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 / 진리의 앎, 가치 있는 삶이란?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은 죽음이라는 말, 이름, 생각일 뿐이다
말, 이름 생각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텅~빈 空으로 原來 없는 것이다.
'죽음' 이라는 말, 이름, 생각이 있기 때문에 相對的으로 삶이라는 이름, 말, 생각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삶' 이라는 말(이름), 생각이 없다면, '죽음' 이라는 이름(말), 생각도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言語는 恒常 相對的인 觀念 槪念 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는 죽음을 經驗할 수 없다. 그래서 사실, 그대는 삶을 經驗할 수도 없다.
지금 살아 있다고 生覺하기 때문에 相對的으로 죽음이 있다고 生覺하는 것 뿐이다.
사실, 人間은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죽음 또한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사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分明한 事實은, 그대는 죽음을 經驗할 수 없으며, 삶 또한 經驗할 수 없다는 事實이다.
그런 事實에 대해서 事實을 事實 그대로 아는 앎을 眞理의 앎이라고 한다.
人間은 누구나 '나의 삶'이 있다고 여기고 그렇게 믿는다.
'내 人生'의 始作이 있다고 여겨서 믿기 때문에 내 人生의 끝이 있다고 여겨서 믿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아는 앎을 믿는 삶이 아니라... 남들을 依存하여 아는 앎을 事實이라고 錯覺하는 삶이다.
사실, 나의 人生, 나의 삶 이 있다면...그 '나'에 대해서 스스의 힘으로 아는 앎이 있어아먄 한다.
사실, 人間은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하지만... 정작 '나'에 대해서 만큼은 完全하게 無知하다.
만약에 人間이 自身의 마음에 對해서 事實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앎이 있다면...
神이나 絶對者, 하나님, 부처님 등 非實體的이고 非人格的인 存在들의 말씀을 주장하는
宗敎가 생겨날 수 없는 것이며, 자신의 몸에 對해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앎이 있다면...
西洋醫學이나 韓醫學 등의 醫學들 또한 생겨날 까닭이 없는 것이며,
人間 世上의 모든 學門들 또한 생겨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대가 世上에 태어났다고 아는 앎은, 父母의 앎에 依存하여 알게 된 知識일 뿐이며, 마음이 있다는
앎 또한 남들을 依持하여 알게된 知識일 뿐이며, '몸이 나다' 라는 앎 또한 그런 類의 앎, 知識이다.
'나'에 對해서 아는 모든 앎들이 事實 스스로 아는 앎이 아니라... 남들을 依存하여 아는 앎인 것이다.
그대 內面에 있는 모든 앎, 知識들이 그렇게 남을 의지해서 아는 앎, 지식일 뿐이다.
그대 內面을 自細히 觀察해 볼 수 있다면... 그대 內面에 저장된 모든 앎, 지식들은
사실 남들로부터 얻어진 知識, 앎(언어, 이름)들로 채워져 있을 뿐, 그런 남의 앎, 지식 以外에는
스스로 아는 앎, 지식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정신병자라고 시인 하거나 또는 무식하여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사실, 人間은 누구나 現在라는 時間, 지금 여기 이 '瞬間'이 있다고 믿지만
分明한 事實은, 그대는 '지금' 또는 '瞬間'을 經驗할 수가 없다는 事實이다.
쉬지 않고 흐르는 時間이 있다고 假定 한다면... '지금' 이라고 生覺하는 찰라 瞬間...
그 지금은 그 순간 이미 흘러간 過去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時間은
단지, 유행가 가사와 같이 '가는 歲月 막을 수 없다'는 抽象的인 言語가 아니라...
젊은날이 가는 것 또한 내가 願해서가 아니라는 말과 같이 막연하거나 아름다운
싯구절들과 같은 幻想的인 말이 아니라... 時間은 事實的인 不變하는 固定된 實體가 아니라
오직 그대의 思考活動 속에서만 있는 觀念 槪念 幻想일 뿐, 實際로 存在하는 實在가 아니라는 말이다.
言語가 事實的인 實在라고 假定한다면... 事實이 아닌 것은 거짓, 가짜이다.
그렇기 때문에... 時間이 있다고 아는 앎은 올바른 앎이 아니라, 거짓된 앎이다.
국어사전 : 현재 [現在,賢宰,顯在] 뜻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의 시간 ... 더보기
사실 그대는 來日을 經驗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現在도 經驗할 수가 없다.
사전적 의미와 같이 '지금의 時間'을 經驗할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瞬間이라고 말하는 찰라 瞬間... '生覺하는 瞬間' 과 同時에 즉각 過去이기 때문이며,
瞬間을 經驗하는 것이 아니라, 恒狀 過去를 經驗하는 것이 人間들의 思考方式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 올바른 앎인 것이며,
中道, 道, 깨달음, 眞理를 理解 하는 앎이다.
사실, 그대의 內面에 있는 앎, 지식들은... 眞實다운 앎, 지식은 아무 것도 없다.
마음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들을 依存해서 아는 앎(지식)만이 있는 것이며,
이런 앎, 지식은 모두 虛構的인 觀念 槪念 幻想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瞬間을 살라는 것이며,
恒常 지금 이 瞬間瞬間을 기쁨으로 創造해 살라고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經驗하는 世上은 恒常
現在가 아니라 過去이기 때문이며, 흘러간 지난 날들과 같은 꿈 幻想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人間은 누구나 '내가 태어났다' 고 알고 있으며, '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世上에 태어나기 以前에는 그대는 없었다.
그대가 本來 없다는 事實에 對해서 事實을 事實 그대로 올바르게 볼 수 있다면,
그대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지금 그대가 實存이라고 生覺한다면,
그 生覺은 헛되고 虛妄된 生覺인 錯覺일 뿐이다. 그대가 태어나기 以前에는 그대가 없었기 때문이며,
世上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그대는 죽음을 經驗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삶을 經驗하는 것도 아니며, 단지 夢想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다. 精神을 말하지만,
精神이 무엇인지 定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이 世上에 存在해야 하는 理由가 있다면 오직 眞理를 理解 하는 것 뿐이다.
自身의 本質과 存在 理由 조차 理解 할 수 없다면... 살아가야 할 價値가 없는 삶이다.
왜냐하면... 삶은 苦痛이 아닐 수 없는 現實이며, 삶이 苦痛이 아닐 수 없는 까닭은
죽음이 前提 되지 않은 삶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며, 또한 죽음을 免할 수 없기 때문이며,
죽음에 대해서 苦痛이라고 生覺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의 삶이 本來 不變하는 固定된 實體가 있는 것이 아니듯,
죽음과 苦痛이 本來 不變하는 固定된 實體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事實에 대해서 事實을 事實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앎을 '진리의 앎'이라고 한다.
현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곳이 있다.
이름하여 '일념명상의 집 '道家' 이다.
因緣있는 者에게 永遠한 自由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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