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湛), 스스로 그러하고(然), 참되고(眞), 완전하고(圓), 적적(寂寂)한 그곳
有盡生涯無盡事 一端腔裏萬端心
유진생애무진사 일단강리만단심
夜靜山空松籟發 高樓明月短長吟
야정산공송뢰발 고루명월단장음
- 윤 현(尹鉉, 1514-1578), 장음(長吟)
유한한 인생에 할 일은 끝이 없고
한 조각 가슴 속에 만 가지 마음이 있네.
고요한 밤 텅 빈 산에 송뢰성(松籟聲)들리는데
높은 누각 밝은 달 아래 장단구를 읊조린다.
*송뢰성(松籟聲 : 소나무 가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소리)
정해져있는 길지 않은 인생살이에 하는 일은 어이하여 이다지도 많은가!
조그만 좁은 가슴 속에 생각은 어이하여 이다지도 갈래가 많은가?
유한한 인생살이에 욕심은 끝이 없고, 바람 잘 날 없어 마음 편할 때가 없다.
밤은 고요하고 산은 텅 비었는데 바람은 소나무 가지 사이를 빠져나가며
맑고 높은 바람소리를 낸다. 나도 그런 바람소리를 내고 싶다.
높은 정자에 올라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나직이 인생을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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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이 정해져있는 인생살이에서 왜? 그리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나.
죽기 전엔 만족을 모르는 부귀를 더 가지려고 노심초사 마음을 졸여 왔다.
풍류를 즐기고 득의하는 일도 지나고 보면 구슬프고 처량할 뿐이다.
오늘 이승을 떠난다고 할 때 떠오르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며 살 일이다.
한때의 즐겁던 기억도 돌아보면 슬픔만 자아낼 뿐이다.
맑고(湛), 스스로 그러하고(然), 참되고(眞), 완전하고(圓), 적적(寂寂)한 그곳,
해를 묵힐수록 깊어지는 포도주의 맛처럼 지친 심신에 윤기를 적셔주는 그곳,
그곳은 어디일까?
출처 : 鄭 珉 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