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
검은 호수 - 서정록 (마지막회)
[북미
원주민 이야기 - 20 ]
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
會議는 여러 사람이 모여 意見을 나누는 것입니다. 단순한
모임같지만 거기에는 참가자들의 靈的인 態度와 그 社會의
文化가 集中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모두가 하나 되고 幸福해지는 文化를 指向한다면 會議 方式 또한 그에 맞춰 思慮 깊게 짜여질 필요가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북미 인디언들의 會議 方式은 여러 모로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北美 인디언들의 會議 方式은 언제나 '生命의 圓', '圓 안의 圓'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圓의 형태로 둥글게 둘러앉아 시계 방향으로 돌며 차례로 발언을 한 뒤, 다시 보충 발언을 하며 의견을 조정·통합해 가는 방식이지요. 북유라시아 유목민들의 후예인 북유럽인들은 이러한 회의 방식을 圓탁 회의라 부르는데, 기본적인 원리는 대체로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의 和百 會議 역시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되지 않았을까 生覺됩니다.
서구인들은 이러한 회의 방식을 고대 그리스의 회의 전통에
따라 '만장일치제'라 합니다. 하지만 만장 일치는 그다지 썩 좋은 표현은 아닌 듯싶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말이 모두 일치했다는 뜻은
있지만, 참가자가 圓으로 둥글게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시계 방향으로 차례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둥글게 둘러앉아, 그것도 시계 방향으로 참가자 전원이 모두 발언을 한 뒤,
부족할 경우 다시 보충 발언을 하여 조정 ·통합하는 방식에는 圓이 갖는 독특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圓이란 모든 참가자가 하나의 圓으로 連結되어
있다는 의미와 함께 모두가 平等한 主權者라는 의미를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북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크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말하는 원(Talking Circle)'으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회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로쿼이 聯合의 '平和의 法'에 기초한 회의 방식이
그것입니다. 전자가 일반적인 부족 회의의 방식이라면, 후자는 부족 연합의 형태를 갖고 있는 이로쿼이의 독특한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平和의 法은 미국의 연방 헌법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회의 방식 또한 전자의 회의 방식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이라면 전자의 회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전자의 회의 방식을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북미 인디언들의 會議 方式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圓으로 둘러앉는다. 모닥불이나 화롯불 등을 중심으로
둥글게 앉는다.
2. 동쪽으로부터 차례로 들어와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자리에 앉는다.
맨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이 '말하는 나무(Talking Stick)'를 들고 들어와 그 날 회의의 案件을 낸다.
3. 말하는 나무는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상징하며 이 나무를 가진 사람만이 발언을 할 수 있다.
말하는 나무를 가진 사람이 발언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 발언 시간의 길이에는 제한이 없다.
4. 발언한 사람은 말을 마친 뒤, 말하는 나무를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넘긴다(시계 방향으로). 말하는 나무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진실된 생각을 거짓이나 왜곡 없이 발언한다. 이 때 말할 것이 없거나,
자신보다 옆 사람이 더 적절한 발언을 해 줄 것이라 생각되면 말하는 나무를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곧바로 넘길 수 있다.
5. 말하는 나무가 시계 방향으로 일순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발언한 사람은 말하는 나무를 맨 처음 발언한 사람에게 다시 넘긴다. 말하는 圓이 완성되고 나면, 맨 처음 발언한 사람은 말하는 나무를 한 차례 더 循環시킬 것인지, 아니면 循環을 중지하고 가운데에 갖다 놓을 것인지 결정한다. 한 차례의 循環만으로는 기본 발언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맨 처음 발언한 사람은 말하는 나무를 다시 한 바퀴 더 돌리며, 기본 발언이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말하는 나무를 圓의 가운데에 갖다 놓는다.
6. 말하는 나무가 圓의 가운데에 있을 때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지고 제자리에 와서 발언을 할 수 있다.
7. 발언하는 도중, 말하는 圓에 참가한 사람들의 질의·응답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말하는 나무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질문을 하거나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다.
