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번뇌 가운데 닦아야 한다

장백산-1 2013. 1. 16. 11:15

 

 

 

번뇌 가운데 닦으라/설정스님

 

 

   

   

    煩惱 가운데 닦아야 한다/설정스님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전(傳)할래야 傳할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傳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제일의제(第一義諦)가 아니다.

 

   선문(禪門)에서 공안(公案)과 기봉(機)은 禪師들이 衆生을 向한 慈悲心으로

   만들어 낸 문(門) 없는 문(門)이고, 법(法) 없는 법(法)이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자신(自身)이 直接 보고 증득(證得)해야 한다.

   이것은 정진(精進)해서 정력(定力)을 향상(向上)시키는 道理 밖에 없다.

   일념불란(一念不亂)하여 精進해야 한다. 처음 공부(工夫)할 때는 조용하고

   깨끗한 곳을 찾아서 工夫하는 것이 좋겠지만 길게 해야 할 方法은 아니다.

 

   眞情한 정력(定力)은 번뇌(煩惱) 가운데 닦아야 한다. 環境의 試鍊을

   이겨내지 못한 定力은 정력(定力)이라 할 수 없다. 現在 한국 선방(禪房)에서

   精進하는 태도는 철저히 정중공부(靜中工夫)이지 동중공부(動中工夫)는

   아니다. 靜中工夫에 길들여진 사람은 정처(靜處)에서는 좀 된 듯 하지만

   동처(動處)에서는 지리멸렬 狀態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힘 있는 工夫를 해야 한다.

   힘 있는 工夫란 동정(動靜)과 處所와 關係없이 하는 工夫다.

 

   경계(境界)가 없을 때의 무심(無心)은 眞情한 無心이 아니다. 반드시 경(境)  

   을 마주하고 무심(無心)해야 정(定)이라 할 수 있다. 마치 溫室 속의 어린

   새싹은 드넓은 벌판의 광풍(狂風)과 폭염(暴炎), 서리와 엄동설한(嚴冬雪寒)

   에서는 견디어 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행(修行)의 목적(目的)은 정동(靜動)의 어떤 環境 속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진세(塵世)속에서 큰 作用을 하면서도 속세(俗世)의 誘惑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일념정진(一念精進)하여 능소(能所)가 모두 사라지고, 근진(根塵)이 비어지고,

   전후(前後)生覺이 끊어져 분명(分明)하고 똑똑해 지면 여기에

   생사영단(生死永斷)의 진소식(眞消息)이 있는 것이다.

   동정일여(動靜一如)하도록 精進할 일이다.

 

   參禪無別事 (참선무별사)

   當人勇猛工 (당인용맹공)

   驀然忘性命 (맥연망성명)

   法法一瞬通 (법법일순통)

   참선은 별일 아니라네

   용맹스럽게 공부할 뿐

   단박에 제 性命 잊어버리면

   모든 法이 한 순간에 通하리라.

 

 

 

- 해솔님이 올린 법문

무진장-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