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지귀(知歸)

장백산-1 2014. 2. 26. 09:50

 

 

 

 

 

지귀(知歸)


세상 사람들이 어떤 이는 삶을 참이라 하고,

죽음을 환상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사는 것을 잠깐 붙어 있는 것이고,

죽는 것은 본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환상이라고 한다면, 죽음이란 산 사람의 꿈일 것이며,

사는 것을 잠깐 붙어 있는 것이라고 하면, 산다는 것은 죽은 사람의 꿈일 것이다.

대체로 살아서 깨지 못하면 그 삶은 참이 아니고,

죽어서 깸이 없다면 그 죽음은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 아닐 것이다. 

삶을 알면 죽음을 알고, 죽음을 알면 돌아간다는 것을 알 것이다.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자는 생사의 꿈 밖에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世人或以生爲眞 而以死爲幻 或以生爲寄 而以死爲歸 以死爲幻
死是生者之夢 以生爲寄 生是死者之夢 夫生不覺則其生非眞
死無覺則其死非歸 知生則知死  知死則知歸 知歸者出於生死之夢


知歸者出於生死之夢(지귀자출어생사지몽): 죽는 것이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삶과 죽음이 각각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죽는 것이 돌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니,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삶에도 죽음에도 그 꿈의 테두리 밖에 벗어나서

진정 삶과 죽음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라는 말.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음에 직면한다,

천지 사이에 인간이 존재해 온 이래로 이것만는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

죽음은 本人의 意思가 어떻다든가, 事情이 어떻다든가,

그 사람의 人格이나 地位가 어떻다는 따위는 전연 고려하는 일이 없다.

죽음은 언제나 제 오고 싶은 때에 홀연히 오고야 만다,

그나마 한 번 죽기만 하면 다시 살지 못한다.

인생에 있어서 이보다 더 절실한 문제가 있겠는가.

 

어떤 친구가 죽음에 직면하여 했다는 말이 솔직하여 재미있다.

“죽는다, 죽는다 하기게 지금까지는 남의 일로만 여겼더니,

이제 내가 또한 죽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기막히는 일이구나” 라고 하였다 한다.

그렇다, 누구도 죽음을 영원히 남의 일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은 여러 가지 想像들을 하고 있다.

 

어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사실만이 참이다,

죽음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환영(幻影)일 뿐이라고 하고,

어떤이는 반대로, 죽음의 세계가 따로 실존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본래의 제 위치이며,

산다는 것은 잠깐 세상에 기류하고 가는 것에 불과하다.

죽는다는 것이야 말로 본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내생(來生)이 있다고 보는 설이 불가에서 말하는 왕생극락(往生極樂)이니,

삼생(三生)이니 하는 것이며, 예수의 영생설(永生說), 천당설(天堂說)이 그것이다.

하우씨(夏禹氏)같은 성인은 바로, “삶은 기류함이요, 죽음은 돌아가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삶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하여

인간의 실생활만을 바르게 살아가라는 실천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다.

 

과연 생과 사, 그 어느 것이 참모습이고 어느것이 幻想인가.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러나 누구도 이 죽음과 삶에 대하여 정확한 단안(斷案)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것이니 증언(證言)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 생사관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가 아주 달라질 수 있다.

비겁할 수도 있고 낙천주의자가 나올 수도 있다.

관대하고 선량할 수도 있고, 악착 같고 각박할 수도 있다.

허탈에 빠질수도 있고, 착실하고 근면할 수도 있다.

 

도대체 우리들은 어떠한 生死觀을 가져야 할까?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누구나 생사라는 문제를 모면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삶을 충실하고 선량하게 영위하다가

죽음이 오면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여 당황하지도 않고,

미련을 남길 것도 없이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가는 것이

사람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最善의 態度가 아닐까 한다.

너무나 상식적인 애기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지 않은가,

그러하기에 공자는

“삶도 모르면서 죽음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현실에서의 충실을 말한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은 역자의 견해일뿐이다.

 

월창거사는 여기에서 生死觀의 견해 표명을 보류하고 있다.

그의 生死觀은 좀더 高次元的이고 達觀的인 것 같다.

그는 지귀(知歸)라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죽는 것이 돌아가는 것”임을 안다는 것은

생도 사도 그 테두리 밖에서 觀察하여 참을 안 뒤라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견해이니

“돌아간다”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생의 꿈에서도 사의 꿈에서도 깨어 있는

뛰어난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뛰어난 인물은 생과 사의 참모습을 알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 술몽쇄언 (述夢言) 꿈과 인생 中에서 *

http://blog.daum.net/cha46/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