8. 회의 도중, 발언자의 순서나 회의 내용 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회의 전에 별도로 사회자 내지 진행자를 둘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처음에 말하는 나무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마지막으로 회의 내용을 마무리한다. 별도로 사회자가 있을 때는 시작과 마무리를 사회자가 한다.
以上이 북미 인디언들의
基本的인 會議 方式입니다. 傳統 時代에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담뱃대에 불을 붙여 담배를 돌려 피우고 난 뒤에 회의를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참가자들의 生命의 숨결을 바침으로써 偉大한 神靈께 感謝드리는 것과 함께 오직 眞實만을 말하겠다는 約束의 意味가
담겨 있습니다. 또, 참가자가 하나의 圓으로 連結되어 있는 형제요, 가족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옛날처럼 반드시 담뱃대를
피우지는 않는 듯합니다. 회의의 성격에 따라 피울 때도 있고, 피우지 않을 때도 있다는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회의 진행 방식에도 다소 融通性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말하는 나무를 일순하지 않고 곧바로 발언을 원하는 사람에게 넘기는 형태로 진행한다든지, 발언을 원할 때 자신이 발언을 할 수 있도록 말하는 나무를 요구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회의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든 다른 사람이 발언할 때는 반드시 沈默을 지킵니다. 그가 몇 시간, 아니 하루 종일 발언을 한다고 해도 인위적인 제지는 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나무는 보통 팔뚝 정도의 길이에 독수리 깃털을 달고 구슬이나 가죽끈으로 중요한 상징 문양 등을 장식한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나무일 필요는 없으며, 깃털이나 상징성이 있는 돌 같은 것도 무방합니다.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가는 참가자들이 그 가치와 의미를 서로 공유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다만,
말하는 圓에 참석한 사람들은 반드시 다음의 內容을 지켜야 합니다.
1. 正直하게
가슴으로 말을 해야 하고,
2. 말할 때는 간략하고 짧게 하며,
3.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는 귀를 열고 傾聽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1. 인디언들은 종교
의례와 마찬가지로 회의할 때도 반드시 淨化 儀禮를 합니다. 이 때 정화는 쑥이나 향초, 또는 시다(cedar, 서남부 지역은 향나무) 잎을 태운
향훈을 가지고 합니다. 이렇게 정화를 하는 이유는 회의 그 자체가 매우 靈的인 行爲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혹시라도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否定的인 生覺이나 氣運을 淨化하기 위해 쑥이나 향초, 시다 등을 태워 淨化를 하는 것입니다. 또다른 이유는 우리 안에 잠자는 靈的인 智慧를
活性化시키기 위해서입니다.
2. 인디언들은 회의를 하기 前에 먼저, 그 날 참석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感謝드립니다. 그리고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偉大한 神靈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다음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건만,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動物 家族, 植物 家族, 해와 달, 별, 山과 江 等 自然의 存在들에게도 感謝 드립니다.
3. 다른 사람들이 發言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진지한
태도로 그 말을 듣습니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에 대한 恭敬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듣는 동안 말하는 사람의 발언 內容에 대해서 깊이 生覺합니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意圖와
生覺을 理解하고자 努力합니다. 그러는 동안 한 개인의 발언은 말하는 圓 全切의 것이 되고, 나아가 '社會的 冥想'
으로 擴大됩니다. 社會的 冥想이란 어떤 발언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깊이 숙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히 발언자의 의도를 넘어 좀더 넓은 차원에서 다각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社會的 冥想은
우리가 關係 맺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自然의 存在들과 均衡과 調和를 이루는데 매우 重要한
役割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디언들은 말하는 圓에서 말한 것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말하는 圓에 속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자연히 발언의 내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겠지요. 自身의 發言 內容에 責任을 져야 하니까요.
4. 회의를 통해서 어떤 決定을 내리게 되면 그 決定은
번복하지 않습니다. 잘못되었더라도 그대로 따릅니다.
時間이
지나면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고, 그것은 다음 번 회의에서 수정이 됩니다.
다만, 결정된 내용이 자라나는 세대, 또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다음 세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다시 회의를 열어 잘못된 결정을 지체 없이 폐기합니다.
