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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장백산-1 2019. 1. 23. 20:44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옛사람은 ‘밖을 향해 공부하는 이는 모두 어리석고 미련한 녀석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대가 처해 있는 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진실한 것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선어록과 마음공부 p247)


내가 지금 서있는 이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참된 진실한 자리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돈이 없다면 그게 진실한 겁니다. 지금은 돈이 없는 게 나로서 가장 최적의 진실한 삶의 모습이에요. ‘내 머릿속에 나는 돈이 부족해’라는 생각만 없으면 지금 여기 이대로 아무 문제 없거든요. 지금 내가 어떤 특정한 상황에 특정한 괴로움에 놓였다면 그 괴로움이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느냐면 진실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아야 되잖아요.



그 말은 뭐냐면 지금 나에게 어떤 괴로움이 왔다면 그 괴로움이 바로 진실이거든요. 그래서 그 괴로움을 살아줘야 됩니다. 그 괴로움 속으로 뛰어 들어야 되는 것이지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막 애쓰는 삶을 살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괴로움 그것이 나에게 왔으니까 그것이 진실이니까 내게 온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진실을 살아줘야 되는 것이지요. 나를 찾아 온 모든 일들, 모든 사건들, 모든 사람들, 모든 사건들, 모든 현상들 모든 게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왔다는 것은 그 일이 진실이기 때문에만 올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뭐 이런 표현도 씁니다. 만약에 당신이 지금 가난하다면 그냥 가난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왜? 지금 가난하기 때문에. 지금, 지금이 이유입니다. 모든 것의 이유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이것이 내 앞에 있으면 그것이 바로 진실인 것이니까 그것을 살아주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때는 어떤 이걸 문제라고 생각해서 이걸 깨뜨리면 문제가 해결된 새로운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 그 문제가 생긴 그곳으로 뛰어들어서 그 문제를 아파해줄 때 문제가 있는 것을 그대로 느껴주고 누려주고 그 문제와 함께 있어줄 때 그때 그 문제는 빨리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가 나에게 찾아오는 이유는 내가 그 문제를 경험해야 되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거든요.


내가 그 문제를 느끼고 잠시 그 문제와 함께 있어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문제가 찾아옵니다. 그런 걸 가지고 그 문제를 자꾸 밀쳐내려고만 하면 내가 자꾸 그 문제를 경험하는 시간을 밀쳐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진실을 나에게 어떻게든 진실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요. 그러니까 내가 밀쳐내면 더욱더 큰 에너지를 가지고 강하게 밀쳐낼수록 더 강하게 찾아오지요.


그러니까 어떤 문제도 밀쳐낼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과 함께 하나 되어서 그것을 잠시 살아주면 오히려 그것은 빨리 흡수가 되어서 그 사람이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 충분히 경험하니까 빨리 사라져버려요. 왜? 본래 목적을 이미 이루었으니까. 이 사람에게 경험되기 하기 위해서 찾아왔는데 이 사람이 충분히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 ‘어? 경험했네’ 가버리는 거지요. 그 목적을 이미 달성했으니까.


그러니까 아프고 괴로울 때 안 아픈 척 안 괴로운 척할 필요가 없어요. 아니면 겉에서는 그래야 되는 상황이라면 혼자서 스스로에게 그래 ‘나 아프다’ 인정하고 ‘나 괴롭다’ 인정하고 그것이 가장 수행자 다운 방식이지요. 아닌 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 함께 있어주는 거지요. ‘아프지만 그것과 함께 있어주겠어’ ‘힘들지만 그것이 왔다면 그것이 나에게 왔다면 그것을 살아주겠어’ 왜?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나는 내 생각을 가지고 A라는 게 이루어지기를 바랐는데 B라는 게 이루어져서 나는 절망스러워. 그러나 B를 살아주겠어’ ‘내 생각은 A를 원했지만 진정한 어떤 삶의 진리는 B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나에게 B라는 삶을 보내줬겠지’ ‘그렇다면 나는 B라는 삶을 마땅히 살아주겠다’ 하고 B라는 삶을 경험해주는 것이지요. 


