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입춘과 삼재

장백산-1 2013. 2. 10. 20:53

 

 

   입춘과 삼재에 대해 / 원인스님


 
 
立春과 三災에 대해 / 원인스님

 

欲望에 의해 바른 길을 놓치고

愛慾에 의해 安樂을 잃으며

성냄에 의해 功德이 무너지고

我慢에 의해 智慧를 잃는다.

 

世上에 어리석은 사람들은 幸福을 찾아

온갖 煩惱를 일으키고

無限한 괴로움을 만들어가네!

 

名譽와 利益은 求하면 求할수록

점점 수렁에 빠지고

헤어날  길  잃어버리네!

 

어이할거나 煩惱의 執着이 많을수록

즐거움은 조금씩 사라지고

근심걱정은 늘어만 가는 것을…,

 

설사 해가 차가워지고

달이 뜨거워질지언정

因果法에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네!

 

智慧 있는 者 이것을 보고

눈앞의 境界에 迷惑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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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日이 立春인데 일반적으로 立春날 三災 消滅을 하기위한  여러 가지 行動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이 三災를 온전하게 消滅할 수 있는가를  한번 生覺해 보는 時間을 갖고자 합니다.

 

흔히 立春이 되면 立春大吉이라 해서, 立春 날 크게 吉함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大門立 春 大 吉 이라고 크게 써 붙이기도 합니다.

 

立春은 새해에 萬物이 봄의 氣運으로 들어선다는 그런 뜻입니다.

때문에 立春이라고 할때 立자를 入자로도 볼 수 있습니다. 

봄은 萬物이 始作되는 時点으로 生覺 할수 있기 때문 입니다.

 

  보통 立夏라 해도 事實 덥지도 않고, 立冬이라 해도 춥지도 않듯 

立春 이라 해도 事實  봄의 氣運이 움튼다는 뜻이지,

따뜻한 氣運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立春 날  三災풀이를 일반 사찰에서 많이들 합니다.  

三災라는 것은  , , 바람, 이것을 自然 三災라고 합니다. 

 

  여름에는 로 因한  洪水로  엄청난 규모의 災殃으로 세상을 휩쓸지 않습니까!

은 火災 시 발생하는 인적 물적 피해를 말 합니다  

언젠가 미국에 산불로 석 달을 산을 태운 적이

있죠. 미국같이 발전한 나라에서도 산불 진압을 못하는 겁니다.

이처럼 불의 災殃이 엄청난 규모로 크게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바람은 太風을 말하는 건데, 여름에 강풍이 몰아칠 때 모든 걸 다 파괴 합니다.

미국의 허리케인은 온 집을 날릴정도로 강력한 바람이 일어 납니다.

 

사람三災라는 것이 있으니 

첫 번째 刀病怯 戰爭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戰爭이 일어나면 그 어떤 재앙보다도  사람의 목숨을 상대하는 싸움이기 때문에

아주 무서운 災殃으로 여겼습니다.

 

두 번째 재앙은 疾病怯인데 옛날에는 流行病이 한번 휩쓸면 사람들이 살아나질 못하기 때문이죠.

세 번째 재앙은 飢饉怯 입니다.요즘은 物質이 豊富하지만,

옛날에는 흉년이 들면 사람들이 다 굶어죽기 때문에 人三災에 해당 합니다..

 

 이렇게 三災를  전쟁, 질병, 기근  이라는 人三災와  

                   물,  불,  바람에  한   自然 三災가  

立春 날을 기점으로 始作되기도 하고 消滅 한다고 보므로 

입춘 날에 그렇게 三災풀이를 한다고 여러가지 行動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自然三災든 人間에게 局限된 人三災

이 三災나타난 結果만을 가지고 完全하게 三災를 解決 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三災가 일어나는 根源을 보지 못하면 問題点을 바르게 解決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山僧이 오늘 말하고자하는 것은 三災가 일어나는 根源을 바로 보고

問題를 바르게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三災에 해당하면 三災풀이다 하여 여러가지 秘方을 쓰는데

그것이 다소 위안은 되겠지만, 그것으로 完全한 三災消滅이라고 生覺해서는 안돼요.

 

 그러면  三災의 根源이  무엇인가요?

三災  佛敎에서 말하는 貪, 嗔, 痴  三毒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三災는 바로 우리 마음속의  三災인 貪慾과 성냄과 어리석음 입니다.

이 마음속에 있는 三災를 除去하면 現實的인 三災는 안 일어나요.

 

다시 말한다면 마음三災로 인해서 人三災가 일어나고 이어서 自然三災가 일어나므로 

마음三災인 貪嗔痴를 다스리지 않고는 사람三災를 막을 수 없고 

人三災인 중생들의 共業力이 모여 自然三災가 저절로 만들어지므로

衆生들은 다시 自然三災의 苦痛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속의  三災를 잘 다스림으로 現實的인 三災를 消滅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마음三災인 貪, 嗔, 痴  三毒을 다스리기 위해서 우리는 平常時  늘 깨어 있어야 되요.

