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깨달음, 因緣法과 因果法 그리고 인연과(因緣果)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마치 도인처럼 생긴 가수가 있다. 허연 턱수염에 생활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종종 TV에서 볼 수 있는
가수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김도향’이다.
그가 어느 프로에서 자신의 최대의 히트곡인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가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어느 날 창 밖을 바라보다 나무의 이파리가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갑자기 멍해지고 텅빈마음이 되어 오랫동안 그 상태로 있었다고 한다.
이는 부처님당시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해탈한 ‘아라한’을 연상하게 한다. 또 선사들이 소리를 듣고 큰 깨우침을 얻었다는 기연등으로 인한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은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마치 감이 무르익으면 어느 날 저절로 ‘툭’ 하고 떨어지듯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선사들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 오도송을 남겼는데, 부처님 역시 깨달음을 얻는 순간 오도송을 남겼다. 그것이 유명한 법구경 153번과 154번 게송이다.
한량없는 세월의 생사윤회 속에서
집을 짓는 자가 누구인지 알려고
찾아 헤매다 헤매다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나니 이는 둑카였네.
아, 집을 짓는 자여! 나는 이제 너를 보았노라!
너는 이제 더 이상 집을 짓지 못하리라!
이제 모든 서까래는 부서졌고
대들보는 산산이 조각났으며,
나의 마음은 닙바나에 이르렀고,
모든 욕망은 파괴되어 버렸느니라.
(법구경 153~154번 게송, 거해스님역)
명상의 부처님
스리랑카 폴론나루와
그렇다면 가수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도 일종의 오도송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떨어지는 낙옆을 쳐다보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듯이 누구나 일상에서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속의 크고 작은 깨달음
누구나 한 번쯤 평소 품고 있었던 의문사항이 마음속에 잠재 되어 있다가 남이 하는말을 무심히 듣거나 어떤 것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을 때 우연한 계기로 인하여 한 생각이 홀연 일어났을 때, 그 순간 마치 한방에 해결하듯이 모든 의문이 깨끗하게 풀려 버렸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깨달음을 선가에서는 ‘화두’와 ‘화두타파’로 설명한다.
어떤 이는 “무엇이든지 생긴 것은 모두 소멸한다”라는 초기경전의 내용에 대하여 수다원(예류자)의 오도송이라 하였고,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에 대하여 아라한의 오도송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처럼 성자들의 깨달음이 있는가 하면 범부들도 삶의 과정에서 크고 작은 수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 깨달음이 모이고 모여서 삶의 지혜가 된다. 따라서 깨달은 이들은 지혜로운 이들이라 볼 수 있다. 대게 그런사람들은 산전수전 다 겪고 난 노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지혜로운 노인들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헤뚜 빠띳짜 팔라(hetu pattica phala, 因緣果)
잠에서 깰 무렵 문득 ‘인연과(因緣果)’가 떠 올랐다. 그리고 문구에 대한 해석이 정리되었다. 그런 생각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전날 불교TV사이트에서 본 김응철교수의 인연법설명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因緣’도 아니고 ‘因果’도 아니고 ‘因緣果’라는 말은 스리랑카의 담마키띠비구의 강의(제1회 빨리어 강좌)에서 들은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담마키띠 비구는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다. 그래서 빠알리 경전을 우리말로
쉽게 설명해 주었는데, 삽바사와경(모든 번뇌의 경, Sabbāsava sutta, MN 2 PTS: M i 6)설명에서
‘因緣果’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因緣果는 빠알리어로‘헤뚜 빠띳짜 팔라(hetu pattica phala)’라고 설명하였는데,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단지 원인(因, hetu)과 조건(緣, pattica)과 결과(果, phala)라는 정도로 이해 하였다. 그런데 김응철 교수는 ‘緣起法’과 관련하여 ‘因果法’과 ‘因緣法’을 설명하였는데, 담미키띠 비구가 말하는 因緣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김응철교수의 因緣法과 因果法
김응철교수는 “나라는 存在가 어떻게 形成되고 어떻게 消滅되는가”에 대한 것이 緣起法이라 한다. 즉 부처님은 ‘存在의 生性과 消滅의 原理’를 緣起法으로 설명하신것이라 한다. 그런데 存材하는 것들은 關係를 맺을 수 밖에 없는 데, 이 關係는 因緣法과 因果法으로 설명된다. 이에 대하여 김응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關係로 맺어져 있다. 부모와 자식관계, 부부관계, 이웃과의 관계, 정치사회적 관계등 여러 관계로 맺어져 있는데, 그런 관계의 법칙을 因緣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관계를 맺고 있는 存在는
關係에 相應하는 行動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 행동의 원리 또는 행동의 법칙이 因果法이다.
