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침범의 길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희미하게 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은 미세한 위장술은 티끌로
모여 비로소 가벼운 날개를 단다 늘 두근거리는 잘못으로 날아갈 영역이 없는 불편한 날은 비어있는 공중으로 달아나고 싶지만
놓칠세라 어김없이 쓸어담아 내는 촘촘한 빗자루의 청결함에 그만 목숨을 잃는다 먼지의 가장 큰 소원은 아무도 엿보지 못하는
으슥한 곳에 안온한 피신처를 갖는 것이라지만 거긴 빛이 없으니 가냘픈 몸을 부지할 수가 없다 불결한 하루를 씻어내는 날,
죄를 짓고 달아나는 먼지의 창백한 얼굴을 본 일 있는가 바람 부는 날에 우우 흩어진 생명 불러모아 티끌로나 사라지는 머나먼
유랑 길을 본 일 있는가 저것들 우울하게 사라지는 개운한 날에는 누구도 배웅을 해서는 안된다, 그건 언제나 우리의 불행한
건강을 탐내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다
- 박종영 님, '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