우리들 대부분은 끊임없이 밖을 향해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이유가 깨달음도 마찬가지고 행복도 마찬가진데요. 아까 말한 것처럼 ‘깨달음’ 이러면 깨달음이라는 어마어마한 어떤 상(相)을 만들어 놓고서는 그 상이 달성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그 어마어마한 깨달음의 사건이 일어나기를 추구하지요. 그러니까 그 어마어마한 깨달음의 사건을 막 쫓아다니는 겁니다. 지금 이렇게 소리가 들리면 들을 줄 알고, 볼 줄 아는 게, 이게 부처라는 생각은 죽어도 못하니까 계속해서 밖을 향해서 부처를 좇아가는 거지요.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어떤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정의가 뭔지 아세요? 고집멸도(苦集滅道)가 불교의 핵심이에요. 고집멸도할 때 ‘멸성제’가 바로 열반, 해탈, 깨달음이에요. 그런데 멸성제는 뭐가 멸성제냐면 ‘괴로움이 해결된 상태’ 그게 ‘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지금 이렇게 앉아서 제 얘기를 듣고 계시지요. 그런데 지금 이 얘기를 듣고 있는데 괴로운 게 있습니까? 여러분 열반입니다. 괴로움이 열반이라는 것이 그것이라는 거지요.


지금 여러분이 제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은 괴로움이 없잖아요. 그런데 잠시 집 생각을 하거나 어디 생각을 하거나 딴 생각을 하면 갑자기 괴로워요. 그때는 괴로움이 연기(緣起)된 겁니다 생각으로 인해서. 이것을 유심연기(唯心緣起)라 그래요. 괴로움은 마음에서 연기되거든요. 마음에서 생각을 일으켜서 생각에 괴로워하니까 괴로움이 생겨났어요. 그런데 그냥 이렇게 듣고 있는 동안은 그냥 괴로움이 없어요. 


괴로움이 없는 것이 해탈이지. 해탈이라는 뭔가 아주 새로운 황홀하고 아름다운 뭔가를 딱 쥐어야지만 행복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행복이라는 열반이라는 뭔가를 얻어야만 열반이 아니라 그냥 괴롭지 않은 상태가 열반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행복한 삶을 향해서 끊임없이 추구하고 노력하잖아요. 그래서 ‘돈이 더 많으면 행복하겠지’ ‘아파트를 좀 좋은 걸 하나 사면 행복하겠지’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가면 행복하겠지' ‘남편이 돈을 더 벌어오면 행복하겠지’  ‘좀 더 건강하면 행복하겠지’ 이런 행복의 조건을 내걸고 그 행복의 조건을 성취했을 때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거지요. 완전한 오판이지요. 내가 만든 행복의 조건을 내가 달성한 게 행복이 아닙니다. 단순하게 행복은 그냥 불행하지 않은 게 행복이에요. 행복이 없는 게 불행이잖아요. 불행하지 않은 것. 즉 괴로움이 없으면 그냥 행복입니다. 행복한 뭔가가 있어야지만 행복이 아닙니다.


그런데 행복한 뭔가는 잠깐 왔다 가는 느낌이나 감정이잖아요. 느낌이나 감정은 진실이 아니거든요. 자식이 대학교 붙었을 때 그 기쁨 그걸 행복이라고 착각해요. 그러니까 행복을 뭔가 자극적이고 감동적이고 뭔가 막 기쁜, 이걸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행복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느낌이나 감정이지. 인연 따라 생겨난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게 진실이면 그게 영원히 계속돼야 되잖아요. 행복의 조건만 갖춰지면 그 행복이 지속돼야 되잖아요. 그런데 ‘서울에서 아파트 30평짜리 하나 사야지’ 생각하다가 사고 나면 잠시 며칠은 기쁜데 며칠 동안은 기쁜데 그건 금방 사라져요. 당연하게 느껴지고 그 30평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남편과 대판 싸우고 나면 거기선 또 우울하거든요. 30평 아파트가 행복이라면 그곳에 있으면 그냥 행복해야 되는데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 거지요. 그 행복의 감정은 사라지니까.