(김응철 교수, 불교tv-부처님제자들의포교이야기)
이처럼 김응철교수는 因緣法과 因果法을 區分하여 설명하고 하고 있다. 특히 김응철 교수는
因緣法에 대하여 비중을 두어 설명하였는데, ‘만남’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일반적으로 우리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연적 만남이나 숙명적 만남이라고 말한다. 또는 어떤 절대자가 창조적 만남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연, 숙명, 창조와 같은 만남에 대하여 부처님은 부정하였고, 이를 ‘삿된 견해’로 간주하였다. 대신 緣起的 만남을 이야기 하였다.
그런 緣起的 만남이 바로 ‘因緣法’이라는 것이다.
因緣法에서 김응철교수는 인(因)을 ‘자신의 意志’로 해석하였고, 연(緣)을 ‘環境的 要因’으로 설명하였다. 이런 설명방법은 처음 들어 보았는데 매우 획기적인 설명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명론적 또는 숙명론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와 같은 말이 대표적인 운명론적 또는 숙명론적인 말이다. 불자들 또한 전생과 관련된 업보를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는 고대인도의 브라만교적 사고 방식이다. 또 현대의 힌두교적인 사고방식과 다름이 없다.
부처님은 이와같은 운명론적이고 숙명론적인 사고방식을 외도의 견해라고 하여 배격하고 緣起法的으로 설명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은 얼마든지 바꾸어 나갈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것을 因緣法으로 설명한 것이다.
왜 因緣果인가
因緣法에서 因이 자신의 意志라는 것은 자신의 行爲를 말한다. 이는 곧 몸과 말과 마음이 짓는 身業,
口業, 意業을 말한다. 이 三業은 악업도 있을 수 있고, 선업도 있을 수 있다. 結局 因은 자신의 意志이고
業과 同意語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因은 또 ‘原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行爲/業으로 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因을 빠일리어로 ‘헤뚜(hetu)’라 하는데, 이는 原因을 말한다.
原因이 있으면 結果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과법(因果法)이라 한다. 그런데 업(因)을 지어 그 업이 익어 열매(果)를 맺으려면 ‘환경’이 필요하다. 마치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온도와 수분과 햇볕이 있어야 발아하고 열매가 맺듯이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環境이 因緣法에서 말하는 연(緣)이다.
김응철 교수는 緣을 ‘환경적 요인’이라 하였는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條件’이 된다.
條件을 담마키띠비구는 빠알리어로 ‘빠띳짜(pattica’)라고 설명 하였다.
그렇다면 김응철 교수가 말한 ‘因緣法’과 ‘因果法’의 關係는
담마키띠 비구가 말하는 原因과 條件과 結果의 ‘因緣果’로 정리될 수 있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이는 불교를 ‘조건의 종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조건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때 조건은 ‘연(緣)’이다. 다른 말로 하면 ‘환경적 요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나 홀로 단독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앞의 것을 條件으로 하여 다음 것이 일어나는 식이다. 그래서 條件지워져 發生하는 것을 緣起法이라 한다.이는 모든 因果의 法則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병이 나도 병이 날 만한 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병이 나는 것이다. 또 죽어도 죽을 만한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하필 그 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죽는 것도 죽을 조건이 되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條件을 만드는 것은 自己自身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意志가 作容하여 條件을 만드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자신의 意志’를 인(因)으로 본다. 이는 ‘原因’을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意志와 行爲가 原因(因)이 되어 주변의 環境的 要因을 條件(緣)으로 條件이 盛熟되었을 때 열매를 맺게 되는 것(果)으로 본다. 이러한 原因과 條件과 結果를 세글자로 말하면‘인연과(因緣果)’가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自身을 原因으로 하여 자신의 意志作用과 行爲(인)로
주변의 環境을 좋은 條件으로 바꾸어 나가(연)
좋은 열매(果)를 맺도록 하는 것이 因緣果의 智慧일 것이다.
2011-05-07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 2011.05.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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