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모든 것은 빛이 화현한 그림자다
1. 올바른 수행 이란?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본 지도 무척 오래 됐지요? 매연에 찌든 도시의 하늘만 이고 살다 보니, 어느 샌가아름답던 밤하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아득한 추억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옛날 같으면 마음이 서정적인 분위기에 젖어들라치면 기꺼이 그 마음의 흐름을 타면서, 마냥 상상의 날개를 펼치곤 했는데, 어설피 '마음 공부'를 한답시고 마음의 그런 흐름을 살피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상의 날갯짓이 사아지는 걸 보게 되죠.
그러면서 밤 하늘의 그 서정적인 분위기가 어느 샌가 서사적인 분위기로 바뀌면서, 그 동안 줏어들었던 법문의 토막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쳐들면서 서정적인 마음의 흐름을 온통 '개념 놀음'의 마당으로 바꾸어 놓고 맙니다. 결코 이런 유(類)의 사색에 오래 잠겨서는 안 됩니다만, 오늘은 그와 같은 마음의 갈피를 추슬러서, 서정 · 서사를 마음대로 넘나들면서도 결코 서정, 서사에 몰입하는 일이 없는 그런 '마음자리'를 한번 찾아보도록 하지요.
서정, 서사에 몰입하는 일이 없는 그런 '마음자리'는 밖으로 찾아 나선다고 찾아지는 게 아닙니다. 이 '마음자리' 자체의 생김새와 쓰임새를 한번 조심스럽게 살펴보자는 겁니다. 아까 <도시가 매연에 찌들었다>고 말지요? 그 말을 화두 삼아 한번 시작해 봅시다.
그렇다면 '하늘이 매연에 찌든 걸까요? 우리들의 '마음'이 매연에 찌든 걸까요?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질문은 거의 하는 법이 없지요. 그러나 '불법'에 인연을 맺으면서 부터는 늘 이런 물음에 직면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늘 현실감각과 들은 설법의 내용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적이 많지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두 텅~비었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매연에 찌들 만한 하늘 · 땅 · 삼라만상이 모두 실체(實體)가 없을 테니, 따라서 매연에 찌들 하늘 · 땅 · 삼라만상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들의 마음이 매연에 찌들었다고 해야 할 텐데, '마음'이라는 것도 찾아보면 또한 아무 데도 없으니,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매연에 찌든 걸까요?
이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있겠어요? '마음'도 매연이라는 '대상, 경계'도 모두 실체가 없는 것이라면, 그래서 '마음'이 '경계'를 보고 헤아리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見聞覺知) 일들은 다 어떻게 된 걸까요? 이렇게 공부를 해감에 따라서 여러분의 속마음과 성인들의 말씀 사이엔 분명 넘기 어려운 간극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렇더라도 그 동안 귀로 들은 단편적인 풍월로 그저 적당히 싸바르고 넘어가야 할까요?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런 태도가 가장 좋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의심을 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큰 의심을 이르켜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크게 깨칠 수 있습니다.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는 문제들이 날이 갈수록 더 쌓여 가는 느낌 아닙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요. 이 고개를 훌쩍 넘어서야 이른바 견성성불을 하게 될 텐데, '나라는 것'까지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근본부터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그 전까지는 전혀 의심해 본 적도 없던 문제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니 말이에요.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이 '상식'과, 이른바 '진실'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틈새를, 설사 머리로는 이해된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심정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이 넘기 어려운 간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이 의심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결코 마음공부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자신을 속여서 뭘 하겠어요? 모름지기 진정한 수행자라면 털끝만한 의심도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속마음과 성인들의 말씀 사이의 '틈새'를 메꾸는 게 아닙니다. 극복하는 것도 아니구요. 수행자가 점차로 지혜의 눈이 열리면서, 기특한 생각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의아해 하기는커녕, 냉소적으로 외면해 버리던 그 오만한 생각 마음이, 어느 날 문득 기특한 생각 마음이 드는 거예요. 즉,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라는 이 말씀이 그래도 오랜 세월을 두고 면면히 그 법맥(法脈)이 이어져 온 성인의 말씀인데, 일개 범부의 하찮은 소견으로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감히 일소에 부치다니, ··· 」 하고, 제 정신이 번쩍 드는 때가 있는 거예요.
비록 누구라도 '불법'에 인연을 맺은 지 오래 된 사람일지라도, 모름지기 한번 쯤은 반드시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심기일전해서 올바른 믿음을 내고,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어서 새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경우가 수도 없이 닥치지요. 생각 마음이 늘 무엇인가를 추구해 마지않는 사람이라면 새로 마음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참구(參究)하는 마음을 계속 지탱해 주는 건, 오직 자신의 희망하는 바가 얼마만큼 성취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으니까요.
따라서 <자기 중심적인 의식 생각 마음>을 앞세워 진리의세계를 사색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는 마음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유혹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의식 생각 마음'에 의지하지 않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란 어떤 걸까요?」 이런 물음 자체가 바로 '의식 생각 마음'의 반란입니다. 이 같은 '의식 생각 마음'의 반란에 대해서 어떤 해답을 주려고 애쓰지도 말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말고, 억누르지도 말고, 그냥 잠잠히 '의식 생각 마음'의 반란을 지켜보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석처럼, 바위처럼, 불꺼진 재처럼 살라는 게 아닙니다.
'의식 생각 마음'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환히 비추어 알지만, 결코 '의식 생각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저 담담히 '의식 생각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비추어 보는 겁니다. 이렇게 계속할 수만 있으면, 바로 여러분의 속마음과 성인들의 말씀 사이의 '틈새'에 대한 답이 말로써가 아니라 곧장 실천적으로 여러분의 눈앞에, 목전에, 지금 여기 이 순간 이자리에 현전(現前)하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눈앞에, 목전에, 지금 여기 이 순간 이자리에 현전(現前), 이것은 전혀 새로운 국면입니다. 거기에는 본래 이미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나가 없다는 것' 너가 없다는 것도 없습니다. 본래가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이것은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아니, 이럴 때 <이것>을 남에게 설명한다는 건 곧 분별을 하는 '의식 생각 마음'이 다시 고개를 추켜들고는, 눈앞에, 목전에, 지금 여기 이 순간 이자리에 현전(現前)을 '으식 생각 마음의 체험'으로 삼아버리고, 그 '신령한 광명'(光明)를 다시 분별하는 '의식 생각 마음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마는 겁니다.
처음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 겁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실망하고 자책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그렇게 남아있는 분별하는 생각 의식 마음의 버릇이 아직 꼬물거리고 있는 움직임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성인은 이럴 때, 「절대로 말하지 말라. 말하면 그대 골통을 부수어버린다」라고 말했던 겁니다. 이것이 '올바른 수행이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 올바른 수행은 결코 뜻을 세워서 어떤 결과를 추구해 왔던 그런 인위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분별하기를 좋아하는 '의식 생각 마음'은 여전히 '대상 경계'를 따라 흐르면서 또렷또렷하게 분별을 해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見聞覺知) 하면서도 전혀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하는 것에 물드는 일이 없는 겁니다. 항상 인연을 따르되 변하는 일이 없고(수연불변/隨緣不變), 항상 변하지 않으면서도 늘 인연을 따르는 불변수연(不變隨緣)하는 흐름이 영원히 이어지면서, 모든 분별 망상 번뇌는 자취를 감추고, 그 변덕스런 의식 생각 마음은 저절로 깨끗한 의식 생각 마음으로 있는 겁니다.
- 현정선원, 대우거사님의 <그곳엔 부처도 갈 수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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