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의 힘은 믿음과 내맡김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진리에 대해, 삶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렇듯 세상, 진리, 삶을 잘 모르다 보니 온통 불분명하고, 복잡한 것들뿐이다.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환히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세상, 진리, 삶이 두렵고 무섭다. 미래도 두렵고, 일도 두렵고, 죽음도 두렵고, 모든 것들이 두려움 투성이다.
모든 것들이 두려움 투성이다 보니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안락하게 해 줄 도피처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때 사람들은 '절대', '신(神)', '부처(佛)' 같은 것을 가정(假定)해 놓고, 이제부터 그것을 믿고 의지하기로 작정한다. 그럼으로써 세상, 진리, 삶이라는 두려운 곳에서 믿고 의지할 곳을 얻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의 실체 또 믿음의 실체다.
그러나 그러한 믿고 의지할 곳은 선택한 믿음이기에 언제고 바뀔 수 있다. 내가 믿을 대상에 대한 확증 없이 그저 두려움과 나약함 때문에 믿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언제든 그러한 믿음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한 종교에서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면 다른 종교를 다시 선택하곤 하는 것이다. 참된 믿음이란 그런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 그 자체의 문제다.
온전한 믿음이라면 믿음의 대상은 바로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나 자신의 근본에 대한 믿음, 내 안의 참나에 대한 확신과 신뢰 그것이야말로 온전한 믿음이 아니겠는가.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자신이란 이렇게 나와 함께 살아감으로써 존재함으로써 스스로를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만이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믿음의 대상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사람은 두렵지 않다. 자기 근원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나약하지 않고, 두렵지 않으며, 강한 삶의 용기와 자신감에 넘쳐흐른다. 자기 자신의 본질이야말로 진리, 신, 부처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안의 진리를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괴로움이나 두려움이 오더라도 그 경계(境界)가 자신을 휘두르지 못한다. 자신야말로 진리의 현현임을, 진리가 나를 헤칠 리 없음을 알고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다 그럴만한 법다운 이유가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 앞에 펼쳐지는 그 어떤 괴로움도, 그 어떤 경계도 기꺼이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앞에 나타나는 그 어떤 존재도 그 어떤 사건도 모두가 법계(法界)에서 나에게 부여한 나름대로의 온전한 목적이 있음을 안다. 그렇기에 나에게 온 것은 그 무엇이든 온전히 존중하며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내 근본에 대한 믿음의 힘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사람들은 일체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다. 내 안의 진리에, 내 안의 불성 혹은 영성에 일체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참된 믿음은 그렇듯 모든 것을 내 안의 진리에 내맡기고 받아들일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온다.
어떤 종교를 선택할 것인가. 어떤 믿음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선택에 대한 미련이 남을 것이다. 언제든지 또 다른 선택으로 돌아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랬을 때 내 마음은 평온을 잃고 혼란스럽다. 선택하지 말고 다만 믿으라. 내 바깥을 기웃거리면 선택할 것만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러나 내 안을 바라보고 내 내면의 근본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분열이 없고 혼란이 없다. 그것은 선택이 아닌 당위이다. 그랬을 때 힘이 생기고 자기중심이 우뚝 서며, 일체를 내 안의 진리에 내맡길 수 있는 굳은 믿음과 용기가 생긴다.
참된 믿음은 내맡김이고, 용기이다. 믿음이 없다면 불안과 두려움이 늘 나를 따라다니겠지만, 참된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두려움도 불안도 없다. 오직 당당한 용기로써 내맡김 만이 있는 것이다.
2015.04.07 글쓴이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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