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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나를 가두는 감옥

장백산-1 2016. 9. 11. 16:31

스스로 나를 가두는 감옥


사회적인 지위가 높거나 사회적인 영향력이 크신 분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자기 스스로 사회적 

지위가 높고 그 영향력이 크다고 여겨서 錯覺하는 분들은 엄청나게 강고한 방어벽이란 감옥에 스스

로를 가두고 살아갑니다.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이 있다 보니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 나는 적어도 '이

렇게 행동해야 된다', '근엄하게 행동해야 한다', '천박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이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등의 스스로가 쳐놓은 감옥, 울타리라는 방어벽 즉, 고정관념, 분별심

에 구속당해서 거기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네 스님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승복을 입고 밖에 나가면 승복이 족쇄가 돼버리고 감옥

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먹

지 못하게 막고, 바쁜 일이 있어서 뛰어가야 할 때가 생겨도 자유롭게 뛰어가지를 못합니다. 여기저

기 감옥, 울타리, 장벽에 걸리고 막혀서 내 마음 생각 의식의 활동이 방해를 받는다는 말이지요.


사실 계율(戒律)도 根源에서 볼 때는 그것에 걸릴 필요가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 그래서 무애도인(無

道人) 즉, 어떤 걸림도 없는 옛 道人들의 삶을 언뜻 衆生들의 시비, 분별, 비교, 판단, 생각으로 볼 때는 

道人의 삶이 막행막식(莫行莫食)이다 싶을 정도로 걸림이 없는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道人은 스스로의 

면에 스스로를 구속해서 가두는 어떤 틀, 감옥, 분별심, 알음알이(識), 분별심이라는 방어벽을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自由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처럼, 하늘에 떠가는 구름처럼 어디에도 막힘이 없이 自由로운 겁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는 道人들이 戒律도 안지키는 것 같고, 말도 막 하는 것 같고, 도대체 道人 같아 보이지 않지만 道人의

內面 世界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자기 생각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은 군에서 보내주는 自己啓發 프로그램에 갈 수 있게 되어 용타 스님이 운영하시는 동사섭

(同四攝)이라는 보시(布施), 愛語(애어), 이행(利行), 동사(同事)를 실천하는  수련회에 갔었습니다. 

거기에서 일종의 행동명상을 하는데 10대부터 70대까지 남여노소 전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

니다. 그런데 그 큰 방에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용타 스님께서 自己라는 相 즉, 나라는 

생각을 다 내버리고 오직 용타 스님의 말만 따르라고 합니다. 


남자라는 相, 나이라는 相,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낮다는 相, 돈이 많다는 相, 부자라는 相, 가난이라

는 相, 여자라는 相, 건강이라는 相, 병자라는 相, 학식이 높다는 相, 학식이 낮다는 相 등등의 그 모든 

相들로부터 훌쩍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만이라도 完全한 自由人이 되어 보자는 말씀

을 하시는 겁니다. 모든 相에서 벗어나서 完全한 自由人이 되어 보자는 그 말씀이 바로 人間들의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헤아리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생각 망상 번뇌 잡념 상념 의식 마음 卽, 알음알이

(識), 지견, 견해, 이해, 지식, 분별심, 분별의식, 관념, 개념이라는 나를 옭매고 구속해서 가두는 감옥

즉, '방어벽'을 모두 벗겨내보자는 말과 다르지 않은 거지요. 


용타 스님이 어떤 말씀을 하면 수련회 참가자들은 더 이상 지금 까지의 내가 아닙니다. 그 곳에서는 

내가 아니고 용타 스님이 말씀하시는 그것이 되는 겁입니다. 지금 까지의 '나'라고 여기고 생각했던

相을 완전히 내버리고 용타 스님이 말씀하는 그것이 되어야 하는 거지요. 그것이 안되면 '나'라는 相

이 그만큼 强하고 크다는 반증입니다. 


예를 들면 용타 스님이 자 지금부터 우리는 모두 '개다! 강아지다!'라고 말씀하면 지금부터는 참가자

모두가 개나 강아지가 되어서 그래서 진짜 개나 강아지처럼 '멍멍멍!!' 짖어대고 깨물고 날뛰면서 그

순간만은 나라고 여겼던 모든 相을 내버리고 개나 강아지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참가자 중에

서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거나, 표정이 근엄한 분들일수록 卽, 나라고 여기는 생각, 我相이 

많은 사람일수록, 방어벽이 높은 사람일수록 눈치 살살 봐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멍멍' 한번 하고 말지 

적극적으로 자기를 비우고 개나 강아지가 되지 못하더란 말입니다. 나라는 相을 딱 내버린 사람들은  

전혀 나이가 들고 어린 것에 관계없이 마구 멍멍 짖고 뛰어다니면서 아주 재미있게 잘도 논단 말입니

다. 진짜 개나 강아지가 된 것처럼 말이지요. 신기하게도 한 60이 넘어 보이는 근엄하게 생기신 분께서 

그냥 '개' 하라 하면 개가 되어 멍멍 짖어대고, 고양이가 되라 하면 고양이가 되어 야옹 야옹 대고, 애기 

하라 말하면 갑자기 애기가 되어서 '응애 응애' 울고 이런단 말이죠.


그런데 나의 생각 마음 의식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그 장벽, 我相이라는 고정관념, 개념, 분별심, 알음

알이(識)이라는 생각 마음의 감옥! 그것이 크면 클수록 높으면 높을수록 용타 스님이 말씀하는 그것의

역할이 잘 안되지요. 마음놓고 자유롭게 그것의 의미하는 짓을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틀, 장벽, 감옥

인 我相이라는 고정관념, 개념, 분별심, 알음알이(識), 지식, 견해, 지견, 이해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라고 여기는 生覺, 錯覺, 幻想, 我相인 그 틀, 장벽, 감옥들은 바로 나 스스로

의 생각 마음 의식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덫, 함정입니다. 


이처럼 어리석게도 우리 人間들은 매순간순간 이 世上을 대면하면서 세상이 내게 올 수 없도록 수많은 

방어벽을 치고, 덫을 놓고 함정을 파고 있고, 그것 때문에 無限한 이 世上의 다양한 可能性들과 풍성한 

새로운 경험들, 그리고 근원적인 요소들이 나에게 흘러 들어오지 못하게 딱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