5. 회의를 마칠 때는 회의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지켜
주신 偉大한 神靈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참가한 모든 사람들과,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지만 회의에 함께 했던 自然의 存在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상의 內容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北美 인디언들의 會議 方式은 사람은 물론, 動植物과 自然까지
모두 考慮하는 심고원려(深顧遠慮)의 회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會議의 目標는 언제나
어머니 大地와 自然의 生態的 靈的
秩序에 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현대의 일반적인 회의 방식과는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서양의 브레인 스토밍처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人爲的으로 짜내는 회의 방식과는 그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生物學的, 社會的, 宇宙的 次元의 關係
속에서 삽니다. 서로가 서로를 配慮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關係는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을 일으키겠지요. 자연히 우리의 삶에 不調和와
不均衡이 넘쳐날 테고요. 그래서 인디언들은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모두가 하나 되고 幸福해지는 結論을 얻는 데 무엇보다 注眼点을 둡니다. 이런 점은
現代의 企業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時代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親環境적이고, 生態的인 삶을
추구한다면, 새로운 창조적인 아이디어보다는 어떻게 내 주위의 다른 存在들과 均衡과 調和를
이루면서 다 함께 幸福해지는 삶을 살 것인가에 焦点이 맞춰져야 한다고 生覺합니다.
둘째, 인디언 文化에서는 말발을 세워 주는 文化가 없다는
점입니다.
인디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나를 내세우고 잘난
체하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沈默하며 自身을 돌아봅니다. 흔히 인디언들 보고 원시적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들은
말합니다. 아마도 自己들만큼 많은 生覺을 하며 사는 이들도 없을 거라고. 그만큼 그들은 많은 生覺을 하며 삽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自己 省察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말발을 세워 주기보다는 오히려 너 自身을
낮추라고 가르칩니다. 늘 謙遜하라고 말이지요. 代身, 말할 때는 늘 가슴으로 말하라고 가르칩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이지요.
셋째,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은 사람 中心이 아니라 生態的, 生命的, 宇宙的 次元의 會議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北美 인디언들이 생각하는 民主主義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西區의 民主主義는 人間 中心의 會議 方式입니다. 오직 人間만이 參與하여 投票하고, 會議를 합니다.
그러나 北美 인디언들이 生覺하는 民主主義는 自然의 모든 動植物이 다 함께 參與하는 民主主義입니다. 마치 큰 나무가 있으면 그 아래 사람도 와서 쉬고, 벌레도 오고, 새들도 오고 짐승도 와서 쉬었다 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인디언들이 그렇게 하는 理由는
이 世上의 모든 存在는 生命(靈魂)을 갖고 있고, 靈的으로 平等하며, 거미줄처럼 서로 連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과 密接한 關係를 맺고 있는 動物과 植物, 自然의 存在들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물론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지요. 그러나 인디언들은 회의할 때 그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生覺하고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회의의 내용이 다음 세대에게 害가
된다고 판단될 때는 지체없이 폐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다음은 以上의 內容을 理解하는 데 參考될까 싶어 두어 글을
引用해 보았습니다.
인디언들의 회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입니다.
1. 이로쿼이 聯合의 오논다가族의 部族 어머니 오드리
쉐난도어가 1990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행한 演說의 일부로 「智慧는 어떻게 오는가」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 民族은 지금 열리고 있는 이 회의와 같은 방식으로는 모임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먼저 일일이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 다음, 공경의 마음을 전하고 감사의 말씀을 드린 뒤에야 이와 같은 모임을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모든 生命을 키워 주시는 어머니 大地께 感謝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어머니 大地의 가슴에서 자라는 가장 키 작은 풀들을 생각합니다. 아울러 大地의 모든 植物과 숲과 물을 生覺하고 물고기와 動物과 새들을 生覺하고, 네 方向의 바람을 生覺합니다. 그런 뒤에 모두 하나가 되어 우리의 마음과 恭敬과 感謝의 뜻을 하늘에 보냅니다. 모든 生命의 女性들과 關係를 맺고 있는 할머니 달에게 우리의 마음을 보냅니다. 해와 별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보냅니다. 그리고 하늘의 神靈한 存在들에게도 우리의 마음을 보냅니다. 그들은 지금 이 瞬間에도 太初에 創造主가 주셨던 가르침들을 이 偉大한 '生命의 圓' 속에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이 되어 우리의 마음과 恭敬과 感謝의 뜻을 神性한 生命의 圓에게 보냅니다. 人間인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자유롭게 사용하는 物質을 포함한 그 모든 선물에 감사드려야 합니다(후략).
