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업과 윤회란 무엇인가?-7. 업인과보는 진리

장백산-1 2011. 7. 27. 02:56

7. 업인과보는 진리

그런데 부처님께서 업인과보를 '법칙이다'라고 말씀하신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업인과보의 법칙. 왜 법칙을 붙인 것이 중요할까요?
법칙(法則, 다르마타)이라는 말의 의미는 불교교리에서 진리를 뜻합니다.
즉 업인과보는 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보통 다양한 논의를 불러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흔히 불교라는 종교 안에서 진리를 뜻하는 말이 무엇인가? 하면 혹자는 사성제(四聖諦)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는 진리라고 번역하지 않고 사실(사띠아)이라고 번역됩니다.
꽃이 아름답다고 할 때 이것은 사실이지 진리라고 하기는 어렵죠.
이렇듯 사실과 진리는 거리가 먼 말입니다.
불교 안에서 진리라는 말을 찾아보면 다르마타 즉 법칙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인연소생, 상의상관, 연기 등 여러 가지 표현이 있지만 최초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의 표현은 업인과보인 것입니다.
즉 육근이 의지적인 행동으로 일으킨 업이야말로 유일한 원인이고 그 나머지 사건들은 모두 그것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업인과보의 법칙. 또는 내가 선하게 하면 반드시 선한 결과가 돌아오고 내가 악하게 하면 반드시 악한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은 진리라는 거죠.

이렇게 업이라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윤회(輪廻)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리가 진리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 중에서 최소한 보편타당성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들어맞는데 저기서는 들어맞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리라고 말합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언제 어디서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편리한 환상이나 억지된 강요 속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진리의 속성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빠짐없이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타당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범우주적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업인과보가 진리라는 말 속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업인과보라는 틀에 속속들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업인과보가 들어맞지 않는 점도 있다는 겁니다.
가령 아무리 열심히 살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사람도 끝내는 궁핍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약고 탁한 사람인데도 호의호식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죽하면 부조리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흔히 사회의 부조리라는 말을 쓰잖습니까?
업인과보를 사회 윤리적인 입장에서 표현을 바꾸면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로 바뀌죠.
이 세상 모든 것이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적용을 받고 내가 공들인 만큼 결과로 나타나는가에 대해서 곰곰이 반추해 보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전혀 엉뚱한 예상 밖의 결과를 만나면서 우리는 망연자실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부조리(不條理)하다고 말합니다.

때때로 사회부조리 현상에 부딪치고 내 뜻대로 안되는 일에 봉착하면 우리는 참 힘들어집니다.
부조리라는 말은 조리에 맞지 않다는 뜻이죠.
인과법에 맞으면 조리라고 하죠.
하지만 원인과 결과가 상응성이 없으면 부조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조리현상은 세상에 존재합니다.
부조리가 존재하는 한 업인과보를 법칙이다, 혹은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뜻대로 안되는 세상살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해야 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벌어지는가 하면 반대로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 20억원짜리 복권이 당첨되는 경우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업인과보로 설명이 안됩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운명 혹은 신의 뜻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가능할까요?
부처님 당시에도 삼종외도(三種外道)라 해서 유신론, 운명론, 유물론의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그런 종교들이 세상에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을 잘 설명해 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고, 운명이기 때문에, 또는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간단할 테니까요.
그래서 유신론적인 종교도 세상에 존재하고, 운명론적인 사고방식도 암암리에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신을 중심으로 한 사유체계, 또는 유물론이나 운명론을 진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업인과보에 적용했던 보편타당성이라는 요건을 이 견해들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어야만 진리이기 때문이죠.

신을 중심으로 한 유신론적인 종교, 기독교 같은 경우가 해당되겠죠.
부처님 당시는 브라만교입니다.
그 종교들도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악에서 선이 나오고 선에서 악한 결과가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온통 어처구니없는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는 선하게 산 사람이 행복한 결과를 맞는 경우도 있고 악하게 살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죄를 지었다면 결국 벌을 받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 현상을 지켜보면 신이나 운명론은 맞지 않습니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네가 죄를 받고 네가 선하게 살았으니 네가 상을 받아라 한다면 그건 업인과보가 착착 들어맞는 세상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신이나 운명론을 중심으로 한 종교가 결정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설명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신의 뜻으로 이루어진다면 인간이 죄를 지을 때도 신의 뜻으로 짓고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내 몸을 움직인 것에 죄가 있지만 신 역시 죄를 짓게 한 책임이 없다고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임은 피조물에게만 묻습니다.
영광은 신에게만 돌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앞뒤의 말이 맞지 않으면 진리가 아닙니다.
타당하지 않으면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출처 : 연등사(연등 학생회 출신)
글쓴이 : 3기김정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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