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업보(業報)는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의 관계
육근이 일으킨 것은 작용, 육경이 보이는 반응은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업보라는 말이 성립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교학 속에서의 삼단계 범주를 적용해야 합니다.
즉 존재와 사건, 관계의 범주라는 삼단계를 적용하는 것이죠.
존재라는 것은 그야말로 있는 겁니다.
사건은 존재가 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새가 날아간다고 합시다.
여기서 새는 존재이고 날아가는 것은 사건입니다.
세상은 존재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어 속에서 명사로 표현되는 것은 존재일 확률이 크고 동사나 서술어로 표현되는 것은 사건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육근과 육경은 존재의 범주에 들어가고, 업과 보는 사건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존재든 사건이든 둘 이상일 경우,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존재나 사건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물어보라고 하십니다.
불교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종교입니다.
업이라는 사건과 보라는 사건 속에는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있습니다.
인과라는 말은 관계를 규정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업과 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은 좀더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인과는 의미심장한 말이고 불교에서 인과만큼 중요한 말도 드물기 때문이죠.
인과는 선행하는 사건과 뒤따르는 사건 사이에 필연적인 상응성(相應性)이 성립할 때 두 사건의 앞부분은 원인이라 부르고 뒤에 있는 사건은 결과라고 부릅니다.
대개 통속적으로 그렇게 부릅니다.
'업'이 먼저 있고 '보'는 나중에 따르는 거예요.
이 업과 보 사이에 필연적인 상응성이 있습니다.
1리터의 기름을 넣어서 10킬로미터를 달리는 자동차가 있다면 2리터의 기름으로는 20킬로미터를 가겠죠.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것이 인과요, 상응성입니다.
작은 원인에는 작은 결과가 나타나고 큰 원인에는 큰 결과가 나타나듯이, 좋은 원인에는 좋은 결과가 따르고 나쁜 원인에는 나쁜 결과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콩에는 콩, 팥에는 팥으로 상응한다는 거죠.
이렇게 업과 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은 업이라는 사건과 보라는 사건 사이에 상응성이 성립함을 부처님께서 통찰하셨기 때문에 인과라는 말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말이 업인과보(業因果報)라는 말입니다.
흔히 인과응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실제 경전에서는 업인과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업이 원인이 되어서 결과로서 보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이 넉 자로 이루어진 업인과보의 뜻을 원시불교 즉 근본불교적인 입장에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여러분들이 불교를 이해해 나가는 데 좀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육근이 일으킨 것은 작용, 육경이 보이는 반응은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업보라는 말이 성립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교학 속에서의 삼단계 범주를 적용해야 합니다.
즉 존재와 사건, 관계의 범주라는 삼단계를 적용하는 것이죠.
존재라는 것은 그야말로 있는 겁니다.
사건은 존재가 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새가 날아간다고 합시다.
여기서 새는 존재이고 날아가는 것은 사건입니다.
세상은 존재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어 속에서 명사로 표현되는 것은 존재일 확률이 크고 동사나 서술어로 표현되는 것은 사건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육근과 육경은 존재의 범주에 들어가고, 업과 보는 사건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존재든 사건이든 둘 이상일 경우,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존재나 사건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물어보라고 하십니다.
불교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종교입니다.
업이라는 사건과 보라는 사건 속에는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있습니다.
인과라는 말은 관계를 규정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업과 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은 좀더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인과는 의미심장한 말이고 불교에서 인과만큼 중요한 말도 드물기 때문이죠.
인과는 선행하는 사건과 뒤따르는 사건 사이에 필연적인 상응성(相應性)이 성립할 때 두 사건의 앞부분은 원인이라 부르고 뒤에 있는 사건은 결과라고 부릅니다.
대개 통속적으로 그렇게 부릅니다.
'업'이 먼저 있고 '보'는 나중에 따르는 거예요.
이 업과 보 사이에 필연적인 상응성이 있습니다.
1리터의 기름을 넣어서 10킬로미터를 달리는 자동차가 있다면 2리터의 기름으로는 20킬로미터를 가겠죠.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것이 인과요, 상응성입니다.
작은 원인에는 작은 결과가 나타나고 큰 원인에는 큰 결과가 나타나듯이, 좋은 원인에는 좋은 결과가 따르고 나쁜 원인에는 나쁜 결과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콩에는 콩, 팥에는 팥으로 상응한다는 거죠.
이렇게 업과 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은 업이라는 사건과 보라는 사건 사이에 상응성이 성립함을 부처님께서 통찰하셨기 때문에 인과라는 말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말이 업인과보(業因果報)라는 말입니다.
흔히 인과응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실제 경전에서는 업인과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업이 원인이 되어서 결과로서 보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이 넉 자로 이루어진 업인과보의 뜻을 원시불교 즉 근본불교적인 입장에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여러분들이 불교를 이해해 나가는 데 좀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출처 : 연등사(연등 학생회 출신)
글쓴이 : 3기김정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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