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無生法忍 / 無生의 道理 ◈ 완릉록 17-12 수고했다 편히들 하여라.

장백산-1 2014. 12. 24. 02:55

 

 

 

 

 

◈ 완릉록 17-12  수고했다 편히들 하여라.

 

 

虛空이란, 本來부터,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煩惱라 할 것도 없고, 人爲的인 作爲도 없으며,

迷惑할 것도 깨칠 것도 없다. 그래서 '요연히 사무쳐 보아 한 物件도 없나니,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고

하였으며, 털끝만큼이라도 思量 分別을 容納하지 않는 것이니, 依持하여 기댈 만한 것도 없으며,

달라붙을 것도 없다.  한 줄기 맑은 흐름이 自性의 생겨남이 없는 眞理, [無生法忍]이니,

어찌 머뭇거려 헤아리고 따질 수 있겠느냐!  참 부처(眞佛)는 입이 없기 때문에 說法할 줄 모르고,

眞正으로 들음은 귀가 없으니 뉘라서 들을 수 있겠느냐!   수고하였다. 편히들 하여라."

 

 

 

********원오당 한소리********

 

 

[마음(心)이 부처(佛)]라는 황벽스님의 上堂法門을 12단락으로 나누어 보설하였지만  다 연결된

하나의 법문인 것이다. 이 법문을 통하여 부처님의 49년 설법을 다 들어 말씀하셨다고 해도 될 것이다.
바로 부처님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신 것이다. 역대 조사님들의 마음까지도...

그러니 그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이어온 마음을 다 밝혀 주셨다.
無心이 法身임도 밝혔고, 造作하고 作爲가 있는 것은 모두 다 마음의 作用임도 밝혔고,
우리가 煩惱라고 하는 것이 바로 참 性稟, 菩提心임도 밝혀주셨다.

무엇을 하는 것이 스님인지 사문의 도리도 밝혀주셨고,

어떻게 무엇땜에 부처가 세간에 출현하는 지도 남김없이 설해 주셨다.

 

그리고 중생이 왜 부처가 되지 못하는냐에 대하여 우리의 잘못알고 있는 종교적 차원의 소승법 때문에
그 律과 法에 얶매여 一乘法을 받아 들이지 못함도 우리의 槪念과 見解와 見處가 心地를 밝히는데
얼마나 障碍가 되는지도 밝혀드렸고, 祖師禪의 正統과 非禪에 빠져있는 수행자들의 수행처도 그렇게

다 밝히고 나서 이 '虛空界'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한 마음'이라는 事實까지 밝혀 주셨다.

그러면서 虛空이 어째서 한 마음의 本體인지를 마져 설하신다.

["虛空이란 本來부터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煩惱라 할 것도 人爲的인 作爲도 없으며, 迷惑할 것도 깨칠 것도 없다.]
라고 하신다.
이 무슨 말씀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하여 그렇게 수행을 하는데!

여태까지 설법을 들었으면 알아야 한다.

 

이 법문은 마음의 참 性稟을 노래하는 것이다.
虛空같은 마음의 性稟은 大小도 없고, 作爲도 없고, 煩惱 妄想도 없고 迷惑하다 깨쳤다 할 것이

저 虛空에 어디에 있느냐? 눈을 들어 虛空을 보라, 거기에 무엇이 있었더냐! 그렇다고 虛空이 없느냐?
虛空은 있다 없다도 아니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요. 있다 없다의 對相도 아니다.
바로 무심처(無心處)가 이 虛空 아닌가. 그냥 그 텅~빈 空間이므로 바로 마음의 본바탕, 本體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虛空이 있으니 萬相이 반연하여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마음의 實體가 텅~비어 있으니 부처님이 설법하는데
障碍가 없이 할 수 있으며,

頭頭物物이 그 모습을 드러내여 싹을 튀우고 자라고 열매을 맺을 수 있지 않는가!
虛空에 무슨 걸림이 있고 作爲가 있으며 모양이 있다면 三千大千 世界는 그 어디도 흔적과 모양과 형상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이 있음은 바로 없음에서 생겨 날 수 있다.
없음은 또한 있음을 빌어 없다라는 말이 생길 수 있듯이

虛空과 色은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體에 卽한 用이요 用에 卽한 體의 道理인 것이다.
이 모두가 한 마음이요,
모든 것이 이 마음의 作用이요 움직임이며 形相인 것이다.
그래서
삼신(三身)이 한 마음이요 한 마음이 바로 三身인 것이다.
그러니
이 모두가 마음(心)이며 이것을 일러 부처(佛)라고 할 뿐인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부처다 말하는 것이며 이 또한 지어서 부르는 名色인 이름일 뿐임을 알라.

