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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

장백산-1 2024. 11. 14. 15:36

세상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

 

사람들이 사는 일상은 육근이 청정함과 육근이 오염됨의 상태가 반복된다. 육근은 주로는 오염되어 있다가 깨어있을 때 육근이 청정함의 순간을 때때로 마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떠나 새벽 일출을 마주하는 순간이나, 등산을 할 때 산모퉁이를 돌아 드디어 정상에 섰을 때 그 장엄한 툭 트인 장관을 마주할 때처럼 생각이 멎고 ‘아!’ 하며 감동하는 순간,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그 순간 안근청정의 상태가 된다. 바로 그 때는 안근과 색경의 분별이 없다.

 

그러나 연이어 생각이 개입되기 시작한다. 예전에 보았던 일출과 비교하면서 ‘예전에 보았던 일출보다 못하군! 혹은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어떻게 하면 사진에 잘 담을 수 있을까’ 등 분별과 비교, 해석 등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곧장 욕망이 개입되고, 우리는 그 순수한 ‘존재’의 순간을 버리고, ‘소유’적 사고방식을 시작하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나’와 ‘세상’을 나누는 분별이 시작된다. ‘보는 나’가 있고, ‘보이는 대상’이 있으며, 보이는 대상을 예전에 보았던 것들과 비교 분별하고, 취사간택한다. 안근(眼根)과 의근(意根)이 오염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근(耳根), 소리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순간 음악에 몰입이 되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음악과 하나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가 바로 이근청정이다. 그러나 연이어 다른 음악과 비교하고,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이근이 오염되기 시작한다.

 

차의 향기를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느껴보며, 그 향기와 하나 되어 그 안에 스며들 때 비근청정이 된다. 사찰에서 발우공양을 할 때, 입을 잘 관찰하며, 음식물의 종류에 따라 끌려가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이 곧 설근청정이다.

 

스님들은 좌선과 경행을 늘 반복하곤 한다. 걷기 명상을 통해 발바닥이 땅과 접촉하는 그 지점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걷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신근이 청정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육근청정의 대미는 의근청정이 장식한다. 생각 없음,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무한한 영감과 창조적 작업들이 나타난다. 우리의 생각은 하루에 5만에서 6만 가지에 이르는 종류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런 생각의 홍수 속에서, 생각을 조작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 등은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각을 내려놓고 무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밝혀진 것들이라고 한다. 생각을 쉬고 ‘지금 이 순간’에 다만 존재하고 있을 때 의근청정의 아름다운 순간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실 우리들은 종종 육근청정의 순간과 마주한다. 음악가들은 음악을 통해 이근청정에 이르고, 여행자들은 여행을 통해 안근청정에 이르며, 조각가들은 조각 삼매에 빠져들면서 신근청정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생활 속에서의 육근청정 수행이다. 육근을 청정하게 수호하려면, 육근이 육경과 접촉할 때 마음으로 분별 판단하기를 멈추고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 된다. 분별 없이 지켜보는 것, 그것이 바로 지관(止觀 ) 수행, 정혜(定慧)의 수행이며, 팔정도의 정정(正定)과 정념(正念)의 수행이다.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과 판단, 분별들이 이어지는지를 잘 관찰해 보라.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아무런 판단 없이 지켜볼 수 있는가? 푸르른 하늘과 떠 있는 구름을 말없이 지켜보라. 차 한 잔이 저 홀로 식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라.

 

숲 속에 들어 가 자연의 소리들을 있는 그대로 들어 보라. 새소리며,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들을 그 소리를 따라가며 판단하거나 생각, 비교, 분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어 보라. 한 끼의 식사를 할 때, 그 음식의 향기와 맛을 고스란히 음미하면서 먹어 보라. 하루 중 자주 몸을 관찰해 보라. 차 한 잔 마실 때 두 손에 전해져 오는 따뜻한 찻잔의 온기를 충분히 느껴보라. 다만 있는 그대로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곳을 주시해 보라.

 

육근, 여섯 문을 잘 관찰함으로써 여섯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잘 막아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온갖 공덕과 각가지 장엄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글쓴이 : 법상