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생각을 쉬고 평상심 멋지게 쓰면 분명히 꽃길이 보입니다

장백산-1 2022. 2. 22. 22:50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

생각을 쉬고 평상심 멋지게 쓰면 분명히 꽃길이 보입니다

기도와 수행은 늘 점검하고 바르게 하려 노력할 때 성취
탐‧진‧치 삼독이 삼재이니 이를 내려놓아야 대길 나타나
항상 깨어있는 생각으로 천하보배인 평상심 잘 써야 행복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은 “‘화엄경’의 그 많고 많은 말씀이 ‘마음을 잘 쓰라’는 가르침”

                 이라며 수행과 정진으로 평상심(平常心)을 잘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이번 2022년 설에도 지난해와 같이 가족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덕담도 나누셨을 것입니다. 저 역시 지난해처럼 올해도 이 자리에서 새해 법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해와 올해,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신축년이 가고 올해는 호랑이해, 임인년이라고 합니다. 뭐가 달라진 것 같습니까?

 

우리가 바라는 소원은 지난해도 모든 재앙은 다 사라지고 오직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면 좋겠다는, 좀 막연하지만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새로운 한 해도 역시 꽃길 같기를 발원합니다. 이 소원은 아마 영원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염원과 기대와 달리 지난해도 재앙이 있었습니다. 사실 꽃길은커녕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산 넘어 산입니다. 또 한 해가 그렇게 우리 앞에 있습니다.

 

어떻게 살면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지는가. 우리 불자님들은 기도와 수행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길을 바르게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진도 수행도 바르게 했을 때 그 성취가 가능합니다. 생각을 자칫 잘못하면 아무리 염원하고 기도하더라도 바르게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재앙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진 평상심(平常心)입니다. 이 평상심은 어떤 것인가. 지난해에도 발원하고 올해도 발원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것, 쉴 줄도 알고, 공부할 줄도 알고, 법문을 들을 줄도 아는 이것입니다.

 

오늘 봉행하는 관음참회 기도, 입춘대길 삼재소멸 기도, 화엄법회 속에 평상심의 가르침이 다 들어있습니다. 삼재(三災)는 글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입니다만, 불교적으로 얘기하면 탐(貪), 진(瞋), 치(癡), 삼독(三毒)입니다. 삼독심을 내려놓을 때 대길(大吉)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참회(懺悔)는 무엇입니까? 잘하는 것은 지속하고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내려놓을 수 있는가, 이것은 여러분 각자의 몫입니다.

 

화엄(華嚴)법회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합니까?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일체는 모두 이 마음의 장난입니다. 재앙도 마음으로부터, 행복도 마음으로부터, 선도 마음으로부터. 중생심도 마음으로부터,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자비심도 마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것이 평상심입니다. 천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이놈은 있었고 천지가 사라진 뒤에도 이놈은 존재합니다. 부처님도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게 되어 있고 중생도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며 도이고 법입니다. 이 마음을 잘 쓰면 성취를 합니다. 이것을 줄이면 ‘불심(佛心)으로 살자’라는 표현이 됩니다. 불심,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작년 한 해가 힘들었다면 올해는 불심으로 한번 살아보자, 불심으로 살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불심을 어떻게 쓰는 것인가.

 

‘화엄경’의 그 많고 많은 말씀이 ‘그 마음을 잘 쓰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쉽습니다. 여러분, 마음 잘 쓰고 있습니까? 평상심을 잘 써야 하는데, 잘 쓰고 못 쓰는 것은 누구를 탓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더라도 잘 쓰고 못 쓰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유가(儒家)의 ‘대학(大學)’에는 명덕(明德)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고 청정하게 하면 그 성품이 덕스러워진다는 뜻입니다. 덕도 역시 마음을 맑게 쓰라는 말입니다. 공자께서도 70세가 넘어서야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도 그렇게 노력했는데 비로소 나이가 70이 넘으니까 생각이 일어나는대로 움직이고 행동하고 살아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더라.”

 

