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세상이 바빠졌다고 해서 나까지 바빠질 필요는 없다.

장백산-1 2022. 6. 23. 14:16

그냥 그저 그렇게 있는 시간


세상이 바빠졌다고 해서 나까지 바빠질 필요는 없다.

 

그냥 그저 그렇게 있어 보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다만 있어 보라. 무엇을 하면서 있는 것이라거나,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이라거나, 왜 있다거나, 어떻게 있다거나, 어느 자리에 있다거나, 어느 때에 있다거나 하는 그렇게 있는 것들 말고 그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그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우린 모두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그냥 그저 이렇게 있지 않는가. 그냥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그냥 그저 이렇게 있는 것 말고 자꾸 더 이상을 바라지 말라. 이유를 붙이지도 말고, 잡다한 것은 다 놓아버리고 그냥 그저 지금 여기에 그렇게 있기만 하라. 무엇을 하면서 있지 말고, 무엇을 꿈꾸면서 있지도 말라.

 

앞만 보고 너무 바삐 달려가지 말라. 세상이 바빠졌다고 해서 나까지 바빠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세상이 번잡스러워 지다 보니 또 번잡한 그 세상 속에 너무 익숙해 지다 보니, 평온 고요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심지어 충분한 휴식과 평화의 시간이 오더라도 사람들이 그런 시간을 애써 피해 버린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친구에게 전화라도 걸어야 하고, 신문이라도 봐야 하고, 심지어 없는 걱정이라도 만들어 해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우리의 정신은 혼란과 번뇌에 익숙해졌다.

 

사실 평화로움과 고요한 침묵을 누릴 수 있는 감각은 누구에게나 이미 주어져 있다. 그런 감각은 별도로 애써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 평온의 감각을, 속 뜰의 본래 향기를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냥 그저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 무엇을 자꾸 하려 하지 말고,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찾아 나서지 말고 그냥 그냥 그저 지금 여기에 있으면 된다. 지금 여기에 그냥 있으면 된다. 가만히 비추어 보고 그저 느끼면 된다.

 

그렇게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그냥 그저 지금 여기에 있을 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다 완성된 자리이고, 다 이룬 자리이다. 이미 본래 다 되어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성불(自性佛)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애쓰고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에게 이미 본래 구족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깨달음을 보지 못하는 것일 뿐, 그러나 깨달음을 보지 못한다고 법비(法雨)가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이미 본래 밝은 자성불(自性佛)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하고자 하고, 되고자 하는 욕망과 집착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자성불(自性佛), 깨달음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완성된 자성불이라는 사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도 충분하고 꽉 차 있다는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무언가를 얻어야 하고 무언가가 되어야만 행복할 거라고 믿는 것이다. 사실은 그 마음이 모든 괴로움의 주된 원인이다. 어떻게 하면 잘 할까를 생각지 말고,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

 

꼭 해야할 것이라도 함이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치라도 집착과 머무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음을 행하는 것이 수행자의 가장 중요한 일 없는 일이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도 충분하다. 하려고 하는 마음, 되려고 하는 마음만 내려놓고 그냥 푹 쉬면 되는 것이다. 잘 쉬는 것이 가장 잘 하는 짓이다. 그저 모든 것 다 놓아버리고 푹 쉬기만 하라. 그냥 그저 지금 여기에 그렇게 있으라.

 
법상 스님, <법보신문/2005-03-09/7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