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相, 이미지)도 취하지 않는 자유인
진정한 불자는 부처에 대한 상(相, 이미지, 생각)을 취하지 않는다.
진정한 불자는 또한 보살이나 아라한에 대한 상(相, 이미지, 생각)을 취하지 않는다.
진정한 불자는 부처, 보살, 아라한에 대한 그런 상(相, 이미지, 생각)에 걸려서 속박되지 않는다.
진정한 불자는 부처 보살 아라한에 대한 그런 상(相, 이미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다.
유불처부득주 (有佛處不得住 ) 무불처급주과 (無佛處急走過)
부처가 있는 곳엔 머물지 않고 부처가 없는 곳에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버린다.
- 금강경 오가해 -
대장부(大丈夫)에게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어서 부처가 간 곳에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어찌 대장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대장부(大丈夫)는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대장부
(大丈夫)라는 말의 근거는 무엇인가?.
불교적 안목으로 사람들을 볼 때는 모든 사람이 전부 다 대장부(大丈夫)다. 사람사람 모두가 전부 다
본래부터 이미 원만하게 성취되어 있고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대장부(大丈夫)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꼬집으면 아픈 줄 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볼 줄 알고 들을 줄
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배가 고프면 밥을 먹을 줄 알고 피곤하면 잠을 잘 줄 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장부(大丈夫)다.
그런데 공연히 부처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많이 한다. 사람들은 말이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엔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부처가 없는 곳이면 그곳을 더 빨리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선(禪)의 기틀,
선기(禪機)는 고고하고, 서릿발이고, 위엄이 하늘을 찌른다.
선기(禪機)에는 아무나 접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기(禪機)에 가까이 닿기만 해도 베이고 다치기
때문이다. 선기(禪機)는 가히 치명적이다. 선기(禪機)는 일체가 끊어진 적정(寂靜), 고요함 그 자체다.
선기(禪機)는 그러면서 그 깊이를 모를 그윽함, 유현(幽玄)함이 있다.
부처가 있는 곳에선 사람들이 같이 살 만한데 그렇지 않다. 부처가 없는 곳에선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 버린다. 선심(禪心)이 인격화(人格化)되고 체현(體現)되었기 때문이다.
- 무비스님이 가려뽑은 불교명구 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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