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개미집의 구더기

장백산-1 2020. 3. 16. 22:17

개미집의 구더기


온 나라의 도성은 개미집이요, 개미집에 사는 호걸영웅들은 구더기일세. 창호지에 

비치는 달을 베게 삼아 누웠는데 계속 소나무 사이 부는 바람소리 제각각 다르구나. 


萬國都城如蟻垤  千家豪傑若醯鷄 

만국도성여의질  천가호걸약혜계 


一窓明月淸虛枕  無限松風韻不齊 

일창명월청허침  무한송풍운부제


『서산집, 청허 휴정 대사 』


서산 대사 스님의 이 시는 1556년 요승 무업(無業)의 무고로 정여립(鄭汝立)의 

역모에 연루되었다 해서 서산 대사가 투옥되는 데 빌미가 된 시다. 


산 정상에 오르면 산 아래 마을의 집들이 마치 개미집처럼 작게 보인다. 그 속에

사는 호걸영웅이래야 봐야 별 볼일 있겠는가. 서산 대사 같이 세상을 벗어던지고 

인간 밖 세상에서 유유자적하는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다. 


당신의 막힌 데가 없는 무한한 마음을 두고 노래한 시를 어리석고 못난 중 무업이

서산 대사의 뛰어난 성품에 시기와 질투를 느낀 나머지 나라를 무시하고 관료들을 

구더기라고 욕을 했다고 무고한 것이다. 그리고는 서산 대산가 쓴 이 시가 정여립의 

역모에 가담한 증거라고 덮어씌웠다.


곧 풀려나기는 했으나 그로 인해 한 편의 시가 세상에 많이 알려지게 되기도 했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진흙소가 물위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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