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일러스트=김주대 문인화가·시인 |
一切唯心造 구절에서의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내게 다가와서 나를 둘러싼 것들에 속한 마음이다. 음식에 마음이 속한다는 말이나 TV에 마음이 있다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意識’이 아니다. 나의 마음이라고 할 때에도, 그 마음은 나로 하여금 어떤 行動을 하게 하는 것이고, 그 行動에 의해 내가 만난 무언가에 作用하여 影響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양파와 감자에 作用하여 잘게 자르도록 하고 그것을 섞어서 요리를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라면, 마찬가지로 나에게 作用하여 어떤 變化를 야기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음이라고 해야 한다. 나를 침을 흘리게 만든 것이 있고, 내가 생각지 못한 쇼핑을 하게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마음이라 해야 한다.
35억년 지속된 생명역사는 외부적 조건에 적응하려는 모든 생명체가 갖는 마음의 기억들이 집적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그런 마음들을 貫通하는 것을 지칭하는 ‘마음’이란 槪念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하나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그런 모든 마음들을 묶어서 ‘마음’이라는 하나의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어떤 것에 作用하여 變化를 일으킬 수 있는 能力이 마음이다. 나의 ‘마음’이란 念頭에 둔 對相에 作用하여 어떤 變化를 야기하는 能力이고, TV의 ‘마음’이란 나나 오바마 대통령이나 TV를 보고 있는 누군가에 作用하여 어떤 變化를 만들어내는 能力이다. 그렇게 어떤 것에 作用하여 어떤 變化를 만들어낼 能力이 있는 모든 것은 마음을 갖고 있다. 개는 개 나름의 能力을 갖고 있고, 소나무는 소나무 나름의 能力을 갖고 있으며, 첼로는 첼로 나름의 能力을, 바위나 흙조차 그것 나름의 能力을 갖고 있다. 동물은 동물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그리고 생물은 생물대로, 무생물은 무생물대로 모두 나름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큰 것’만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넘어져 무릎이나 팔이 깨져본 이들은 알 것이다. 상처를 조심스럽게만 다루어준다면, 피부가 예전처럼 再生된다는 사실을. 그렇게 신체를 재생하는 것은 단백질을 合成하여 體細胞를 만드는 遺傳子의 作用이다. 卽 遺傳子의 마음이 다친 身體를 再生한다. 아니, 遺傳子의 마음이 生物의 身體를 만들어낸다. 특정한 아미노산을 찾아 모아서 단백질을 만드는 遺傳子 活動의 最小單位인 코돈들도 마음을 갖고 있고, 자신의 특정한 짝 아니면 결합되길 거부하는 뉴클레오티드들도 마음을 갖고 있다.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부분들도 모두가 각각의 마음을 갖고 있다. 作用하여 變化를 産出할 能力을 가진 모든 것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宇宙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平等하다.
이런 式으로 마음의 槪念을 一般的인 것으로 抽想하여 이해한다면, 이제 ‘一切唯心造’란 말에 대해서도 우리는 앞서와 약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세상 모든 것은, 어떤 것에 作用하여 變化를 야기할 수 있는 能力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칼이나 요리, TV나 자동차만 인간의 마음의 능력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시야가 좁은 것이다. 토끼의 신체는 토끼 신체에 作用하여 어떤 變化를 만들어내는 풀의 能力이 만들어낸 것이고, 우리 인간의 신체는 人體에 作用하여 變化를 만들어내는 벼, 콩, 혹은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만들어낸 것이다. 풀 위에 내리는 비는 습기를 머금은 大氣에 作用하여 태양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숲과 나무를 흔드는 바람은 대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自然現象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모든 자연현상을 포괄하는 自然 全切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바로 ‘마음’이 라는 能力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나의 마음은 어떤가? 이미 앞서 본 것처럼 나의 마음 역시 마음이 만들어낸 것 아닌가?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면, 만들어내는 能力을 뜻하는 마음이 이 세상 모든 걸 産出하는 役割을 한다는 의미에서 ‘능산적(能産的) 마음’이라면, 나의 마음, 개미의 마음 등 諸各各의 마음은 能産的 마음에 의해 産出된 能力이란 점에서 ‘소산적(所産的)인 마음’이다.
에 세상 모든 것들 各各의 마음은 모두 무언가를 만들어낼 能力을 갖는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 各各의 마음은 어떤 條件에서, 어떤 마음들의 연쇄에 의해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다른 産出 能力을 갖는다. 흑인을 노예로 삼으려는 마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흑인의 마음과 자유인으로 대하려는 마음과 상대하는 흑인의 마음은 같을 수 없다. 遺傳子조차 그러하다는 걸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4년 9월, 유럽전역에서 퇴각하던 독일군의 거점 중 하나였던 네덜란드 서부의 주요 도시에서 독일군에 저항하는 철도파업이 일어나고 빨치산 투쟁이 격화되었다. 이에 보복하기 위해 독일군은 식량봉쇄조치를 취한다. 1945년 독일군이 항복할 때까지 지속된 이 식량봉쇄조치로 2만2000명이 굶어죽었다. 식량봉쇄에 따른 기근은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론 그 사이 엄마의 자궁에 있던 태아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인상적인 것은 임신 초부터 기근의 영향을 받은 아기들은 예상과 달리 평균보다 몸집이 컸으며, 이후 평균의 2배 정도가 비만한 신체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후성유전’이라고 설명되는 이 現象은, 임신 당시의 기근에 反應하여 유입된 영양소를 저장하는 유전자가 최대한 활성화되었기에 발생한 현상이다. 기근의 영향을 받는 태아의 마음들이 최소식량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영양분을 최대한 흡수하여 저장하는 유전자들의 ‘마음’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遺傳子는 35억년 生命體의 歷史 속에서 生存에 有利했던 情報들이 集積된 것이다. 빛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生存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葉綠體의 ‘마음’은, 서로 먹고 먹히는 만남 속에서 박테리아들의 ‘마음’들이 박테리아들의 生存條件이 된 물이나 대기의 ‘마음’들이 뜻하지 않게(!) 만들어낸 것이다. 정교하게 작동하는 우리의 눈은 빛에 반응하는 박테리아를 기원으로 하는 細胞들에 의해, 빛을 條件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光受容體에게 ‘손을 내미는’ 빛이 사라지면, 빛을 보려는 마음도 빛을 보려는 신체적 능력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두더지의 退化된 눈은 잘 보여준다. 그런 遺前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움직여지는 人間의 肉體와 마음은 35억년 생명의 역사가 만들어온 産物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통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나의 마음, 너의 마음은, 이런 점에서 보면 모두 35억년 간 생명의 역사라고 불리는 緣起的 條件들이 記憶되고 蓄積된 것이며, 그런 外部的 條件들이 內部化된 것이다. 나에게 作用하는 모든 마음들이 응집되어 내부화된 것이다. 들뢰즈 式으로 말하면, 그 外部的 條件이 생명체의 마음속으로 접혀 들어가며 만들어진 ‘주름’, 그것이 나의 身體요 나의 마음이다. 만나는 條件마다, 만나는 마음들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접혀 들어가며 만들어진 '주름', 그것이 ‘所産’으로서의 마음으로 나의 마음, 개미의 마음, 내 눈의 마음, 내 유전자의 마음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