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수행] 12연기 1 - 1. 수행자가 가져야할 다섯 가지 요소위빠사나(명상)
1. 수행자가 가져야할 다섯 가지 요소
修行이란 무엇인가 ?
수행(Bhāvanā) : 修行, 수습, 冥想, 마음의 계발. : 意識을 高揚시키는 行爲다.
佛敎 修行은 왜하는가? 불교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消滅만을 말한다. 그래서 불교 수행은 괴로움을 解決하고 完全한 幸福을 얻기 위해서 한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없으면 修行을 할 意圖를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선 괴롭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그것을 法으로 보는 것이 修行이다. 無明이 많으면 괴로움을 自覺하지 못하기 때문에 修行을 始作할 수가 없다. 그리고 感覺的 즐거움이 幸福이라고 알고 계속 感覺的 快樂을 찾아다닌다. 이것은 다시 괴로움의 原因이 되어 돌아온다.
수행자가 가져야할 다섯 가지 요소 :
1)믿음, 2)健康, 3)정직한 마음, 4)노력, 5)精神과 物質에 대한 바른 이해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려면 수행자가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출 때 비로소 바른 수행을 할 수 있다. 바르게 수행한다는 것은 分明하고 正確하고 確實하게 ‘알아차림’이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위빠사나는 對相을 分離(vi)해서 있는 그대로 持續的으로 알아차리는 것(passna)이다. 그래서 對相의 性稟을 直觀으로 理解한다. 이때 理解하게 되는 對相의 性稟은 無常, 苦, 無我의 세 가지 特性이다.
對相을 分離한다는 것은 몸(物質)과 마음(精神)에서 일어나는 現狀에 ‘나’라는 槪念을 介入시키지 않고 原因과 結果로 나타난 法 卽, 現狀으로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分離할 때만이 對相을 分明하고 正確하고 確實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結局 對相을 分離해서 알아차릴 때 對相의 性稟을 直接 經驗으로 理解하게 된다.
첫째 수행자는 믿음을 가지고 수행해야한다. 믿음은 부처님과 그분의 가르침,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實踐하는 僧家, 卽 佛法僧 三寶에 對한 믿음이다. 이런 믿음이 없으면 修行을 만나도 始作하거나 持續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修行은 믿음이 앞에서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修行을 지속하고 바른 노력을 하여 法을 보게 된다. 그러면 確信에 찬 믿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불교의 믿음은 그냥 믿는 盲信이 아니라 確信에 찬 믿음을 말한다. 確信에 찬 믿음은 와서 보라고 나타난 法, 卽 몸과 마음이라는 對相을 알아차려서 法에 對한 確信이 생겨서 일어난 믿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修行者가 처음부터 이런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수행자는 우선 가르침대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이처럼 확신에 찬 믿음은 이어서 알아차리려는 노력을 증진시키고 노력은 실제 알아차림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持續的인 努力으로 알아차림이 이어지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對相에 正確하게 마음을 集中하는 힘이 생겨서 바른 集中을 유지한다. 이런 바른 集中 상태에서 對相의 性稟을 보는 智慧가 생긴다. 그 結果로 法을 理解하고 經驗하게 되며 점차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그래서 더 열심히 수행을 하여 높은 段階로 나가게 된다. 이처럼 믿음은 努力 알아차림, 集中 智慧를 啓發하는 첫 단추다.
둘째 수행자는 몸이 健康해야한다. 健康하기 위해 영양이 충분하도록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고, 적당한 양을 먹어야 한다. 수행처에서는 오후 不食을 하기 때문에 점심에 意圖的으로 많은 量을 섭취하게 된다. 이것이 졸음과 나태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한다. 또한 감기나 다른 질병을 예방하도록 자기 관리를 해서 건강을 유지해야 수행에 지장이 없다.
하지만 수행자는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도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現狀들을 對相으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아플 때 修行이 더 잘되기도 한다. 아프면 다른 欲望들이 일어나지 않아 아픈 몸과 마음을 分離해서 알아차릴 수가 있다. 卽 아플 때는 아픈 것을 對相으로 알아차려서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몸의 物質的 現狀과 그것에 反應하는 精神的 現狀들의 性稟을 볼 수 가 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아픈 것을 알아차릴 기회로 삼아야한다.
