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복과 재앙의 근본은 무엇인가?

장백산-1 2013. 4. 8. 22:48

 

 

복과 재앙의 근본은 무엇인가?

 


 

 

 

福과 災殃의 根本은 무엇인가?

山을 옮기는 것도 가능하며, 方位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 번 정해진 業은 피할 수가 없다.

報緣의 業은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善과 惡이다.
선하면 복으로 보답하고, 악하면 화로 보답한다.

복과 재앙이 동일하진 않지만, 모두 보연에 속하므로 모두 業이라고 이름한다.
업으로 정해진 이치는 길가는 사람이 만나는 境界와 같다.

30리에 다리 하나, 50리에 점포 하나를 基準으로 하고,
다다른 里數에 의해서 다리와 점포를 설치한다.

이것은 聖賢이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선악의 生覺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고 땅으로부터 솟아난 것도 아니다.

한결같이 迷妄의 情 때문에 제 스스로 결박을 했을 뿐이다.
3세와 오랜 세월을 통해 因緣 때문에 만나는 복과 화는

마치 30리를 가서 다리를 만나고 50리를 가서 점포를 만나는 것처럼

털끝만큼도 錯誤가 있을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어진 사람이 요절하고, 포악한 사람은 도리어 장수하며,
거역하는 자는 길하고, 의로운 자는 흉한 것만을 볼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 옛날에 지었던 것을 至今에 받고,
지금에 지은 것은 後世에 받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이를 두려워하여 業을 짓지 않을지언정,
오는 果報를 받지 않는자가 어찌 있겠는가?
그러므로 聖人이 하늘을 怨望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탓하지도 않았던 것은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한다.
實際로는 그것이 自己에게서 나왔다는 事實을 모르는 것이다.

가령 그것을 알았다면 복이라 해서 기뻐할 것이 없으며,
재앙이라 해도 슬퍼할 것이 없다.
기쁨을 잊었는데 무엇 때문에 虛妄하게 한 生覺이라도 내어

그 복에 반연하려 하겠는가?

또 슬픔도 잊었기 때문에 차라리 죽을지언정 억지로 속임수나

계책을 늘어놓아 재앙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더러는 구차하게 구하여 얻기도 하고,
구차하게 피하여 면한 자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도 한 번 정해진 業으로서 當然한 것이지

偶然히 구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구차하게 하는 짓이 쓸모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복을 좇고 재앙을 피하려는 生覺은 저절로 없어진다.

思念  自體가  空해지면 간직한 마음자리도 空해져서 道에 回合한다.
불조성현의 해탈한 방법이 모두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부러 造作하는 것이 없다면 이는 저절로 빼어나게 되고,
사는 自然히 수승해진다.
理가 빼어나고 事가 수승해지면 온 法界안의 한 티끌이라도

나의 藏嚴한 世界에 있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을 뚜렸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과 증오가 그의 알음알이를 결박하고,

좋은 것은 갖고  싫은 것은 버리려는 妄想에 어지럽혀진다.

그리하여 모든 괴로움의 因緣과 함께 未來로 들어가 혹독한 고초를 받는다.
그래서 정해진 분수의 業이 한결같이 自己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한다면, 정말이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토지가 비옥하면 심어진 곡식이 반드시 풍성해지고,

샘이 깊으면 물이 마르지 않는다.

또한 저축한 것이 많으면 살림살이가 풍족해지고,

因이 圓滿하면 그에 따르는 果도 반드시 圓滿해진다.

이는 天下 古今의 變함없는 眞理이다.


천목 중봉선사 [동어서화]

 

Thanks To Life / Ernesto Cortazar 外 

 

- 백두대간님이 올린 법문

-무진장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