그 행복하다는 느낌, 감정, 감각, 그게 행복이 아니라는 겁니다. 괴롭지 않으면 그게 행복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엄청난 느낌, 감정, 감각이나 이런 것들을 추구하니까 우리에겐 행복이 없는 것처럼 느끼지요. 그런데 우리는 늘 행복합니다. 늘 문제가 없을 때가 많거든요 사실. 그런데 이제 생각을 일으켜서 문제를 만들어내면, 그때 이제 잠시 불행해요. 그 생각을 스스로 만들어서 불행을 찾아 나섰으니까. 그런데 그러지만 않으면 그냥 뭐 지금 괜찮습니다.


문제없는 때가 있을까’ 문제없는 때는 없습니다. 문제없는 때를 찾는 그 마음이 문제거든요. 문제없는 때가 어떻게 있을 수가 있어요. 우리 삶도 마찬가지지요. 내 인생에서 문제없는 때가 와야지만 그때 가서 내가 행복할 것이다 그거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문제와 함께 사는 거예요. 왜냐면 이 세상 자체가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거든요. 당연히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거든요. 생노병사 그게 뭐 대단한 게 아닙니다. 그냥 누구나 다 겪는 거니까. 나만 하면은 괴로운데, 누구나 다 하는 거니까 대단한 게 아니에요.


늙는 게 그렇게 괴로운 것도 아니고 병드는 게 그렇게 괴로운 게 아니에요. 죽는 거 뭐 죽을 때 되면 죽으면 되는 거지, 특별한 것이 아닌 겁니다. 모두 다 가야 할 상황이니까. 그래서 뭔가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와 함께 살면 됩니다. 문제와 함께 사는 게 그게 행복이에요. 함께 살겠다,라고 생각하면 그 문제가 축소돼요. 나를 덜 괴롭혀요.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 이 살이 나를 공격한다고 생각하고 살을 빼야 된다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되게 괴로워요. ‘아휴 뭐 그냥 이 살이 나지’  ‘살과 함께 살아야지’그러고 그냥 살아가는 거죠, 뭐. 그러면 스트레스가 나를 좀 덜 괴롭힙니다. 뭐 아픈 데가 있다. ‘그럼 ‘아픈 거 없는 인생이 어디 있나, 아픈 거 그대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하고 그냥 아픈 것과 함께 살아가려고 애쓰면 아픈 걸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는 거 같아요.


병이 있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어지간한 병들 달고 사는 거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적당한 병이나 적당한 고통, 적당한 괴로움들은 우리를 지혜롭게 해주고 우리를 깨어나게 해주고 우리를 공부시켜주는 아주 귀한 공부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없는 게 더 문제에요.


항상 승승장구만 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너무 잘 나가는 사람들은 항상 교만하거나 오만하고 그래서 삶의 지혜를 바로 배우지를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문제를 그냥 받아들여주면 그것이 바로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이지요.



대장부라면 본래 일 없음을 오늘 당장에 알라.

(선어록과 마음공부 p247)


본래 그냥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이 있는 채로 없습니다. 아픈 채로 상관이 없어요. 아픈 건 일이 아니에요. 당연한 거니까. 생 노 병 사는 당연한 거니까. 그러니까 일이 있지만 일이 없다,라고 알면 일을 하면서도 되게 가벼워지죠. ‘잘 해야 돼’ 이런 생각 없이 그냥 하면 됩니다. ‘남한테 욕먹지 말아야 돼’ 하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받는데 ‘욕은 뭐 원래 다 하는 거야. 그러니까 욕먹는 거 당연해’ 하고 그냥 살면 괴로울 게 없습니다.


-법상 스님- 법문 녹취by 하이얀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