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는 없다 (23)

장백산-1 2014. 7. 31. 23:43

 

 

 

나는 없다(23)-"진실은 경계선을 먹어치웁니다" 나는 없다 / 바로보기

2013/09/0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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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實에 맛을 들이면 당신 존재와 관련된 무엇을 집어삼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眞實은 만족을 주는 唯一한

것이고, 자양분을 주는 唯一한 것이고, 實在하는 唯一한 것입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은 眞實이 무엇을 집어삼키든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좋은 소식은 당신의 집 自體를 집어삼키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眞實이 삼키는 것은 "당신의 집"이라는 그 所有 槪念입니다. 眞實이 삼키는 것은 "당신의 人生"이라는 그 生覺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 집이라고 生覺하고 그 주변에 울타리를 칩니다. "내" 몸이라고 生覺하고 그 주변에 境界線을

긋습니다. 眞實이 찾아오면 그 울타리를, 그 경계선을 먹어치웁니다.

 

이 眞實의 場所에 머물려면 당신은 自身의 모든 生覺과 느낌과 欲望을 抛棄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당신으로부터 眞實한 것을 앗아가는 것들입니다. 眞實의 場所에 머물면 苦痛이 없습니다. 眞實은

恒常 당신이 원하는 것, 언제나 기분 좋은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고통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값 세일같은 것은 없습니다. 시즌이 끝날 때를 기다려 반값으로 살 수 있는 요행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넘겨주어야 합니다. 가격 정책은 아주 단순합니다. 많은 것을 넘겨주면 많은 고통이 사라집니다. 적게 넘겨주면 적은 고통만 사라집니다. 모든 고통이 사라져주기를 바란다면 다 내맡겨야 합니다.

 

-92쪽~94쪽-

 

이 工夫를 하다보면 정말 공짜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眞實을 體驗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고수하고 있다면 공부가 나아가지 않음을 보게 되지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것이죠.

처음에는 체험한 자리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實在의 여기에 익숙해져서 힘을 얻으면

이것! 이것!하는 것에서도 점점 놓여나게 되지요.

 

方便으로 이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것이라는 무언가가 限定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眞實은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 체험을 했을 때는 分別하지 않는 이것, 모든 것을 드러내는 이것, 보이지는 않지만 否定할 수 없는 이것에 매이게 됩니다.  그동안 너무 分別과 헤아림에 익숙하다보니 分別과 헤아림을 떠난 이 자리가 마치 따로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요. 그러나 實相이 확 밝아지려면 이것이 따로 있는 듯한 느낌도 사라져야 합니다. 사실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分別에 익숙하여 ,그 習氣가 남아 깨달음도 그렇게 보게 된 것이죠. 이러한 깨달음에 대한

보이지 않는 상(相)이 떨어져 나가면서 온 宇宙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自由自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도 없고, 나의 것도 없어서 모든 게 이것이지만, 이것도 따로 없어야 眞正한 이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참으로 미묘한 길입니다. 요는 깨달음이라는 무언가를 획득하는 차원이 아니라, 分別했던 思考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따로 따로 나눠서 보았던 것들이 眞實은 따로 따로가 아니라 스스로임을, 하나임을 깨닫는 일이지요. 分別心이

남아 있을 때는 '나는 없다'치더라도 모든 것이 깨달음이라는 둥, 宇宙가 하나라는둥 깨달음이라는 막연한 生覺이나

느낌이 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사라져 버려야 實相이 우뚝 드러나지요. 

마음이 사라져야 온 누리에 마음뿐임을 實感하지요.

 

그러니 眞實은 分別을 두려워할 뿐 깨달음의 道理를 求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實在입니다. 生覺도 아니고 느낌도 아니고 欲望도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아니다'라는 道理를 간직한다고

깨달음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生覺도 깨달음이요 느낌도 깨달음이요 欲望도 깨달음이라 말은 하지만

그러한 무언가를 따로 두지 않는다면' 實在자리입니다. '실재자리입니다'에서도 실재자리를 따로 두지 마세요.

그러한 도리는 없습니다. 말을 하자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지요. 어떠한 깔끔한 도리나 이치나 정견일지라도 그러한 것이 따로 있다면 그게 妄想일 뿐입니다. 

 

무언가 간직하고 있다면 그만큼의 煩惱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의 부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만큼 不幸해지고 놓아버린 만큼 自由롭습니다.

 

어떠한 것도 가질만한 게 없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질 수 있는 것 또한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實在하지 않는 것에 스스로가 意味를 부여하고 힘을 주기에 허깨비가 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체로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이 妙한 遊戱는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태어나고 사라지는 듯한 幻影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幻影일 뿐임에 매이지 않지만,

그것 自體로 眞實이기에 버릴 것이 없습니다.

 

 

바로 당장 확인하십시오.

말이 시작되는 여기.

저절로 듣고 있는 여기.

사물사물이 드러나는 여기.

 

몰록 확인했다면 익숙해지십시오.

익숙하고 익숙해져서 익숙해졌다는 생각마저 사라졌을 때 놓아버리십시오.

 

깨달음마저 놓아지는 순간,

사물사물이 깨어있을 것입니다.

온 우주가 숨을 쉴 것입니다.

모든 것이 진실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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