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歷史歪曲)
글 수 55
[최근 광개토태왕비가 옮겨졌을 가능성에 대한 제보가 이어진다. 그것을 추적해 보았다]
* 현재 호태왕비(好太王碑)가 있는 곳의 위치 및 현황
-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集安縣) 통구(通溝)
* 마을 초가집 앞에 보이는 호태왕비
→ 6.34m로 AD414년에 2층건물 높이만한 크기의 비석을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그런데 원래 비석의 온전한 모습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 동북아시아 전체를 통일한 것으로 보여지는 대제국
* 비석 끝 부분을 보면 '가첨석'이 있었을 가능성이 보인다.(개인의견)
→ 이동할때 무거워서 버렸나?
* 무게가 37톤이라 하는데
비대석이 너무 적은것 같으며
고구려 왕중의 왕 광개토태왕의 비석아래 부분이 이렇게 허술하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 최근 깨어진 대석과 관모 가공흔적
* 1600여년을 이렇게 서있다는 것은 불가능한것 아닌가?
* 비 단면도
금이 간것은 이동시 충격으로 보여진다(개인생각 ^.^)
* 碑의 제원 (“광개토대왕비” 박시형 저, 푸른나무 출판)
- 비신 (碑身)
넓이(밑면) : 1면(동남방) 153cm, 2면(서남방) 150cm, 3면(서북방) 190cm, 4면(동북방) 143cm
높이 : 634cm, 중량 : 약 37 톤, 재질 : 응회암
- 대석 (臺石)
넓이 : 가로 270cm, 세로 335cm, 높이 : 20 cm 내외
3부분으로 깨어져 있고, 바깥 모서리 대부분 파손, 비신이 있는 가운데부분은 약 5cm 침하,
* (참고) 고려시대 비석의 모습 및 주요명칭
* 현재 위치의 태왕비는 많은 의문점을 안고 있다.
1. 지대석 기초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반이 침하되어 지대석이 깨졌다.
현대의 콘크리트 건물(사무실) 공사시 250kg/m2의 하중을 기준으로
태왕비 무게 37톤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비밀리에 급조해서 신속하게 세우다 보니
2. 비신을 지대석 위에 그냥 걸쳐 놓았다
보통 비석을 세우는 지대석 정 중앙에는
비신을 고정될수 있도록 충분한 홈을 파서 비신을 세우게 되는데,
급조해서 세우다보니 홈도 시늉만 내었고,
비신이 워낙 무겁다보니 지대석 중앙에 세우지 못하고,
한쪽면에 걸쳐서 세움으로서 하중을 분산시키지 못했고,
지대석 또한 충분한 두께(80cm이상)를 가져야 하는데,
20cm정도의 얇은 판석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현대와 같은 중장비가 없는 이상,
이 비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수백명의 인원이 필요하고,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인데,
3. 비신의 재질이 '응회암'으로 되어 있는데, 균열이 가 있고 점차 확대 되어가고 있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서 생성된 암석으로
재질이 무르고 강도가 약하여 가공하기가 좋고 균열은 잘 가지 않는다.
태왕의 비신의 균열은 옮기는 과정에서 충격으로 간 균열로 추측된다.
* 주변 응회암과 재질을 비교 분석하면 어느지역 암석인지 알수 있을 것이다.
→ 비의 일부를 추출 성분 분석을 하여
어느 곳에서 옮겨져 왔을까 ?
일제가 점제현신사비를 하북성 갈석산에서 평남온천으로 옮겨와
한사군을 조작하였듯이,
반도사관의 완성을 위하여
원래 있었던 곳에 대한 제보가 이어지고 있으나 최종 확인이 될때까지 공개를 미룬다
과연 어느 곳에서 옮겨져 왔을까 ?
* 현재 호태왕비(好太王碑)가 있는 곳의 위치 및 현황
-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集安縣) 통구(通溝)
- 414년 장수왕 때 건립.
- 총 1,802의 글자 : 제1면 11행, 제2면 10행, 제3면 14행, 제4면 9행, 각 행 41자(제1면만 39자)
* 가장 오래된 사진 몇장이다.
* 1920년대 비 보호를 위한 모금으로 '비각'이 건립된 모습이다.
* 비문 연혁
- 1928년 2층 비각을세움, 당시 집안현 지사인 유천성(劉天成)의 발기로 현지 주민들에 의하여 세워짐
- 1982년 단층 비각으로 다시 지음
- 2003~2005년 재 건축 유리벽으로 막음
- 200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 마을 초가집 앞에 보이는 호태왕비
→ 6.34m로 AD414년에 2층건물 높이만한 크기의 비석을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매식자 역사백정들은 3~4세기가 지나서야 겨우 국가형태를 만들었다 사기치고 있는데...