 

내가 欲望의 그물에 걸리지 않았는지, 성냄의 憤怒에 휩쓸리지 않았는지,

어리석음의 自慢에 빠지지 않았는지를, 日常生活 속에서 늘 살펴봐야 되요.

그 어느 瞬間  목말라서 샘을 파는 그런 行動으로는 三災에 對한 正確한 解決策이 될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음을 다스리는 工夫를 平常時 恒常해서 

三災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을 위협하는 온갖 障碍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도 나를 지킬 수 없으므로 내가 내 自身바르게 살아감으로

모든 三災뿐만 아니라, 온갖 災殃을  豫防할 수 있습니다.

 

  車를 運轉하는 사람이 잘못 운전하면 굉장한 危險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운전기술만 믿고  마음대로  과속을 일삼다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났을 적에

對處를 못하게 되고 後悔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늘 世上을 살아가면서 恒常 安全한 姿勢를 가져야만 됩니다.

그래야 온갖 三災八難이 나에게 침범하지 않겠죠.  

우리가 太初에 이 苦痛 많은 世上을 살아가게 되는 根源的 理由는 貪慾에서부터 始作 되었습니다.

 

 貪慾을 다스리지 않고는 우리는 世上의 災殃에서 自由로울 수 가 없어요.

조금 전에  法門 序詩읊은 것이 바로 그 貪慾으로 因해서

이러한 憂悲苦惱가 생겨난다는 理致를  詩的으로 읊은 겁니다.

 貪慾은 우리의 마음을 平和롭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돌이킬 수없는 구렁에 빠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늘 내 自身이 잘못된 길을 가는지, 바른 길을 가는지, 恒常 살펴보고

잘못된길을 갈 적에는 冷情하게 그 유혹에서부터 벗어나야 되요.

그렇지 않으면  어디를 가도 災殃은 避할 수 없죠.

 

 법구 비유경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부처님 당시 때 神通力을 갖춘 바라문 네 명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神通力으로 自己들의 죽음을 避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하나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숨고,

하나는 신통력으로 바다 속 섬으로 들어가고,

하나는 저 사람 많은 아주  사람이 많은 시장통 속으로 들어가서  숨고,

이렇게 각각 네 명이 다 自己 나름대로 安身處를 찾아서 숨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까 다 죽었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거기에 對해서 이렇게 詩를 읊은 게 있어요.  

 

    虛空도 아니요  바다도 아니다

        山 속도 아니요 바위틈도 아니다

       죽음의 神이 닿지 않는 곳 

이 世上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시를 읊으셨어요.

우리가 과연 災殃을 避할 곳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그 죽음의 災殃으로 부터 어떻게 安全한 곳에 이를수가 있을까요.

 

 과연 저 죽음의 鬼神이 보지 못하는 아주 깊은 산속 바위틈 속에  숨어 있다 한들, 

이 마음이라는 것은 時間과 空間을 超越해서  다  알수 있는데, 

어찌 바위틈 이라 해서 못 찾을 것이며 

깊고 깊은 산속에 숨어있다 한들  鬼神이  보지 못 하겠느냐, 이거예요.

 

 또 수많은 南大門 市場에 들어가 사람 속에 섞여있다 해서 그거하나 못 가려내겠느냐 이거예요.

마치 컴퓨터를 켜고 이름을 치면 수많은 속에서도 찿아내듯  

우리의 마음은 不可思議한 거예요.

 

아무리 많아도 수억명 속에 숨어 있다 해도 그 한 사람만은 正確하게 찾아낸다 이거예요.

그러니 三災를 避할 곳은 世上 어디에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삼재를 벗어난 대 자유를 이룰 수 있을까요? 

 

事實 우리가 이 佛敎를 배우고 道를 닦는 것은

이 무서운 三災를 避해서 永遠한 幸福을 이루자는 데에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世上의 즐거움을  버리고

에 들어와서 道를 닦는 게 얼마나 重要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世上의 모든 災殃에서 벗어나야 되겠는데

어떤 方法으로 解決 하느냐, 그걸 부처님 가르침에서 찾아야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宮中의 華麗함을 버리고 出家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生老病死라는 것은 皇帝權力으로도 解決되지 않는 部分이니

  結局은 道를 닦아서  永遠한 幸福의 길을 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物質的인 世界가 아무리 豊饒롭고 安樂함이 있다 해도

 그것으로는  人間의 完全한 幸福은 保障하지 못하니까,

우리는 마음속의 眞情한 幸福, 災殃이 없는 穩全한 幸福을 찾기 위해

修行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불교를 믿는 것도, 이와 같은 마음속에 眞情한  幸福을 이루기위해서 

믿는것이라 할 수  있으며  幸福을 成就하기 위해 내가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나 自身의 참모습을 깨우치지 못하므로

우리는  거짓된 幻像에 사로잡혀서 平生을 살아간다 이거예요.

 

내가 나를 모르는 이 不幸이 結局 온갖 不幸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도 나의 幸福을 保障해 줄 수도 없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남이 도와줘 봐야  남의 幸福이지 내 幸福은 아니기에---.

