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는 마음을 멈출 때 본래 이미 완성되어 있다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거 없이 끊임없이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해야만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고, 완전한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냥 불행이 없는 것일 뿐, 또 다른 행복이라는 무언가는 없습니다.
괴로움이 소멸된 것이 열반이고 행복이지, 따로 열반 행복이라는 신세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목적은 사성제(苦集滅道 :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
에 있다고 하듯이, 그저 괴로움의 소멸일 뿐이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것이 곧 열반. 해탈, 행복일 뿐이지,
괴로움을 소멸시킨 뒤에 더 좋은 열반, 더 좋은 해탈, 더 좋은 진리, 더좋은 행복 같은 것을 찾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없기 때문이지요.
만약 여러분 삶에 큰 괴로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행복도 없어서, 행복을 찾아 나서고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괴로움이 없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지, 행복이라는 별도의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로 특별하게 있는 행복을 찾고자 하는 그 마음, 즉 분별하는 마음, 분별심만 쉬면,
곧장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있던 행복이 드러날 것입니다.
두 눈의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 한 눈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무한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제 죽은 사람보다 오늘도 숨을 쉴 수 있는 우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겠지요.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근원적이고도 완전한 행복은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다만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있는 행복을 놔두고, 분별을 하는 또 다른 생각 속의 행복을 찾아나서기를 멈추기만 하면 됩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을 멈추면,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있는 행복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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