* 그런데 원래 비석의 온전한 모습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 동북아시아 전체를 통일한 것으로 보여지는 대제국
고구려 태왕의 치적을 담은 비석이 '가첨석'도 없이 세워 졌을까?
* 비석 끝 부분을 보면 '가첨석'이 있었을 가능성이 보인다.(개인의견)
→ 이동할때 무거워서 버렸나?
* 무게가 37톤이라 하는데
비대석이 너무 적은것 같으며
약 1,600여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저렇게 멀쩡하게 서있다는게 이상하다.
자세히 보면 옮겨 세운 흔적으로 보이는게 발견될 것이다.
고구려 왕중의 왕 광개토태왕의 비석아래 부분이 이렇게 허술하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 최근 깨어진 대석과 관모 가공흔적
* 1600여년을 이렇게 서있다는 것은 불가능한것 아닌가?
* 비 단면도
금이 간것은 이동시 충격으로 보여진다(개인생각 ^.^)
* 碑의 제원 (“광개토대왕비” 박시형 저, 푸른나무 출판)
- 비신 (碑身)
넓이(밑면) : 1면(동남방) 153cm, 2면(서남방) 150cm, 3면(서북방) 190cm, 4면(동북방) 143cm
높이 : 634cm, 중량 : 약 37 톤, 재질 : 응회암
- 대석 (臺石)
넓이 : 가로 270cm, 세로 335cm, 높이 : 20 cm 내외
중량 : 약 5~7 톤(?), 재질 : 화강암
3부분으로 깨어져 있고, 바깥 모서리 대부분 파손, 비신이 있는 가운데부분은 약 5cm 침하,
하 15~20cm 가 땅에 묻혀있음, 비신 3면이 대석의 끝과 일치 (한쪽으로치우침)
* (참고) 고려시대 비석의 모습 및 주요명칭
* 현재 위치의 태왕비는 많은 의문점을 안고 있다.
1. 지대석 기초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반이 침하되어 지대석이 깨졌다.
현대의 콘크리트 건물(사무실) 공사시 250kg/m2의 하중을 기준으로
터파기를 하고, 기초공사를 하여 그 위에 기둥을 올리는데,
태왕비 무게 37톤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현 지대석(2.70x3.35)면적으로는 약 4,100kg/m2의 하중을 받게 되므로,
현대의 건물기준보다 16배의 터파기와 다지기 등 기초가 필요한데,
비밀리에 급조해서 신속하게 세우다 보니
기초에 대한 다지기를 제대로 하지 않아,
비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지반이 침하되어 얇은 지대석은 깨질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2. 비신을 지대석 위에 그냥 걸쳐 놓았다
보통 비석을 세우는 지대석 정 중앙에는
비신을 고정될수 있도록 충분한 홈을 파서 비신을 세우게 되는데,
급조해서 세우다보니 홈도 시늉만 내었고,
비신이 워낙 무겁다보니 지대석 중앙에 세우지 못하고,
한쪽면에 걸쳐서 세움으로서 하중을 분산시키지 못했고,
지대석 또한 충분한 두께(80cm이상)를 가져야 하는데,
20cm정도의 얇은 판석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현대와 같은 중장비가 없는 이상,
이 비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수백명의 인원이 필요하고,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인데,
비밀리에 소수의 사람이 급하게 작업을 추진하다 보니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여진다.
3. 비신의 재질이 '응회암'으로 되어 있는데, 균열이 가 있고 점차 확대 되어가고 있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서 생성된 암석으로
재질이 무르고 강도가 약하여 가공하기가 좋고 균열은 잘 가지 않는다.
태왕의 비신의 균열은 옮기는 과정에서 충격으로 간 균열로 추측된다.
* 주변 응회암과 재질을 비교 분석하면 어느지역 암석인지 알수 있을 것이다.
→ 비의 일부를 추출 성분 분석을 하여
중국내 어느지역의 암석과 같은지 조사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어느 곳에서 옮겨져 왔을까 ?
일제가 점제현신사비를 하북성 갈석산에서 평남온천으로 옮겨와
한사군을 조작하였듯이,
반도사관의 완성을 위하여
중국 대륙 깊숙히 있어야 될 호태왕비를 몰래 옮겨와 조작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다.
원래 있었던 곳에 대한 제보가 이어지고 있으나 최종 확인이 될때까지 공개를 미룬다
과연 어느 곳에서 옮겨져 왔을까 ?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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