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무엇에서 행복과 성공이 비롯되는가?

장백산-1 2015. 3. 1. 15:14

 

 

 

 

 

 

 

                            무엇에서 행복과 성공이 비롯되는가?

 
 

佛子라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金剛經]의 첫 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 고독원에서
천이백오십인의 큰비구 제자들과 함께 계시었다. 이날도 세존께서는 供養 時間이 되자,
가사를 입으신 뒤, 바루를 들고, 사위성으로 가셔서, 한집 한집 차례대로 밥을 빌어 마치시고,
本處로 돌아와 供養을 하시었다.
그리고 가사와 바루를 제자리에 정돈해 놓으시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무엇 때문에 이 소중한 경전에, 그것도 경전의 첫 머리에,
가사 입고 바루 들고 밥을 빌어 잡수시고, 밥을 잡수신 다음 가사와 바루를 정돈하고,
발 씻고 자리를 펴고 앉는 것을 묘사해 놓은 것인 가?

[金剛經]을 읽는 사람들은 이 部分을 예사로 넘기고, 工夫하는 佛子들도
이 部分에 대해서 깊은 生覺을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가사를 입고, 걸식하고,
밥 먹고, 발 씻고 자리를 펴고 앉는 內容을 經典의 첫 구절에 넣었는지?
그 까닭을 모른 채 그냥 넘어간다. 왜 [金剛經]의 첫머리에 이 구절을 넣은 것인가?
眞理가 바로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道가 바로 옷 입고 밥 얻고 밥 먹고 발 씻고 앉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어찌 日常生活을 제쳐놓고 別度로 眞理가  있겠는가?
日常生活이 그대로 佛法, 道, 眞理라는 事實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金剛經 첫머리에 이 句節을 넣은 것이다.
 
道, 眞理, 法, 禪, 佛, 心이 어디에 있는가? 
눈이 서로 마주치는 곳에 道가 있고, 소리 한번 지르는 곳에 道가 있고,
밥 짓고 옷 만들고 농사 짓고 장사를 하는 가운데 道가 있고,
옷 입고 밥 먹고 대소변 보는 가운데 道가 있다.
道를 모르니까 따로 道를 찾지, 實은 日常生活 그 가운데 다 道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幸福, 福도 마찬가지다. 幸福은 特別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幸福은 道와 같이 어디에나 있다.
日常生活 속, 밥 먹고 옷 입고 대소변 보는 그 속에 幸福이 깃들어 있다.
밥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살아가는 그 속에 幸福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 幸福을 보지도 느끼지도 누리지도 못하며 사는 것인가?
그 理由는 바로 貪欲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貪. 瞋. 癡  三毒心이
내 마음을 가려 버렸기 때문에 幸福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生覺, 三毒心으로 내 마음속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幸福을 느끼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오히려 나만 不幸하고 나만 힘들게 사는듯이 우울하게 生覺하며 살아간다.
만약 日常生活에서 幸福을 느끼며 살고 福을 누리며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八正道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 ‘바를 정(正)’字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만히 사람의 얼굴을 觀察 해보라.
사람의 두눈은 옆으로 길게 이어져 있고, 코는 아래로 쭉 뻗어 있으며,
코 양쪽으로는 두 귀가 반듯하게 붙어 있다.
그리고 코 밑의 입은 옆으로 ‘한 일(一)’자를 이루고 있다.
곧, 얼굴에 ‘바를 正’字가 쓰여 있는 것이다.
과연 얼굴에 바를 正자가 쓰여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바르게 살라’고 눈. 코. 귀. 입이 바를 正자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人間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바르게 살지 않으면 幸福이 깃들지도 않고 幸福할 수도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處地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三毒心을 좇아가서 그릇된 길로 빠져들거나 나쁜 짓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너무나 견디기 힘든 逆境 속에 있을지라도, 바르게 生覺하고 바르게 살고자
努力할 때에 不幸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幸福이 깃들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선비인 정원용(1783~1873)은 양반집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였는데,
부모님을 일찍 여의게 되었다. 그는 과거를 보기 위해 열심히 글을 읽었다. 장사도 하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고 글만 읽고 있으니 물려받았던 재산은 차츰 없어져 버렸고,
팔 수 있는 가재도구까지 모두 처분하였으므로 마침내는
끼니를 이을 수 없을 정도로 궁색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20세가 되었을 때이다.
하루는 사랑방에서 글을 읽다가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아내에게 먹을 것이 없는지를 물으려고 안방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아내가 무엇인가를 먹다가 무릎 밑으로 황급히 감추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기 배가 고프더라도 부부간이라면 밤 한 톨이라도
나누어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혼자 무엇인가를 먹다가 감추다니? 원, 이럴수가 있나!’
잔뜩 속이 뒤플린 정원용은 뒤돌아서서 나오다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아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여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서로나누어 먹어야 할 형편인데
도대체 무엇을 먹었길래 다리 밑으로 감추었소? 당신이 어찌 그럴 수가 있소?”
아내가 나무라는 남편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였다.
“요즘 들어 나에게 무엇을 주셨나요? 돈을 주셨나요? 쌀을 주셨나요?
아무것도 주지 않았으면서 무엇을 먹는다고 그리도 야단입니까?
사방을 둘러봐도 먹을 것은 없고 어찌나 배가 고르던지, 녹두가루로 만든 비누가
그릇에 조금 붙어 있기에 그것도 곡식이라고 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당신이 들어온 것입니다. 너무 부끄러워 말은 못하고,
당신이 민망해 할까봐 무릎 밑에 감추었습니다.
자, 이게 그것이니 빨아 봐요, 어디 무엇이 붙어 있는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배고픈 생각은 어디론가 달아나버렸고,
가슴이 터질듯이 쓰리고 아파왔다.
‘얼마나 배고 고팠으면 그것도 곡식이라고 빨았을까?
남의 집안 귀한 딸을 데려다가 저리도 배를 주리게 하였다니!
나는 사람도 아니다. 무엇을 해야 아내를 굶주리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어찌 해야 되지?’ 사랑방에 틀어박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신통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땅이 없으니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돈이 없으니 장사를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작정한 것이 도둑질이었다.