2. 다음은 나눔의 態度에 대한 인디언 추장들이 모여
회의를 한 내용의 序頭 부분으로 『나누어 줌의 명예로움』이란 冊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말하는 사람들이 인디언 방식으로 둥글게 둘러앉을 수 있도록
14개의 의자가 놓여졌다. 다만 동쪽에는 의자가 놓여지지 않았는데, 圓의 東쪽을 열어 두기 위함이었다. 참가자 중의 한 사람이 偉大한 神靈에게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대화는 始作되었고, 동쪽의 남쪽에 앉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화는 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독수리 깃털을 가진 사람이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넘김으로써 시계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오직 독수리 깃털을 가진 사람만이 말할 수 있었다. 말하는 사람은 그가 願하는 만큼 自由롭게 말할 수 있었다. 時間은 充分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할 權利를 尊重했으며,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 말하는 사람이 말을 끝내면 깃털은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넘겨졌고, 그렇게 해서 圓이
完成된 뒤에는 말하기 願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독수리 깃털을 요구할 수 있었다.
말하는 사람들은 東쪽 方向을 통해서 들어왔다. 그들은
의자가 놓인 대로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며 圓을 존중했다. 사람들은 한 사람씩 모두 의자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독수리
깃털을 들고 들어온 사람은 돈 코히스였다. 난로 옆의 바닥에 있는 커다란 전복조개 안에는 네 가지 색깔-붉은색, 검은색, 흰색, 노란색-의 천이
펼쳐져 있었다. 돈 코히스는 마른 가지와 잎에 불을 붙였다. 시다와 쑥과 향초의 香氣로운 香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돈 코히스:
좋은
아침입니다. 모히간族의 말로 우리는 이렇게 인사합니다. '퀴나몬타쉬라마퀴아'. 그 말은 '創造主와 잘 지내십니까?'
또는 '靈적으로 살고 있습니까?'라는 뜻이지요. 오늘 햇빛은 밝습니다. 우리들-여기 있는 분들과 여기 없는 모든 분들-을 모두 비추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는 우리가 모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 주신 創造主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民族을 위해, 그리고 우리와 이 行星에서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祈禱드립니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의 原住民들의 주는 것에 대한 傳統的 智慧를 함께 나누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 均衡과 調和 속에서 말하고 함께하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과 일 속에서 均衡을 찾기를,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이
원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돈 코히스는그의 독수리 깃털을 바로 왼쪽에 앉아 있는 로널드 웰즈에게
넘겼다.)
로널드
웰즈:
이 對話는 白人들
方式의 세미나가 아닙니다. 오히려 正確히 말하면, '對話의
圓'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圓 안에는 偉大한 神靈이 들어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圓을 이루는 사람들은 모두 平等합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똑같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말들은 가슴을 通해서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들은 나중에 그대로 고스란히 記錄될 것이며, 입에서 입으로 傳達하는 원주민들의 구비 전통에 따라 전해질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인디언들의 智慧를 참고해서 우리가 좀더 成熟한 會議 文化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좀더 살기 좋고 모두가 하나 되고 幸福해질 수 있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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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록 /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理論만이 아닌 實踐으로 함께 살기를 모색하던 중,
自然과
同化된
참된 삶을 살고 있는 北美 原住民 文化에 심취하게 되어, 그 思想과 文化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백제금동대향로』,『지금은 자연과 대화할 때』가 있습니다.
생태적인 세상, 아름다운 소통 「이장」,
2005년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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