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리석음의 뇌신경회로
탐욕 · 분노가 뇌의 원초적 기능이라면 어리석음은 뇌의 고등기능
학습한 지식 대뇌에 저장되듯 어리석음도 기본모드신경망에 스며
일상에서 망상 등은 자동 재생산된다 …그것이 ‘싸띠’를 강조하는 이유
맨 오른쪽은 기본모드신경망(DMN)의 모식도이다. DMN은 삶과 더불어자아(ego)를 형성하지만 ‘어리석음[癡]’도 함께 스며드는 뇌신경회로다.
탐욕[貪]과 분노[瞋]는 인간의 뇌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은 뇌줄기(뇌간, 腦幹, brainstem)와 둘레계통(변연계통, 邊緣系統 limbic system)에서 생겨난다. 뇌줄기는 파충류의 뇌(reptilian brain)이며, 둘레계통은 하등포유류의 뇌이다. 뱀, 악어와 같은 파충류나 고양이, 개와 같은 하등포유류를 가르치기 어렵듯 탐욕과 분노의 뇌줄기는 가르치기 힘든 고집불통의 뇌이다.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부처님은 고집불통의 야생 코끼리를 잘 훈련된 왕의 코끼리에 그 목을 묶어 길들이듯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탐 · 진 · 치 삼독의 번뇌 중 치(癡)는 사리분별에 어두운 것을 말한다. 세속적으로 생각할 때 삼독의 시작은 탐욕일 것이다. 지나친 욕심(탐욕)이 번뇌의 출발이다. 세상은 절대로 욕심을 채워주지 않기 때문에 분노(瞋)으로 이어지고, 사리분별이 어두워져(癡) 삶이 괴로워진다(苦). 그렇다면 탐욕은 왜 일어날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12연기에서 무명(無明)을 인간의 모든 고통의 근본원인(根本原因)으로 보았다. 무명(無明)은 명지(明知)가 없는 것, 즉 진실한 도리(理)를 깨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무명은 12연기(十二緣起)의 제1지분을 이루고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무지한 존재가 겪는 괴로움(苦)의 근본원인이라고 가르친다. 무명은 곧 어리석음(무지, 癡)이다.
인간의모든 번뇌의 근본원인 치(癡)는 인간 뇌의 어디에 똬리를 틀고 있을까? 貪(탐욕)과 瞋(분노), 적의, 원망, 이기심, 서운함은 보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어리석음으로 하등 동물들의 마음을 만든다. 사람 뇌에서는 가장 오래전에 진화한 부분인 뇌줄기(뇌간), 즉 파충류의 뇌와 둘레계통에 탐욕과 분노가 거처한다. 탐욕과 분노는 여기에 있으면서 화, 공격성, 짝짓기, 부모행동과 같은 매우 기초적인 사회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망인 사회행동신경망(社會行動神經網, social behavior network)을 만든다. 이것이 탐(貪)· 진(瞋)의 뇌신경회로이다.
한편 편견, 선입관, 가치관 등의 어리석음(癡, 치)은 보다 고등한 기능의 뇌이다. 뇌의 고등기능은 삶의 지식과 공명한다. 삶의 지식이란 우리가 살아가면서 습득한 학습의 결과이다. 학습된 지식은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 저장된다. 삶의 지식이 이 신피질(대뇌피질)에 널리 퍼져 저장된다. 또한 그 사이사이에 편견, 선입관, 가치관과 같은 어리석음도 함께 저장된다. 학습한 지식이 대뇌피질 전체에 퍼져 저장되듯 어리석음(癡)도 대뇌신경망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이처럼 치(癡)의 뇌신경회로들은 뇌 전체에 흩어져 존재하지만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 있다. 기본모드신경망(default mode network, DMN)이 그곳이다.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모드를 기본(default)모드라 한다. 뇌가 외부대상(색 성 향 미 촉 법, 色 聲 香 味 觸法, 모양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에 반응하여 일하는 것은 뇌의 ‘특별한’ 일이다. 그런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면 뇌는 ‘기본모드’에 들어간다. 망상, 과거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생각, 친구나 가족이나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생각하는 등 나의 내면과의 은밀한 대화가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이와 같은 식으로 이렇게 마음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지 않고 ‘딴생각’ 하는 것이 뇌의 기본작동모드가 하는 역할이다. 마음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지 않고 ‘딴생각’ 하는 이런 마음은 즐겁지 않은 마음이라고 하였다. 필시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거나, 즐겁지 않았던 친구 관계 등 번뇌의 마음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딴생각’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한다. 이같은 반복은 매우 강력한 ‘치(癡) 신경회로’를 만든다. 망상하지 말고 지금·여기를 싸띠(sati)하라고 부처님이 가르친 이유이다.
‘癡 신경회로’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삶과 함께 끊임없이 쌓인다[그림참조]. 삶은 흘러 지나가지만 그 경험은 반드시 뇌신경회로에 흔적을 남긴다. 중요하거나, 인상 깊거나, 충격적인 경험은 강한 뇌신경회로로, 그렇지 않은 경험들은 희미한 회로로 흔적을 남긴다. 강한 회로는 명시적 기억이 되어 나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희미한 회로는 암묵적 기억이 되어 나의 행동과 사고의 성향을 결정짓는 무의식의 지형을 형성한다.
내가 쌓아가는 지식은 나의 자아(ego)의 신경회로를 형성한다. 갓 태어났을 때 나의 자아는 미미했다. 지식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자아는 성장하고 강고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그 자아는 강해지고 고집불통이 된다. 나와 관련된 지식이 많아지기 때문에 자아는 강해지고, 나이가 들면 뇌신경세포는 가소성이 떨어져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고집불통이 된다. 지식의 뇌신경회로는 대뇌 전체에 흩어져 생성되고 저장되지만, 그 가운데 자아를 생성하는 뇌신경회로는 특정한 곳에 집중되어 쌓인다. 자아는 ‘나’임[‘I’-ness]에 대한 개념이다. 그것은 세상과 분리되는 ‘나’이고 ‘나의 이야기’가 쌓인 곳이다. 자아(自我)는 기본모드신경망에 거처한다. 나의 이기심, 서운함, 편견, 선입관, 가치관 등도 여기에 쌓인다. 이렇게 어리석음(癡)은 기본모드신경망에 스며들어 자아와 늘 함께 활동한다.
해부학적으로 기본모드신경망은 후방대상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 PCC), 안쪽전전두엽피질(mPFC)에 집중되지만 측두엽을 포함하여 뇌에 넓게 퍼진 일련의 거대한 뇌신경망이다. 이처럼 치(癡)는 자아와 함께 기본모드신경망에 똬리를 틀고 앉아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의 불을 지피고 있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27호 / 2022년 4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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