셋째 수행자는 正直한 마음으로 수행을 해야 한다. 修行은 自身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行爲다. 그래서 어떤 것도 美化하거나 부풀리거나 덫 칠을 하지 말아야한다. 예를 들면 法을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法을 얻은 것처럼 말하거나, 남의 經驗을 自身의 經驗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自身을 드러내려고 하는 正直하지 않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自身을 들뜨게 하고 有信見을 내세우게 되어 智慧를 啓發하지 못하는 原因이 된다.
넷째 수행자는 努力을 해야 한다. 恒常 알아차릴 對相에 마음을 기울여 알아차리려는 意志를 내고 알아차림을 하고 그것을 維持하려는 것이 수행자의 努力이다. 이런 努力이 알아차림을 이끌어낸다. 努力은 몸의 노력과 마음의 노력이 있다. 몸의 努力은 자주 現在 自身의 몸의 姿勢를 알아차려서 몸의 긴장을 풀고 다시 알아차림을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의 努力은 지금 무슨 마음인가?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現在 마음을 보려는 意志를 내어 現在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노력은 四正勤이다. 사정근이란 네 가지 바른 努力을 말한다. 卽 막고, 끊고, 계발하고, 유지하는 노력이다. 1) 아직 일어나지 않은 不善法은 알아차림을 유지함으로써 막는다. 2) 이미 일어난 不善法은 알아차려서 除去한다. 3) 아직 일어나지 않은 善法을 알아차려서 새로 일으킨다. 4) 이미 일어난 善法은 알아차려서 더욱 증진시키고 완성한다.
붓다는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을 받고 네란자라 강가 보리수 아래서 “내 살과 피가 다 말라 버리고 피부와 뼈와 힘줄만 남더라도 붓다가 될 때까지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決心하신 뒤 精進하셔서 깨달음을 이루셨다.
위빠사나 修行은 正見과 正精進과 正念이 있어야만 한다. 이처럼 바른 견해와 노력과 알아차림을 通해서 수다원의 도과를 얻을 수 있고 더 높은 단계의 도과로 나갈 수 있다. 도과(道果)는 涅槃에 이른 精神的 狀態를 말한다. 涅槃은 모든 貪嗔痴가 除去된 狀態다. 수행자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서 세 가지 특상인 無常, 苦, 無我를 알고, 몸과 마음에 對한 執着을 消滅하여 自然스럽게 貪嗔痴가 消滅한 涅槃을 經驗하게 된다. 이런 精信的 狀態를 經驗하면 聖者가 된다. 聖者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있다.
다섯째 수행자는 精神과 物質에 對한 바른 理解를 해야 한다. 수행자가 알아차릴 對相은 오직 精神과 物質이며 수행자는 이들을 對相으로 알아차려서 精神과 物質의 性稟을 바르게 理解하게 된다. 몸(物質)과 마음(精神)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現狀을 對相으로 알아차려서 이들은 條件에 依해 일어나고 사라지며 그것을 所有하는 自我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행자는 볼 때는 단지 보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들을 때도 단지 듣는 마음을 알아차려야한다. 만일 이런 物質과 精神을 벗어나면 自身의 生覺 속에 빠져서 알아차림을 놓치게 된다. 自己 生覺에 빠진다는 것은 단지 物質과 精神인 것을 내 몸, 내 마음이라는 生覺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에 物質과 精神의 實在하는 性稟을 놓치는 것이다.
精神은 物質에 依存하여 일어나고 物質은 精神에 依存하여 만들어진다. 이처럼 物質과 精神은 相互間의 여러 條件에 依하여 變하며 흘러간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내 것으로 알고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만 實際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物質과 精神을 내 것으로 보면 世俗的 眞理인 觀念에 빠진 것이고, 몸(物質)과 마음(精神)을 條件에 依해 生滅하는 한 瞬間의 物質的 精神的인 現狀으로 보면 몸(物質)과 마음(精神)의 實在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精神과 物質에 對한 바른 理解다.
수행자는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보면 몸과 마음이 내 意志와 相關없이 마구 變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無常이며, 이것이 괴로움이며, 이 괴로움을 없애려 해도 내 意志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몸과 마음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無我를 알게 된다. 그래서 精神과 物質은 條件 지어진 것임을 아는 것이 精神과 物質에 對한 바른 理解를 얻는 것이다.
物質과 精神에 對한 이런 바른 理解는 우선 들어서 理解하는 聞慧가 있고, 直接 修行에 適用하면서 생긴 思慧가 있고, 나중에는 洞察로 생긴 智慧 卽, 修慧로 理解하는 過程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時間을 通해서 精神과 物質을 理解하는 聞慧가 修慧의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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