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마음이 모든 것을 다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장백산-1 2019. 7. 29. 23:21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승인  2019. 07. 22  15:29

“마음이 모든 것을 다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일체유심조는 화엄경의 사구게인데 ‘마음이 만물을 창조한다’ 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주체가 되어 세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을 구성해간다는 의미이다


서울 인사동에는 행인들에게 가훈이 될 만한 글을 붓으로 써 무료로 나눠주는 분이 있다. 글 내용도 다양해서 성인이나 철인들의 말씀, 고사성어, 그밖에 삶의 귀감이 될 만한 내용들을 골라서 써준다. 그중에는 부처님 말씀도 포함되어 있다.

어느 날에도 나는 그분이 글을 쓰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육십쯤 되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그분에게 다가가 부처님 말씀 가운데에 좋아하시는 글이 있으면 한 장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분은 흔쾌히 아주머니의 부탁을 승낙하고 숙달된 솜씨로 불경 한 구절을 한자로 써내려갔다. 가만히 보니 ‘화엄경’의 ‘보살설게품’에 나오는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는 내용이다.

글을 받아든 아주머니는 그분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분은 아주머니에게 “이건 ‘화엄경’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 세상 모든 건 마음이 만든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마음먹기 달렸다는 뜻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돈 만원을 내놓으며 “소중한 말씀인데 공짜로 받을 수 없고 종이 값이라도 드려야지요.” 하면서 글을 소중히 챙겨서 떠나갔다.

당시의 풍경을 떠올리면 글씨를 써주는 분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글귀를 쓰면서도 불경 구절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해석해주는 모습은 불교인으로써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글 쓰는 분의 말과 달리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부처님 말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 경구가 불교의 최상승 가르침인 ‘화엄경’의 사구게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그 의미도 매우 지엽적으로 이해하거나 종종 부처님이 설하신 의도와는 다르게 이해하는 일도 있다. 사람들은 특히 일체유심조의 뜻을 마음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니 항상 좋은 마음을 일으키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마음이 우주만물을 만든 창조 주체로 여기기도 한다. 일종의 긍정심리를 만들어주는 시각으로 일체유심조를 해석하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화엄경’ 사구게에 들어있는 구절로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내용 속에 들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들에 대해 알고 싶으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찰해야 할 것이니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지은 것이니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법계성이란 일체만유의 근본 성품인 진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려면 법계의 성품(空한 성품)을 보아야 하고 법계의 성품을 보려면 자신의 마음이 세상만물을 구성한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체유심조란 마음이 세상만물을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주체가 되어 세상만물들을 구성해간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여기 붉은 색의 연꽃이 있다면 마음이 눈앞에 있는 사물 자체인 붉은 색의 연꽃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연꽃에 분별을 하는 마음이 개입하여 이름을 짓고 개념을 짓고 가치를 부여했다는 의미다. 연꽃이라는 이름도, 붉다는 색깔도, 줄기· 잎· 꽃이라는 구별도, 연꽃은 저렇게 생긴 것이라는 개념도, 모두 분별하는 마음이 구성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연꽃은 고정불변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다. 연꽃을 보는 사람들 각자의 마음에 따라 천만만별의 연꽃 모양으로 드러난다. 연꽃은 법계의 성품 대로 공(空)하여 실체가 없는 것인데 오로지 마음이 연꽃을 규정해 놓고 연꽃이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밤에 자다가 아무런 생각 없이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물이라 구역질을 한 원인은 물에 대해 깨끗하다 더럽다고 일으킨 분별하는 마음, 분별심에 있는 거지 물에 있는 게 아니다.

눈앞에 드러나있는 세상과 모든 사물과 일들이 분별하는 마음이 부린 조작임을 알면 곧장 부처를 알고 진리를 알게 된다는, 깨닫게 된다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는 방편(方便)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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