어떤 것이 도량(道場)입니까? 도량은 범어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불심을 갖고 사는 곳이 바로 도량입니다. 도량은 현금생사(現今生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떠나서는 도량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 각자에게 있습니다. 부처님도 여러분, 도량도 여러분, 극락도 여러분입니다. 그 평상심(平常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서방이 되기도 하고 북방이 되기도 하고, 행복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평상심(平常心)이라는 천하의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보배를 보배로 쓰느냐, 그냥 돌덩어리로 쓰느냐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남은 인생이 단지 15분이라고 하는 내용의 연극이 있습니다. 저는 책으로 접했는데 참으로 감명 깊어서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에게 남은 인생이 15분만 있다고 합시다. 이 법문이 끝나기 전에 인생이 끝나는 겁니다. 어느 학생이 가난한 집에 태어났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박사를 취득하고 논문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표하기 전에 병이 났고 결국 15분 남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올해 최우수 논문상이라는 통보가 옵니다. 명문대 교수 자리도 확보되었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또 전화가 오기를, 삼촌이 억만장자인데 후손이 없어서 재산을 전부 물려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당신과 결혼을 하겠다는 엽서도 날아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인생은 이제 1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중생이 추구하는 것을 다 얻었습니다. 명예도 얻고, 사랑도 얻고, 재산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1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삶입니다. 이 부질없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명예와 사랑과 재물을 얻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합니다. 생명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어느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칩니다. 재물을 위해서 끝없이 추구합니다. 명예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던집니다. 이것이 중생의 어리석음입니다. 다 준들 무슨 소용입니까. 인생은 1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주인공, 그것이 평상심입니다. 이것은 천하의 보배입니다. 이것을 잘 쓰면 천하의 재물이고 천하의 사랑이고 천하의 명예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스스로 실천했을 때 한 생이 아니라 세세생생을 멋있게 살 수 있습니다.

 

꽃길만 생각하면 허황된 꿈만 꿉니다. 잠잘 때의 꿈만 꿈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꿈같은 인생입니다. 길고 짧은 차이뿐입니다. 언제까지 꿈만 꾸다가 인생을 마무리할 것입니까? 업과 중생심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꿈만 꿉니다.

 

어떤 수행자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도를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를 물은 제자는 훌쩍 떠납니다. 떠나면서 하는 얘기가, “부처님 고맙습니다.” 아무 말씀이 없으셨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니까 부처님을 시봉하는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뭐가 고맙다고 하면서 떠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답을 하셨겠습니까. “영리한 준마는 채찍의 그림자만 봐도 달리느니라.” 지금까지 여러분이 부처님께 귀의해서 부처님 법을 수없이 들어왔고 극락도 배웠고 지옥도 배웠고 행복하게 사는 법도 배웠고 불행해지는 것도 배웠습니다. 곧 평상심을 어떻게 쓰는가, 거기에 행복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삿된 소견을 버려야 합니다. 잘못된 생각으로 아무리 좋은 것을 추구해도 무슨 성취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삿된 소견, 잘못된 생각, 이것을 쉬면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득도를 할 수 있습니까?” 달마 스님과 제자의 문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외식제연 내심무천 심여장벽 가이입도(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墻壁 可以入道)’입니다. 먼저 바깥으로 쓸데없는 인연을 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연이 너무 복잡합니다. 코로나가 온 것도 쓸데없는 인연을 좀 끊으라고 이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 관계, 이웃 관계, 국내 관계, 국제 관계 모두 통제되고 있습니다. 마스크로 모두 막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반가워도 악수 한번 못 하고 주먹을 내밉니다. 말 좀 줄여라, 쓸데없는 인연도 끊어라. 밖으로 다니지 말아라, 이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외식제연’입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스마트폰에 시간을 너무 보냅니다. 법당에서 기도하시는가 싶어서 들여다보면 핸드폰을 보고 계십니다. 법당을 나오자마자 기도한 것은 다 사라지고 핸드폰만 봅니다. 사진을 계속 찍는 분도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스마트폰에 뺏겨버린 삶을 삽니다.

 

여러분, 정보가 부족하고 아는 것이 부족해서 삶에 고난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깥으로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어라, 이 말씀은 곧 쓸데없는 생각을 쉬라는 것입니다. 뭐가 부족해서 구하는 것이 그렇게도 많은가. 헐떡거린다는 말은 이것 저것가리지 않고 많이 구한다는 말입니다. 생각을 쉬면 도(道)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참선하든 기도하든 염불하든 주력을 하든 삼천배를 하든 항상 생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는 놈은 누구냐, 그것이 평상심(平常心)입니다. 평상심은 얼마든지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남의 것이면 안 되지만 평상심(平常心)은 내 것이기 때문에, 깨어 있으면 됩니다.

권력이 아무리 크고 많아도, 명예가 아무리 있어도, 10년을 못 간다고 했습니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붉음이 열흘을 못 간다고 했습니다. 꽃 좋아하는 데 집착하지 말고, 권력, 명예, 부에 집착하지 말고 천하의 보배인 나의 평상심(平常心)을 멋지게 한번 써 봅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해도 여러분이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일생을 살아도 도를 맛보지도, 쓰지도 못하고 그냥 부처님 이야기로만 듣고 한 생을 마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습니다.

평상심(平常心)을 쓰면 분명히 꽃길이 보입니다. 평상심(平常心) 쓰지 않으면 가시밭길입니다. 임인년 새해, 평상심(平常心) 을 잘 써서 여러분 가정 가정이 행복하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2월3일 금정총림 범어사 보제루에서 봉행된 ‘범어사 1000일 화엄대법회 및 임인년 정초 참회기도 입재 법회’에서 주지 경선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621호 / 2022년 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