 더욱 잘될 것입니다. 심지어 원룸 임대사업을 해도 부잣집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스카이대학” 주변에는 세가 꼬박꼬박 잘나온다고 합니다. 이런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투자부진: 금융위기의 본질>

기업들이 투자를 꺼려합니다. 어느 정도인가하면 한국의 30대 기업이 저축하고 있는 돈이 약 250조 정도라 합니다. 돈 없어서 투자 못하는 시대는 옛날 말입니다. 지금은 기업들이 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러냐고요. 아닙니다. 많은 나라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입니다.

금융위기 전 미국의 기업들은 투자를 하는 대신 가진 돈을 은행에 비축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드려 송구스럽습니다만 2005년도에 저는 미국에 경제위기가 온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2005년도 말 APEC회의 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앞으로 세계경제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APEC 국가들이 공동대처를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만, 당시에 어떤 신문도 이를 싣지 않고 한겨레신문에만 2단 기사로 조그맣게 난 적이 있습니다. 건방진 말씀을 드리자면 대통령께 그런 발언을 해야 한다고 제가 제안을 드렸었는데요,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당시 정책실장을 하고 있을 때인데 미국 경제에 대한 한국은행 자료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정상적인 경제라면 가계가 저축을 하고, 그 돈을 기업이 빌려가서 투자를 하는데, 놀랍게도 기업이 저축을 하고 가계가 빌려가는 현상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가계가 그 돈을 빌려가서 뭘 하느냐? 부동산을 삽니다. 그때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엄청 좋았습니다. 너도 나도 부동산에 투자했습니다. 미국의 금융자본들은 좋아라하면서 빌려줬습니다. 처음에는 우량고객 소위 “prime” 고객에게만 빌려줬습니다. 돈 안 떼먹을 사람들, 쉽게 회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빌려준 겁니다. 그래도 돈이 남았단 말입니다. 그러니 “sub-prime,” 이른바 “비우량고객”에게까지 빌려줬습니다.

결국 너도 나도, 한 채 두 채 막 샀습니다. 5억 주고 산 집이 8억이 되고 10억이 되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은행에서 통지를 합니다. “모기지 익스트렉션(mortgage extraction)” 즉 올라간 만큼 더 빌려쓰라 부추깁니다. “당신 집이 5억에서 10억이 되었으니, 4억 빌려갔는데 지금 오시면 4억을 더 빌려드립니다” 이런 식이지요. 가만히 있어도 집값이 오르고 돈을 또 빌려준다고 하니, 돈 빌려서 여행 다니고 자동차사고, 또 집을 사고 그랬습니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어느 순간에 한번 딱 막혀서 더 이상 빌릴 수가 없는 단계에 이르거나, 집값이 조금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와장창 내려앉아버렸습니다.

근본원인은 기업이 투자를 안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기업에 왜 투자를 하지 않는가? 한국 기업들도 왜 자금여력이 있는 만큼의 투자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이 불러 놓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안합니다. 대통령이 재벌들 불러 놓고 투자하라는 것 말이지요....... 일종의 ‘쇼’입니다. 투자안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거든요. “대통령 투자유치 권유,” 이렇게 신문에 실리고,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기사 몇 줄 나면 그걸로 끝나는 겁니다. 정부입장에서는 목적 달성한 겁니다.

옛날 같으면, 예컨대 박정희대통령 시절 같으면 투자해서 손해 봐도 여러 가지 다른 걸로 보상해 주었습니다. 하다못해 간척사업을 하게 해준다거나, 다른 사업을 하게 해준다거나 하는 등으로 보상을 해주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해 줄 수가 없습니다. 모두 “게이트”가 되기 때문이지요. 대통령 하라고 해서 투자했다가 손해 보면 경영권만 위험해질 것이고, 정권 바뀐 뒤에 자칫 배임으로도 걸려들면 기업인 자신만 괴로울 뿐입니다.