그러나 막상 하려고 하니 작정한 도둑질조차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담장이 높은 집에는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울타리도 담도 없는 집에 무작정 들어가
도둑질을 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날 밤 사방이 어두워지자, 정원용은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양반들이 사는 동네라, 대부분 담장들이 높아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는데,
한참을 다니다 보니 울타리도 담장도 없는 집이 하나 보였다.
몰래 들어가 보니 뒷마루에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는 자루가 하나 보였고,
손으로 만져보니 나락(벼)이 한 말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옳다. 이것이면 됐다.” 정원용이 그 나락자루를 어깨에 매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자루를 막 내려놓으려는데, 한 生覺이 뇌리를 치는 것이었다.
‘울타리도 담도 없는 그 집도 먹을 것이 없어
이 나락을 食糧으로 구해 놓았을 것인데 내가 훔쳐왔으니… 그럼 그 사람들은 무엇을 먹나?
굶어 죽으면 죽었지, 어떻게 이것을 먹겠나? 이런 짓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本來의 마음자리로 돌아온 정원용은 나락자루를 다시 그 집에 갖다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둑질을 하려고 해도 生覺이 容納을 하지 않는구나.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나지만, 저 불쌍한 아내는 어떻게 하나?’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깊이 근심을 하고 있는데, 홀연히 虛空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정원용아, 이제 福 받아라!” 꿈도 아닌데, 그 소리는 너무나 또렷하게 들렸다.
하지만 좋은 일이 생겨날 건더기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이 되자 동네사람들이 모여 의논을 시작한 것이다.
“정원용 내외를 저대로 놔두면 틀림없이 굶어 죽을 것이다.
우리들이 힘을 모아 도와주자.”
그리고는 糧食도 갖다 주고 옷도 갖다 주어서 굶는 것을 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과거에 합격하여, 약관 20세의 나이로 벼슬길에 올랐다.
정원용은 늘 바른 生覺으로 儉素하게 살았고 청렴결백하게 官職生活을 하였는데,
차츰 벼슬이 높아져서 나이 56세에 領議政이 되었다.
그 뒤 20여년 동안 最高의 官職에 있다가 91세의 나이로 서거 하였는데,
아들과 손자들도 정승과 판사를 지내는등 집안의 경사가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출처 : 법공양 불기 2556년 7월호
경봉대선사 탄신 120주년, 열반 30주년 기념 특별기고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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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태일(太一)|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