 

내 幸福은 내 스스로 찾아야만 합니다.

다만 부처님은  幸福을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주신 분이니 우리는 부처님 말씀대로 잘 實踐해서

三災八難이 없는 眞情한 淨土世界를 우리 마음속에 建立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法句經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이것은 작은 惡이라고 하여

      災殃이 없다고 하지 말라!

      방울 물이 작아도

      마침내 큰 그릇에 차니

      이 世上에 모든 罪惡

      작은 惡이 모여서 이루어 졌네!

 

 법구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 입니다.

人間이 마음을 바르게 쓸 수 있도록 잘 가르쳐 주는 經이죠.

지난 12월에 낸 '마음여행'이라는 책도 역시 법구경 스타일 이라고 보면 됩니다.

 

 법구경은 부처님이  下根機 衆生들을 위해서 아주 慈悲롭고 따뜻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산승이 쓴 '마음여행'은 修行者들이 마음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 

수행적인 次元에서 썼기 때문에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佛敎의 核心無我입니다.

無我를 通達하지 않으면,

불교 수행의 첫걸음이 어긋나기 때문에 始作이 바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無我의 理致를 잘 터득해야 됩니다.

 

  우리가 災殃을 消滅하기 위해서 작은 惡도 가벼이 여기면 않됩니다.

작은 惡이 모여 큰 惡이 되듯 작은 惡은 작은 災殃  큰 惡은 큰 災殃이 되기 때문에

부처님은 작은 惡도 警戒 하셨습니다.

 

 立春이란 새해 始作의  意味가 있어요.

萬物이 싹을 틔우는 봄의 氣運이 始作되는 뜻이니까, 

우리는 始作을 좋게 해야 되겠지요.

 

 옛말에 “천리길도 첫걸음에서부터 始作된다.”라고 했듯이 첫걸음이 重要하다는 것입니다.

東쪽으로 가고자하는 사람이 첫걸음이  西쪽으로 向했다면,

東쪽으로 갈수 없듯이 우리는  始作点重要性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마음속의 三災를 잘 살펴서 잘못된 部分을 잘 다스리는 修行과 祈禱를 熱心히 해서

이 한 해 三災로부터 좀 더 自由롭고. 便安하고, 安樂한 해를 보내야 합니다.  

러기 위해서는 恒常  마음속의  三毒心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三毒心을 얼마만큼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三災가 消滅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基準이 되기 때문에 입니다.

 

  이 世上에 모든 惡은 全部  마음속의, 嗔, 痴, 三毒에서부터 始作되는데  

三毒心  그 根源을 살펴보면 利己心에 있습니다.

利己心은 他人에 대한 配慮없는 獨線的인 我執, 欲望과  執着이고 

他人의 生覺은 모두 否定하면서 自己 生覺만이 옳다고 主張하는 것 입니다.

 

 他人에 대한 配慮가  없으면  어느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없는  아주 나쁜 것입니다. 

自己中心的인 思考의 利己는 모든 和合을 깨고 모두가 不便한 狀況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自己中心的인 思考를 하는 사람과  自己 生覺肯定的으로 生覺하고

他人의 生覺은 否定的으로 보고, 配慮하지 않는  利己心은 모든 惡의 源泉 입니다.

 

때문에 他人에 대한 配慮가 없다면, 人間關係에서는 아무런 意味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불자들은 恒常 내가 損害를 보더라도

남에게는 利로움이 되도록 處身할 줄 아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고 佛子다운 것이고,

마음속의 貪慾을 조금씩 다스려가는 修行이 될 것입니다.

 

 마음속에 利己心이 있으면 自然히  我相도 커지게 됩니다.

我相으로 因해서 利己心이 나오고,

利己心이 온갖 貪慾이라는 災殃을 만들어냅니다. 

이제 불자들은  無我의 길을 通해서 我相을 잘 다스리고

自己中心的 思考의 利己에서 벗어나, 他人을 配慮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잘 다스려진 마음으로  現狀的으로 일어나는 三災의 災殃消滅할 수 있습니다.

 

   이제 整를 하겠습니다  

 立春을 通해서 三災消滅을 願한다면 먼저 마음三災부터 다스리는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마음三災를 다스리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諸法無我‘의 理致를 잘 깨우쳐야 합니다  

이 道理를  잘 깨우치기 위해서는 '마음旅行' 가운데

<無我의 길>을 꼭 읽으셔야 됩니다.

 

 無我의 理致를 터득하면 저절로 自己中心的  利己心執着心에서 벗어나게 되고,

가지 法根本은 둘이 아니라는 理致를 보고 깨쳐  貪, 嗔, 痴, 三毒心을 消滅할 때  

온갖 災殃에서 벗어나 眞情한 幸福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理解하게 됩니다.

 

  佛子들은  이제 三災와 八難과 病苦와 災殃에서 벗어나기 위해

祈禱와  念佛  修行을  熱心히 하시길 바랍니다.

 

 成佛하십시요

 

-무진장-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