따라서 기업은 기업 자체의 경영판단에 의해서 사업을 해야 하는데, 이게 영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기술환경이나 시장환경이 워낙 빨리 변하는데 비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시장적 장치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투자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10년 뒤에 수익이 발생할 것을 보고도 공장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장 짓는 사이에 금방 신기술이 나와 버립니다. 예를 들어 현대제철이 고로를 건설하고 있는 동안에 포항제철이 공정과정을 두 단계 줄이는 기술을 내어 놓습니다. LG필립스가 모니터를 생산하기 위해 10년 걸리는 공장건설을 하는 사이 모니터 자체가 필요 없는 영상기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어디로 갈 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예전에 시티폰이 대박이라 했는데 시티폰과 삐삐가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정신을 못 차리도록 일어나니까, 대규모 투자를 모두 회피해 버립니다.

돈은 어디로 가느냐? 대규모 시설투자 자금들이 지금은 단타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단타로 돈 벌기 가장 좋은 곳이 어디겠습니까? “돈 장사” 입니다. 모조리 M&A시장이나 금융시장으로 몰려갑니다. 돈이 돈 먹는 돈 장사를 자기들끼리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조업 기반을 강화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돈 장사하고, 환치기하고 주식 샀다가 팔고, 온통 관심이 그쪽으로 가 있습니다. 공장 짓고 기술개발 하는 건 관심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현상입니다.

<가족의 붕괴>

아주 급격한 변화의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이어온 우리 사회의 전통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가족”입니다. 가족제도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혹시 “바람난 가족”이라는 영화 보셨나요? 온 식구가 다 바람을 피웁니다. 집밖에서 스트레스 받으면 집에 가서 쉬고, 마음을 가다듬고 재충전을 하고, 그래서 다음날 다시 일하는 것이 전통적이 모습 아닙니까? 가족은 그러한 가치와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집에 들어가면 더 스트레스 받습니다. 게다가 집에 어느 누가 큰 병이라도 났다하면, 고부간에, 형제간에, 동서 간에, 완전히 원수가 됩니다. 이 스트레스를 <바람난 가족>에서는 전부 다 “바람”으로 풉니다.

자유당 시절에 가장 주부의 탈선을 그린 정비석의 “자유부인”이란 소설이 나왔을 때, 당시 문학평론가들은 이 소설이 “인민군 50만 명보다 더 무섭다”고 했습니다. 히트를 치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에 나와서는 안 되는 소설이라는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바람난 가족”은 꽤 히트를 쳤는데요, 어쩌자고 이런 영화 만들었냐는 지적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라는 관념 자체가 그만큼 옅어진 겁니다.

가족 개념의 약화 역시 앞에 말씀드린 다른 현상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덜 부서진 셈입니다. 뭘 보고 알까요? “이혼율”과 “청소년 가출율” 등을 보면 압니다.

(국가별 혼외출산율 그래프 보여주며) 재미있는 도표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이슬란드는 혼외출산 비율이 65%입니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50%가 넘고, 프랑스는 아이 2명이 태어나면 1명이 혼외출산입니다. (그래프 상으로는) 한국사회는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2009년, 2010년은 혼외출산이 확 늘어났습니다. 동성동본 혼을 인정해주는 제도적 변화가 있다 보니 신고율이 높아진 것이긴 한데요, 어찌되었건 그 비율이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간의 결혼인 동성혼을 인정하는 국가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벌써 20여개 국가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붕괴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붕괴되면 어떻게 될까요? 가족이 수행하던 기능이 있지 않습니까? 가족이 부모를 돌보고 모셨는데, 가족이 붕괴되면 노인들을 누가 모시고 돌보지요? 당연히 국가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지역공동체가 하든가, 둘 중의 하나가 해야 합니다. 가족개념의 약화가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까지 바꾸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족제도가 붕괴되는 만큼 노인복지 등에 있어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국가의 재정적 기반 역시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국가가 기대된 역할을 못하거나, 기대된 역할을 하는데 필요한 재정적 기반을 갖추지 못하면 여러 가지 나쁜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변화 양상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렸는데요, 변화는 이것뿐이 아니지요. 중요한 변화 몇 가지를 가볍게 짚어 본 정도입니다.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하루고 이틀이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입니다. 이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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