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없는 나의 제자>

<미워할 수 없는 나의 제자>

사람들로부터 명상수행을 배우고 싶다며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이미 있는 제자 한 명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처지에 새 제자를 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운명적으로 나와 연이 맺어진 나의 제자 이 친구는 긴 세월 지도를 받았음에도 큰 진전이 없다. 생각의 뗏목을 타고 마음의 바닷속에 잠겼다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파도의 물마루에 올랐는가 싶으면 금방 물골에 다시 빠져 허우적댄다. 인생의 대양을 어떻게 건널지 걱정이다.

내가 여비를 대 인도와 네팔 히말라야에도 동행시키고 여러 명상수행 센터와 스승들 앞에도 데려갔지만 무엇을 깨달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자신이 아는 세상 너머에 어떤 신비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하나 그것을 알기에는 타고난 능력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나처럼 영적인 자에게 어떻게 이런 제자가 들어왔는지 무슨 업보가 아닌가 여겨질 정도이다.

이 제자는 무엇보다 감정 조절에 서툴다. 자신이 감정을 처리하는 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감정이 그를 처리한다. 생각을 사용하는 생각의 주인이 아니라 생각이 그의 주인이 되어 생각에 끌려다닌다. 의심하고 따질 것이 너무 많아 지금 여기의 삶을 뒤로 미룬다. 그럼에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계산이 엉성하다. 행복을 수놓기 위한 마음의 실과 바늘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갖고 고통의 수를 놓는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들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이 제자는 좋고 나쁨을 분별(分別)하고 구분(區分)하는 데는 아주 뛰어나다. 아름답고 추함, 옳고 그름, 호감과 비호감등의 분별 구별 분류하는데는 탁월한 능력자이다. 노벨 분별상 노벨 구별살 노벨 분류상이 있다면 단연코 수상자가 될 것이다. 나무와 꽃을 금방 구분하지만, 정작 그 나무와 꽃을 몰입해서 보지는 않는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도 빠르다. 남자와 여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흥미 있는 사람과 지루한 사람 등으로 나눈다. 타인에 대해서는 행동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의도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어떤 때는 한심해서 한 대 때려 주고 싶다.

이 제자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로부터 도망가는 것도 능력자 수준이다. 생각 속에서 길을 잃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는 유령이 되어버린다. 버스를 타고 있지만 버스 안에 있지 않고, 바닷가를 거닐지만 바닷가에 있지 않다. 밥을 먹고 있지만 밥먹는 자리에 없다.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먼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이 친구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자기 동일시'이다. 자신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과 동일시 되는데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칭찬과 비난에도 쉽게 동일시 되어 흔들린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자신의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자유가 온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현상은 단순히 몸의 변화(變化)하는 과정일 뿐인데도 생(生) 로(老) 병(病) 사(死)라는 변화하는 현상을 '내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물 밖으로 내던져진 물고기가 마른 땅 바닥에서 몸부림치듯 마음이 생각이 수시로 괴로움에 파닥거린다.

이 제자는 없는 문제를 만들거나, 좋은 기억을 잊고 나쁜 기억을 꿀주머니처럼 간직하는 데도 전문가이다. 행복은 '불행 제로'인 상태라고 오해한다. 행복만 있고 불행이 없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행복의해지는 기술은 불행을 포용하는 데 있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행복 찾기에 실패한다.

이 제자는 '이 음식을 먹으면 행복할까?' '이 물건을 소유하면 행복할까?, 이 새차를 사면 행복할까?'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행복할까?' '이 명상 수행이나 요가를 하면 행복할까?' 생각하면서 열심히 사다리를 오르고 있지만 그 사다리가 잘못된 벽에 기대어져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딱한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 제자에게도 희망은 있다. "나는 연약하고, 정말로 연약하고, 말할 수 없이 최고로 연약했다."라고 고백한 이가 바로 붓다이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연약함의 바탕에서 그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내 제자의 연약함 역시 무한(無限)한 가능성(可能性)의 토대(土臺)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지 약한 자신을 데리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그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수행이기 때문이다. 이글을 읽는 사람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의 하나뿐인 나의 애제자는 바로 나 자신의 연약한 마음이다.

- 류시화 시인 포스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