 

그래서 이름도 없고 名色도 아닌 이 마음을 어떻게 감각(感覺)하느냐?
이것이 또한 이름뿐인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이름도 名色도 없는 이것은 무엇일까~~~~~~~~~~!

 

 

황벽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요연히 사무쳐 보아 한 物件도 없나니,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고 하였으며,
털끝만큼이라도 思量 分別을 容納하지 않는 것이니, 의지하여 기댈 만한 것도 없으며, 달라붙을 것도 없다."]라고

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심도 또한 말일 뿐이다. 말을 해도 그대로고 안해도 그대로인 마음의 實體 그것이 무엇인가?

드디어 깨달음의 本實相을 밝히신다.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한 줄기 맑은 흐름이 自性의 생겨남이 없는 진리,[無生法忍]이니, 어찌 머뭇거려 헤아리고 따질 수 있겠느냐!"]
한 줄기 맑은 흐름! 이것이 생겨남이 없는 眞理가 文字로 표현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 하신다.

 

無生法忍은 六祖 혜능선사를 참배한 일숙각인 천태 지의선사의 말이다.생겨남이 없는 道理이니

 

 

이 應無所住 而生其心의 도리를 알고 혜능선사가 깨달음을 증득하였듯이
이 무생(無生)의 道理가 바로 眞理인 것이다. 현대과학에서 이를 입증한 분이 바로 아인슈타인 박사일 것이다.
이분은 기독교 신자이며 과학자이다. 바로 量子理論을 밝혀내었다. 量子란 바로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있다 없다의 대상도 아니다.
그럼 量子 이것이 무엇일까?

結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양자 이것의 形相과 모양이 달라지니

量子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最初로 發明한 과학자이다.

우리의 마음도 量子 이거와 똑같다.

無生은 생겨남이없는 道理이니 이 世上에 存在하는 모든 物質은 그 自體의 性稟이 없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의 性稟이 空하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3,000년의 時空을 超越하여 밝혀 진 것이다.
本來空인 이 虛空에 무엇인가 感覺되는 이것 바로 이것이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황벽스님도 이 事實을 알고, 無生法忍인 이 생겨남도 없고 멸고 없고, 부처라는 것도 중생이라는 것도 없고, 

다 한 마음이 스스로 지어내고 드러내어 스스로 生과 滅을 할 뿐 그 무엇도 붙을 자리도 없고 흔적도 없는
無生의 道理를 일러 眞理라고 하신다.
그러니 無生이 眞理이니 어찌 名色인 말과 글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法門을 마감한다.

 

 

"참 부처는 입이 없기 때문에 說法할 줄 모르고, 眞正으로 들음은 귀가 없으니, 뉘라서 들을 수 있겠느냐! "라고

하신다. 참 性稟, 참 부처에는 입이다 설법이다 들음이다 하는 名色이 붙을 곳도 없고 사실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참 性稟, 참 부처, 그것은 오직 名色과 虛名만이 그렇다고 할뿐 固定된 實體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 이제까지 긴 說法을 들었다. 들음이 있느냐? 알은 게 있느냐? 깨침이 있는가?

ㅎㅎㅎ그럼 본래공(本來空)인가?

 

납승에게 뭍는다면

얼시구나 얼시구나 좋고좋고 좋을씨구  어화둥둥 지화자자 춤판이나 벌려보세

봄이오니 꽃이피고 여름오니 물놀이에  가을단풍 좋을시고 흰눈오니 겨울이다

산에가서 나무구해 군불이나 때야겠다  여보시게 주인공아 어디에다 정신파노

 

 

우리 강아지 반디야 밥먹어라~~~~~!!!  "수고하였다. 편히들 하여라."

상당법문 終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

***화엄동산에서 원오스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