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10·24 선언’이 필요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비롯해서 전국 여러 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지기 이틀 전인 10월 24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언론인들의 연례행사가 있었다.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 37주년을 기념하면서 ‘통일언론상’(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피디연합회 주관)과 ‘안종필자유언론상’(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주관)을 수여하는 자리였다.
온 세계를 놀라게 한 ‘격려광고’로 유명해진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의 자유언론실천 운동은 1974년 10월 24일에 발표된 ‘자유언론실천 선언’을 기점으로 박정희 유신독재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민주주의 회복과 민족 통일을 열망하는 민중의 함성이 동아일보를 성원하는 데 공포를 느낀 박 정권은 동아일보사에 광고탄압을 가하는 한편 경영진을 위협해서 1975년 3월 중순,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앞장서던 기자, 방송국 프로듀서와 아나운서 등 113명을 강제 해직했다. 그들 가운데 17명이 질병과 수사기관의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96명이 평균 70세의 노인이 되어 아직도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날 기념식에서 동아투위가 발표한 성명서는 오늘의 언론과 대중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선거 열기로 가려져 있던 기념식과 성명서 전문, 그리고 사진을 여기 싣는다. <편집자> |
오늘 우리는 ‘10·24 자유언론 실천 선언’ 37주년을 기념하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우리의 심정은 참담하기만 하다. 박정희 유신독재에 맞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려고 동아일보사의 젊은 언론인들이 굴종과 침묵을 떨쳐버리려고 일어섰던 1974년 10월에 못지않게 오늘 언론의 현실이 우리에게 분노와 절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신문시장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동아·조선·중앙일보는 그 어느 정권 시기보다 언론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데 그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일 뿐 주권자인 국민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1975년 3월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가 박정희 정권의 압력을 받아 자유언론을 실천하던 사원들을 강제 해직한 이래 모든 언론매체가 올바른 보도와 논평의 기능을 포기하다시피 한 것은 긴급조치 시대의 억압적 상황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조·중·동이 대표하는 보수언론은 기만과 교묘한 여론 조작을 넘어서 집권세력의 대변지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수십조 원이 넘는 국가 예산을 쏟아 부어 강행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국민의 60퍼센트 이상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도 세 신문은 그 사업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렸다. 지난해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받은 문화방송 피디수첩팀이 밝힌 바 있는 ‘4대 강 사업의 진실’과 달리 조·중·동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토를 황폐하게 만드는 토목사업을 미화하기에 바빴다.
조·중·동은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방송망과 광고시장을 교란하는 주범으로 등장했다. 권력의 도움을 받아 종합편성의 황금 채널을 확보하려고 시도하는가 하면 기존의 방송광고 공급체제를 무너뜨리고 독자적 광고를 유치하는 쪽으로 정부 정책을 굳히게 함으로써 영세 매체들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들의 병역 비리, 위장 전입, 탈세, 논문 표절, 뇌물 받기 등에 관해 조·중·동이 제대로 된 기사나 논설을 실은 적은 거의 없었다. 특히 오는 10월 26일에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세 신문은 ‘야권 단일후보’의 사소한 경력까지 파헤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나라당 후보에 관해서 진보적 매체들이 파헤친 문제점들은 아예 외면하고 있다.
정권이 보낸 ‘낙하산 사장들’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방송과 문화방송도 조·중·동과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1987년 6월 항쟁 이래 자유언론 실천에 앞장서온 자랑스런 역사를 가진 두 공영방송의 뜻있는 언론인들이 지금 ‘관영방송’으로 전락한 조직 안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젊음을 바쳐 자유언론 실천의 터전으로 일구려고 했던 동아일보는 영향력이나 영업실적에서 조·중·동의 말석을 차지하는 굴욕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못하는 채 ‘정부의 홍보 대행업체’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오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언론이 1974년 가을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고 믿는다. ‘빼앗긴 언론자유’보다 ‘언론자유를 가장한 방종과 기만’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소수의 진보적 신문과 인터넷 매체들이 대중에게 진실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조·중·동을 극복하는 자유언론의 기지를 확장하고 관영화한 방송을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되살리지 않으면 권력과 보수언론의 ‘궤도 없는 폭주’를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언론계의 동지들에게 ‘제2의 10·24 자유언론 실천 선언’을 함께 하자고 제창한다. 진정한 민주체제, 대립과 갈등을 넘어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세우기 위해서는 뜻있는 언론인들이 힘을 모아 1974년 10월처럼 비장한 각오로 자유언론 실천 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동아투위 위원들은 젊은 언론인들과 함께 흔쾌히 그 운동에 나설 것을 다짐한다.
2011년 10월 24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