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세상을 다 받아들이는 공부

장백산-1 2015. 4. 7. 00:52

 

 

 

15. 04. 03 - 세상을  다  받아들이는 공부

 

향광심
| | 조회 29 |추천 0 | 2015.04.06. 20:09

 

 

 

세상을  다  받아들이는 공부

 

佛法은  不二法,  不二中道, 무이상(無二相)이라고 말합니다. 둘로 나누어 놓게 되면 좋거나 나쁜 것이

생기고, 좋은 것은 붙잡으려 애쓰고, 싫은 것은 버리려 애쓰게 됩니다. 당연히 좋은 것이 멀어질 때는

괴롭고, 싫은 것이 버려지지 않을 때는 괴롭습니다. 이처럼 둘로 나눠지면 언제나 괴로움이 동반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그 어떤 것도 둘로 나누지 말라고 합니다. 둘로 나누지 않으면, 좋아하거나 버리려고

애쓰지 않게 되고,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現實을 있는 이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受容하거나 

拒否하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통째로 受容하는 받아들임의 마음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世上을 살면서 언제나 우리는 世上을 둘로 나누어 놓고 그 중에 좋은 것을 擇하고 싫은 것은 버리는

行爲를 합니다.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하는 日常의 行爲가 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分別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단순한 일도 좋은 사람은 좋아서 더 만나고 싶고,

싫은 사람은 거부하며 만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지요. 음식을 먹을 때도 좋고 나쁜 음식을 나누어 놓고

좋은 것을  더 먹으려하고 싫은 음식은 안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修行하는 것도 이런 方式으로 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마음工夫는

世上을 둘로 나누고 그 중에 좋은 것을 擇하고 싫은 것은 멀리하는 方式으로 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煩惱 妄想 分別心을 버리고 고요함만을 좋아하거나, 중생을 버리고 부처만 좋아하고,

無明을 버리고 般若智慧를 얻으려 하거나 하는 方式으로 그동안 마음工夫를 해 왔을 것입니다.

 

물론 불교에서도 이렇게 가르쳤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중생들의 根機에 應해주기 위한 方便의

가르침이었을 뿐입니다. 중생들은 어쩔 수 없이 世上 모든 것들을 둘로 나눈 뒤에 그 중에 좋은 것을

擇하고, 싫은 것은 버리는데에만 익숙해 있다보니 그렇게 말해줘야 이해를 쉽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왔던 方式, 卽 衆生을 버리고 부처만을 取하거나, 煩惱를 버리고 涅槃만을

取하려는 그런 마음은 佛法의 本質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佛法은 取할 것도 버릴 것도 없는

不二 中道가 마음 工夫의 始作입니다. 좋고 싫은 것도 없고, 버리지도 取하지도 못하니 꼼짝달싹 못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꽉 막힌 意識 狀態, 進退兩難에 빠지는 것입니다. 精神的인 큰 벽에 부딪치는 것이지요.

이랬을 때는 生覺 마음 意識이 막혀버립니다. 마음이 꽉 닫혀버립니다.

 

生覺의 特徵은 언제나 좋은 쪽 싫은 쪽 둘로 나눈 뒤에 좋은 것은 取하려하고  싫은 것은 버리려고

애를 쓰는데, 取하고 버리려는 그 두 가지를 다 못하게 꽁꽁 묶어 놓으니 生覺이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음이 生覺이 어디에도 머물지를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 狀態를 無住라고 합니다.

그래서 金剛經에서도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을 내어 쓰라고 했어요.

 

이것이 곧 버리거나 取하지 말고 마음을 내라는 말입니다. 取하거나 버리려는 마음은 意識이 만들어

生覺이고, 그 生覺은 宇宙法界의 因緣에 따라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生滅心, 生死法, 分別心일 뿐입니다.

이와같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固定된 實體가 아닌 生滅心은 전혀 執着하거나 미련을 가질 必要가 없는

에너지입니다. 그러면 取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일어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生死法도 아닌, 理法事法

도 아닌, 전혀 일어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언제나 한결같은 있는 이대로의 것이 하나 남게 됩니다.

 

그 하나가 바로 分別心이 사라질 때 저절로 드러나는 本來 完全한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있거나 없는 자리도 아니고, 本來無一物의 자리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자리입니다.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이 자리가 무엇인지를 天地四方이 꽉 막힌 자리에서 문득 通할 때

나와 宇宙 世上의 眞實이 確認되는 것입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